다산 정약용은 그의 아들들에게 언제나 무형의 것을 남기고자 했다.
그는 형체가 있는 것은 파괴되고 말지만 형체가 없는 것은 없어지기 어렵다고 믿었다.
그래서 그의 아들들에게 보이는 글에서도 형체 없는 것의 중요성을 술회한다.
“나는 논밭과 동산을 너희에게 남겨줄 수 있는 벼슬은 하지 않았다만 오직 신비로운 두 글자의 부적이 있어서
삶을 넉넉히 하고 가난을 구제할 수 있기에 이제 너희에게 주노니 소홀히 여기지 말아라.
한 글자는 근勤이요 또 한 글자는 검儉이다.
이 두 글자는 좋은 전답이나 비옥한 토지보다도 나은 것이니
일생 동안 필요한 곳에 쓴다 해도 다 쓰지 못할 것이다.”
나의 스승은 일생을 정진만 하시다 열반에 드셨다. 가람을 열고 바다 건너 미국까지 포교를 하셨지만
내 눈에 비친 나의 스승은 언제나 정진하는 선객이었다.
그의 곁에 서면 언제나 청아한 수행의 기운이 느껴지고는 했다.
마른 체구, 깊이 패인 눈, 그리고 조용하지만 겸손한 어투는 그의 수행의 진실성을 엿보게 한다.
그런 그는 떠나면서 어떠한 말씀도 남기지 않았다.
말은 덧없고 유형의 것은 의미 없다는 것을 그는 일찍이 알았기 때문이다.
그는 죽어서 남기기 보다는 살아서 모든 것을 남긴 분인 것이다. 그러나 그 길은 그의 곁에서는 잘 보이지 않았다.
그가 그의 삶의 자리를 비우고서야 그 길은 비로소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연기를 깨달은 자 너와 내가 없고 세상 그 무엇 하나 은혜 아님이 없다는
그 길은 전 생애를 걸고 가야만 하는 길로 남아 있다. 그 길은 밝고 아름답고 따뜻하다.
살아 가슴속에 진실을 품지 못했다면 남길 것 또한 없다.
살아 가슴에 사랑이 없다면 전해야 할 그 무엇도 없는 것이다. 지금 서 있는 자리에서 물을 일이다.
진실은 있는가? 사랑은 있는가? 그 물음에 답하는 길 하나를 남기며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