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라마다 한 해를 보내고 맞이하는 방식은 제각기 다른 것 같다. 일본인은 한 해의 마지막과 시작을 신사나 절에 가서 참배를 하면서 보내지만, 이곳의 미국인들은 크리스마스 준비로 모든 시간을 보내는 것 같다. 전 미국의 상점들이 이 대목을 잡기 위해 연일 신문이나 TV에서 세일 광고를 하며 사람들은 필요한 물건을 구입하거나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느라고 가게마다 사람들로 붐빈다. 심지어는 크리스마스 색깔인 녹색과 빨간색으로 온 집안을 치장하고 나아가 일루미네이션으로 집 안팎을 장식한다. 커다란 저택을 가진 사람들은 전문적으로 장식하는 사람들을 불러 정원을 산타와 사슴 등 갖가지 모양으로 치장한다. 심지어는 하얀 솜으로 눈을 만들고 인형으로 눈사람까지 만드는 것을 보면 이곳의 사람들이 얼마나 춥고 눈이 오는 크리스마스를 동경하는지 알 수 있다.
크리스마스에 츄리를 만들고 카드를 쓰고 선물을 주고 받는 것이야 누구나 하는 일이며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일이지만 미국인들은 정말 몇 개월씩 열심히 준비하는 것 같다. 개인당 평균 선물비로 약 500~600달러 정도를 쓰며 크리스마스 복장에 음식 등의 준비까지 합치면 이들이 얼마나 많은 돈을 지출하는지 깜짝 놀랄 정도이다. 예수가 이 땅에 옴을 기뻐하고 축하하는 마음가짐도 있겠지만 내가 보기에는 너무나도 지나친 크리스마스 준비가 오히려 요란한 상술로 이용되고 있는 것만 같다.
이런 북적거림 가운데 이곳 LA에서 조용하고 의미있는 불교행사가 열렸다. 바로 한국불교가 미국에 전법을 시작한 지 40주년이 되는 것을 기념하는 법회와 예술제가 열린 것이다. 1964년 서경보 스님이 뉴욕 콜럼비아 대학에 교환교수로 왔다가 버클리 대학으로 자리를 옮긴 후 그 근처에 선원을 연 것을 시발점으로 하여 40년이 된 것이다. 그 후 미국 서부해안 도시의 카멜에 삼보사가 개원되었고 얼마 전 열반하신 숭산 스님이 보스턴과 뉴욕을 중심으로 하는 동부 지역과 이곳 LA를 중심으로 사찰을 개원하면서 본격적으로 미국에 한국불교의 포교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 행사가 열리기 전에는 신문과 TV를 통하여 불교 전법 40주년을 홍보하였고 당일에는 LA지역과 인근에 있는 사찰의 스님들과 신도들이 함께 모여 기념 법회를 가졌다. 보통은 오전에 각 사찰에서 법회를 보고 오후에 기념행사를 많이 가졌으나 이날은 오전부터 모여 기념법회를 함으로써 불교인의 힘을 더욱 결속하고자 하였다. 무대 한가운데 커다란 괘불을 걸고 양 옆에는 탑과 북을 놓아 장엄한 법당의 분위기 속에 각 사찰에서 오신 스님들이 무대 가득히 앉아 계셨다. 아침 일찍부터 모인 신도들은 필요한 준비들을 해나가며 반가운 얼굴들을 만날 때마다 환한 웃음으로 인사를 했다.
법회가 시작되면서 스님들의 힘차고 감회 가득한 기원과 인사말을 통해 지금까지의 포교활동이 결코 쉽지만은 않았음을 느낄 수 있었다. 한국에서 오신 조계종 전 포교원장이신 무진장 스님은 법문을 통해서 어디에도 막힘 없는 맑은 물처럼 살라고 하셨다. 자기라고 하는 아집이 있으면 스스로 막혀 있어서 어디에도 맞출 수가 없기에 명경수와 같은 맑음을 유지하면서 그릇에 담으면 그릇 모양으로 병에 넣으면 병모양으로 바뀔 수 있도록 마음이 경색해지는 것을 경계하셨다. 그리고 부처님이 이 세상에 오신 뜻은 부처님의 지견을 보이시어 중생으로 하여금 부처님의 지견을 얻게 하고자 함이라 하셨다. 이러한 말씀은 미국에 살면서 스스로의 정체성 때문에 막히기 쉬운 우리를 경계하시는 것 같았다. 또한 우리가 한국 사람이라는 그리고 한국 불교라는 뿌리를 유지하면서도 이것에만 막히지 말고 미국에 맞는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한다는 당부의 말씀도 잊지 않으셨다.
제 2부의 예술제 행사에는 경기민요와 사물놀이 공연이 더욱 행사장을 흥겹게 만들었다. 여기저기서 ‘얼시구 좋다’라는 흥겨운 소리가 들렸고 박수 소리는 커져만 갔다. 불자 원로 가수인 최정자 씨가 멀리 시카코에서 오셔 더욱 흥겨운 무대를 만들어주셨다. 그분의 히트곡들은 모두 저물어가는 한 해에 고향 생각이 절로 나는 노래들이었다. 한 곡 한 곡의 노래마다 저마다 고향생각에 잠시나마 행복한 미소를 지을 수 있었을 것이다.
끝까지 박수와 환호로써 자리를 지키시는 노보살님들을 보면서 이분들이야말로 40년의 시간을 같이하신 주인공들임을 알 수 있었다. 많은 분들이 미국에 오시면 적응하기 위해 또는 자식들을 위해 종교를 바꾸지만 이날 오신 한 분 한 분이 모두 어려운 이민 생활에도 불구하고 굳건히 한국불교를 이 땅에 꽃피워온 것이다. 앞으로 한국불교가 미국에서 나아가야 할 방향을 논하고 현재의 상황을 비판하기에 앞서 노보살님들의 깊은 신심에 존경하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할 것이다. 여러 가지 아쉬운 점도 많았지만 우리의 노보살님들이 잠시나마 흥겨운 시간을 갖고 반가운 얼굴들을 만나는 시간이 되었다면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물결치는 낯선 이곳이 반드시 남의 잔치만은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