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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종일 봄을 찾았건만 봄은 보이지 않더니(盡日尋春見不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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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 이야기 그림 이야기 - 김현정 2005년 01월 275호
옛 글에 이르기를 ‘글을 쓰는 것은 졸(拙 : 서투름)을 배우는 것이다’ 하였다. 그림도 크게 다르지 않아 기교와 화려함을 더하면 마치 화장 짙은 여인의 얼굴과 같아 그 본모습을 알 수 없게 된다. 따라서 선비나 출가의 글, 그림은 담박淡泊함을 미덕으로 삼았다. 마음의 찌꺼기가 글이나 그림이 될 일인데 화려함이 더한 그림을 두고 어찌 출세간의 일을 삼을 수 있을까. 기교는 쉬우나 서툴고 담백함은 더욱 어려우니 선가禪家에서 생활을 논할 때 화려함을 거론하지 않는 이유가 그것이다.
세속의 일은 참으로 번거로워 묵은해를 보내는 일이나 새해를 맞는 일 또한 한가하지 않다. 매일 매일 뜨고 지는 해를 두고 가는 해와 오는 해를 구분하여 행보의 경중輕重을 두고 치장하는 일이 일상이 되어 발이 걸려 넘어지는 일이 다반사이다. 담박함이란 일체의 장식을 모두 벗은 모습이니 선禪은 세속을 그리워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다.

임제 스님이 법당에서 설법했다.
“한 사람은 높은 산봉우리 정상에 있기 때문에 몸이 더 나아갈 길이 없고, 한 사람은 시내의 네거리 가운데에 있기 때문에 앞뒤의 구분이 없다. 두 사람 가운데 어느 쪽이 뛰어나고 어느 쪽이 뒤떨어진 것인가? ‘앞은 유마힐維摩詰이고 뒤는 부대사傅大士다’라고 말하지 말라. 오래 서서 법문 듣느라고 수고했네.”

굳이 산봉우리나 저자의 네거리를 마음에 두어 구분한다면 천길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일이리라. 세상에 의지하는 생활에서 무엇 하나 귀하고, 그립지 않은 것이 어디 있으랴.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이라고 하는 것은 아무도 밟지 않은 눈길을 밟으며 가슴에 매화를 품고 그 향기를 찾아 떠나는 일이다.
양해梁諧의 설경산수도는 매화를 찾아 떠나는 이의 모습을 담고 있다. 눈 속에서 그 향기를 더하는 매화는 공부를 하는 이에게는 꼭 이루어야 할 덕목이었다. 매화는 꽃 중에서도 가장 일찍 피어 눈 속에서도 봉오리를 터뜨리는 것이니 세상을 걸어가는 군자는 매화의 이러한 모습을 사랑하여 가까이 두고자 하였다. 그림 안에는 매화가 없으니 그 향은 마음으로 맡아야 한다. 간혹 겨울 눈 덮인 산에 홀로 가는 선비 그림이 있거든 그 안에서 매화향을 꼭 찾아볼 일이다.

하루종일 봄을 찾았건만 봄은 보이지 않더니 盡日尋春見不春
그 봄을 찾아 짚신이 다 닳도록 구름사이 헤매었네 芒鞋踏破雲頭
돌아오는 길 우연히 마주친 매화나무 아래서 歸來偶過梅花下
봄은 그 가지 위에 있으니 이미 세상 가득 봄이었던 것을. 春在枝頭已十方

겨울에 앙상한 가지나 깎아지른 바위산 절벽이 그래도 부드러워질 때가 있다.
눈(雪)의 성질이 그렇다. 눈은 큰 기교 없이 껄끄러움을 덮으며 한 가지 색만으로도 세상을 따뜻하게 한다. 이것이 담박함이다. 가시나무도 눈이 덮이면 예봉을 꺾고, 날카로운 바위산도 부드러운 곡선을 드러낸다. 눈은 사물의 속을 드러내 보이면서도 부드럽게 만드니 하늘이 주는 겨울의 선물이 아닌가 싶다. 차가운 성질을 가졌으나 내 눈(目)과 만나니 그 모습은 따뜻하게 느껴지는 것이 마치 꿈속에서 보는 듯하다.
양해는 강남江南의 사람이니 설경雪景이 익숙한 경치는 아닐텐데 눈의 성질을 간단한 붓질로 잘 드러내 보이고 있다. 흰 종이 위에 흰 눈을 어찌 표현할까. 눈의 담박함을 이미 간파한 듯이 한 붓질도 주저함이 없고,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았으니 눈의 담백함이 이미 기교 넘치는 가을 단풍을 넘어서는 것이다.
화면 중앙 첩첩한 산은 이미 두텁게 눈이 덮였고, 봉우리 사이 계곡 길도 이미 얼어붙었는데, 눈에 덮인 앞길은 발자국 하나 없어 어디에 매화가 있을지 나귀를 탄 나그네는 막막하기만 하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엄동설한嚴冬雪寒, 아무도 찾지 않을 그 매화와 봄을 찾아 나선 나그네의 그 설레는 마음은 나그네만이 알 것이다. 그 설레는 나그네의 마음을 이미 느꼈다면 그림을 보고 있는 내가 바로 그 산수화 안의 나그네이다.

선의 가르침은 서두르는 바가 없다. 일상의 앉고 서고, 가고 옴이 모두 깨달음의 발걸음이 될 수 있다고 가르치기 때문이다. 일상은 이처럼 세상살이에서 떠나 있지 않을지라도 선의 정신은 늘 앞서가야 한다고 가르친다. 선구자는 눈 덮인 산 속에 매화를 찾아 나선 사람처럼 외롭다. 외로우나 즐겁고, 또한 설레는 즐거움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한시도 쉴 틈이 없는 것이 바로 마음의 공부이다. 앞서는 생각으로 부지런한 수행이 덕목이지만 마음은 봄을 그리워하나 몸은 늘 방안에 머물고 만다. 보조지눌 선사는 그 안타까움을 이렇게 표현하였다.

“이 몸과 목숨의 나고 죽음이 덧없어 한 찰나도 보장하기 어려움에랴. 그것은 부싯돌의 불꽃과 바람 앞의 등불과 흐르는 물과 기우는 해로도 비유할 수 없다. 세월은 급하고 빨라 조용히 늙음을 재촉하는데 마음을 닦지 않고 죽음의 문 앞에 그대로 다가서려는가. 예전에 함께 지내던 이들을 생각하면 어진 이도 있고 어리석은 이도 있었으나 오늘 아침 손꼽아보니 아홉은 가고 하나가 남았다. 살아 있는 이도 그들과 같아 하루하루 쇠잔해가니 앞으로 남은 세월인들 얼마나 될 것인가.”

새해를 굳이 구분할 일은 아니지만 세월의 덧없음은 선사禪師에게나 범부凡夫에게나 다르지 않다. 추운 겨울 방문을 박차고 나가 나도 한번 눈 덮인 겨울산을 헤매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