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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사 장경각 탐방에 따른 시스템 도입 기획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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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이야기 - 남일/고려말만대장경 보존국장 2005년 01월 275호
‘지나쳐 간다’라는 말에 마음이 머물러 있는 요즘이다.
새벽녘 여명의 푸르스름이 회백색으로 바뀌었고, 시간에 지쳐 맛난 차 한 잔 우려낼 여유가 사라져버렸는데도 나는 모르고 있었다. 그렇게 지나치고 있는 것이다.
세상은 이렇게 모르고 지나가는 일들과 알고 지나가는 일들의 연속으로 살아지는구나 하는 아주 간단한 살아감의 방편 하나를 배우고 있는 요즘이다.

해인사 고려팔만대장경은 750년의 세월을 지켜온 역사의 한 단편이다.
따지고보면 고려팔만대장경은 지금과 다를 바 없는 당시의 가진 사람들이 자신들의 안위와 권력만을 지향하며 국가의 평화와 국민의 행복을 외면한 대가로 빼앗긴 국토에서 다시 참회와 원력으로 탄생한 화합과 상생의 상징물이다. 부언하자면 글자 한자 한자를 새기며 발원하고 절을 했던 각수刻手에서부터, 경판 한 판을 새기는 데 드는 비용을 지불하며 가정과 가족을 위해 기도했던 시주자, 나무를 고르고 재단하고 제판한 목수, 종이와 조각칼을 만들던 기술자, 5,000만자에 달하는 글자를 쓰고 교정하고 감수한 스님네들, 스스로의 잘못을 인정하고 국민들의 힘을 하나로 묶어보겠다는 집권자들의 바람과 간절함이 조화를 이루어서 전무후무한 세계문화유산이자, 인쇄문화사의 정점이고, 세계 불교사에 가장 위대한 성보를 탄생시킨 원동력이 되었다는 것이다.
비록 국가는 피폐하여 여력이 있는 상황은 아니었지만 왕과 관료들은 국민들의 하나 된 마음이 필요했고, 하나로 모을 수 있는 방법은 국교國敎로서 국민들의 귀의처였던 불교의 가르침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으므로 결국 부처님의 가피력을 바라는 애절한 기도가 응집되어 도무지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시기에, 당시로서는 천문학적인 예산이 필요한 사업을 이루어낼 수 있지 않았나 생각된다. 다시 말하자면 고려팔만대장경을 단순한 문화사적 의미에서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그 내면 깊숙이 자리잡고 있는 우리 민족의 정신적 결집, 글자 한자 한자에 서린 당시 민중의 한과 바람의 인문사적인 측면에서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고려팔만대장경의 생명력인 것이다.

해인사에서는 오래 전부터 고려팔만대장경의 보존을 위해 노력해왔다.
직접적으로는 경판의 보존을 위해 청소를 하고, 경판에 관련된 학술적 자료를 데이터베이스화 하고 있으며, 그 내용에 있어서는 모든 국민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이미 전산화를 마친 상태이다. 또한 경판과 유기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판전(대장경을 봉안한 건물)과 판가(대장경을 꽂아두는 책장)에 대해서도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매년 조금씩 보수를 하고 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경판보존을 위한 기본적 직접행위에 불과하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보존의 영역에는 간접적 역할도 상당히 중요하다. 지구온난화로부터 생겨나는 지역적 환경변화와 인간중심의 개발논리로 인해 발생되어질 인위적 환경파괴, 문화유산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는 무분별한 탐방문화에 의한 파손·훼손의 문제 등 간접적 환경문제는 고려팔만대장경판의 보존에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문제는 비단 우리 나라나 해인사에만 국한시키지 않더라도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는 자연이상현상에서 충분히 유추해볼 수 있다. 또한 우리 사회 곳곳에서 자행되어지는 문화재 훼손의 사고들에서 해인사가 지고 있는 고려팔만대장경 보존에 대한 부담은 무엇으로도 표현할 수 없다. 그러한 시점에서 해인사에서는 특단의 방법을 제시하였다.
‘해인사 장경각 탐방에 따른 시스템 도입 기획안’이다.
내용은 간략하다. 모두 3단계로 나누어져 있는데, 목적은 고려팔만대장경의 보존을 목적으로 탐방 시간의 설정과 기간설정, 탐방방법을 설정하여 장경각에 미칠 악영향에 대해 대비하고, 유사시에 일어날 수 있는 심각한 범죄행위에 대해서 미리 예방하고 차단하자는 취지이다.
1단계는 올해 3월부터 시행하며 일주일에 월요일은 쉬고, 6일은 개방하되 오전 오후 개방시간을 정하여 해인사에서 지정한 전문안내자의 동행을 원칙으로 장경각을 탐방한다는 것이다.
이때에 시간을 맞추지 못한 분들을 위해 해인사 경내에 안내센터를 개설하여 기다리는 시간 동안 각종 고려대장경에 관련된 자료를 열람하거나 청취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운영할 계획이다.
2단계는 2007년부터 운용할 계획인데 1년에 3개월 정도의 기간만 개방한다는 계획이고, 3단계는 2010년부터 운영할 계획인데 2단계의 시스템을 그대로 유지하되 10년을 주기로 1년씩 문을 닫아서 장경각이 긴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하자는 의미의 ‘문화재 휴식년제’를 도입하고자 한다.
이번 기획안의 목적에는 별도로 몇가지 의도도 숨어 있다. 우리 나라 관람문화를 좀 바꿔보자는 개혁(?)적 발상과, 해인사를 찾는 모든 사람들에게 고려팔만대장경의 의미와 교육적 효과를 최대한 고취시켜보자는 문화사적 욕심, 그리고 동등한 입장에서 비장애인 위주의 관람시스템을 개선하여 장애인도 아무런 불편없이 해인사와 장경각을 탐방할 수 있도록 시설 및 인적 자원을 확보해야 한다는 배려의 마음도 내포되어 있다. 해인사를 찾는 탐방객이 1년에 약 100만명에 다다른다고 한다. 이들을 위한 변변한 안내시설 하나 운영하지 못하는, 그래서 그들에게 우리의 자랑이 무엇이고, 우리 다음 세대들에게 무엇을 물려주어야 하는지에 대한 의미 한번 전해주지 못한다면 이 또한 우리의 부끄러운 바가 아닌가 하는 자숙의 의미도 스며들어 있다.

고려팔만대장경판은 유한생명체有限生命體이다.
아무리 자연환경적 조건이 보존에 뛰어나다 해도 시간의 엄연함에는 별 도리가 없다
그리고 ‘보존’이라는 단어에는 시간의 연속성이 포함되어 있어서 어제와 오늘 내일이 함께 이어져 있어야만 진정한 보존의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만약 내일이라는 시간의 줄이 끊어진다면 그 떨어진 내일의 시간 속에는 어제가 존재하지 못하며, 어제 속에 포함되어진 모든 기억조차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