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호 보기


회고, 그리고 다시 제시석題詩石 앞에서

이전 게시물 다음 게시물
홍류동천 - 김홍영 2004년 12월 274호
홍류동천紅流洞天에 들어선 지 어느덧 세 해가 지났다. 그 동안 가야산 여러 골짜기를 여기저기 다녀보았는데, 해인사 경내를 지나 가야산 정상까지 올라갔다가 내려왔다. 이렇게 하는 사이에 계절에 따라 변하는 가야산의 천태만상千態萬象에 눈과 귀가 미쳤는데, 즉 봄날의 훈훈한 바람 속에 핀 꽃과 한여름 녹음이 짙은 가운데 계곡을 울리는 물소리와 가을 산을 장식하는 풍국楓菊과 겨울에도 시들지 않는 송백松栢을 다시 떠올린다. 이러한 풍광은 언제나 한결같은 모습으로 산 밖의 사람을 기다릴 것이다.
처음 이 골짜기에 들어설 때 농산정籠山亭 건너편의 제시석題詩石을 바라보고 아득히 천년의 세월을 거슬러 최고운崔孤雲이 가야산에 은거하며 속진의 시비를 피하여 깊이 산중에 묻혀 지내고자한 당일의 심회를 느끼고, 또 농산정 주변에 즐비한 석각石刻 제명題名에서 홍류동의 아름다운 경관과 함께 그 이름이 오래 전하기를 바랐던 이들의 소망을 생각하였다. 옛날 인악仁嶽 스님이 홍류동을 지나 해인사로 향했던 길을 따라가면서는 인악의 시를 나지막이 읊조리며 선경仙境에 들어선 흥취를 한껏 즐겼다.
해인사로 걸음을 옮겨서는 창건 이래 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전해오는 수많은 고사와 유적을 살펴보았다. 돌이켜보건대, 예전 이곳에서 이루어진 불승佛僧과 유사 儒士의 교유와 팔월 보름 조남명曺南冥과 성동주成東洲의 만남은 참으로 인상 깊은 일이었다. 그리고 사명대사가 해인사에 주석했다가 입적한 뒤에 남긴 진영眞影과 유품에서는 당시의 자취를 느꼈다. 경내의 유적 가운데 학사대 전나무, 해인사에 소장된 유학자의 문집 책판, 추사秋史와 만파萬波 스님의 글씨는 지금도 보존되어 있으나 애석하게도 봉황문 안의 봉명석鳳鳴石, 해인사 사고史庫 등은 지금 그 흔적을 알 길 없다. 장경각에 들어서서는 수다라장脩多羅藏 편액이 걸린 판전板殿의 둥근 문 안쪽에 춘분 추분의 오후 3시경을 지나 연꽃 모양의 그림자가 서서히 나타나는 광경을 설레는 마음으로 지켜보면서는 옛 장인匠人의 기량에 탄성歎聲을 발하기도 하였다.
이제 세 해에 걸친 홍류동천의 심진尋眞 행각을 그치고, 선경을 뒤로 한 채 속진으로 향하는 걸음이 처음 지나쳤던 제시석 앞에 다시 멈추었다. 그리고 그 동안 이곳에서 노닐었던 여러 가지 기억들을 돌이켜 생각한 뒤, 잠시 앉아 구안자具眼者의 조롱을 무릅쓰고서 최고운의 시에 차운하여 다음 졸작을 남기고, 속진의 시비가 막힌 이곳 홍류동천을 거듭 찾을 것을 기약한다.

심진공극편중만 尋眞遍重巒 진경을 찾는 걸음 겹겹의 봉우리 두루 누비니
최로유풍재차간 崔老遺風在此間 고운 선생의 유풍이 이 사이에 남아 있네
학사당년서벽의 學士當年栖碧意 학사가 당년에 벽산碧山에 깃든 뜻 무엇이던가
응연진효격운산 應緣塵隔雲山 응당 속진의 시비가 운산에 막혔기 때문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