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의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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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담는 오솔길 - 진명
2004년 12월 274호
새로 옮긴 거처는 가까운 주변에 산이 있다. 뒤로 난 창문을 열면 소나무가 눈에 들어온다. 공기도 가볍고 새소리도 가까이 들린다. 코끝이 싸아한 기분 참 오랜만에 느껴보는 신선함이다. 주변에 새소리며 바람 소리가 있어도 마음의 귀를 열어두지 않으면 들리지 않는다. 몇 개월 동안 주변 어디에나 있는 그 소리에 마음을 두지 못했던 듯 하다. 마음에 그 소리와 풍경을 드려 놓을 여유가 없었다고 할까.
첫 서리가 내리던 날 우수수 떨어진 빨강색 단풍잎이 밉지 않아 두고 보던 일, 옆 집 할머니가 작은 텃밭에 가꾼 고구마와 무우를 뽑아 문 앞에 놓아 둔 일, 지하철을 타고 터미널로 가던 날 한 쪽 다리를 잃은 장애인의 손에 따뜻하게 천원을 건네던 여학생의 미소가 이 가을 후미에 남은 가슴 따뜻한 기억이다. 올 겨울은 김장이며 문풍지를 바르며 겨울 채비를 하는 것이 아니라 나무에 필요 이상의 가지는 잘라내고 도량을 정리하며 마음의 월동 준비를 했다. 과감히 버리고 남길 것을 선택하면서 말이다.
한 해를 마무리 하는 이 12월은 특히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장단점을 더 많이 생각하게 하는 달이다. 한 해를 시작하면서 세웠던 일들을 하나하나 점검하다 보면 실천에 옮겨서 꾸준히 성취한 일 보다는 이루지 못한 일들이 더 많기에 그 실천하지 못함을 생각할 때면 주변 환경이나 어떤 능력에서 오는 부족함 보다는 자신의 단점에서 비롯된 것들이 더 많을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완벽하지 못한 것이고 장단점을 가지고 있게 마련이다. 그 중에 단점을 찾고 고쳐 나가기란 쉽지 않은 일인데 그래도 그것을 찾고 인정하는 달이 12월이 아닌가 싶다.
사람들은 그래서 나름대로 자기를 비추어 볼 수 있는 거울을 다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그것이 자연이나 사물일 수도 있고, 아니면 스승이나 친구, 가족이나 이웃이 될 수도 있고, 베스트셀러는 아닐지라도 자신을 감동시키고 변화 시키는 한 권의 책일 수도 있다. 꼭 사람이어야 하는 법은 없다. 자기를 변화 시키고 고쳐 가게 하는 것이라면 말이다.
세간에 사는 사람들은 한 해의 오고 감이 큰 일을 계획하고 도모하며 정리하는 깃점이 되어 주고 있다. 우리 승가도 세간에 맞물린 살림살이야 그렇다지만 큰 힘을 축적하고 자기의 소리를 듣는 시간이 바로 안거가 아닌가 싶다. 지난 11월 말 즈음에 전국 선원에서는 동안거가 시작 되었다. 물론 나는 방송실 안거가 이어지고 있어서 바람같이 떠나는 도반의 뒷모습만 바라봐야 했지만, 여기 방송 스튜디오 안거도 만만치가 않다. 8년 전 매일 생방송을 시작하고 아침 9시 5분이 되면 무언가 말해야 한다는 무게감이 크게 자리했고 무엇보다 시간에 매어 있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도반스님들이나 지인들의 조경사가 있어도 미리 며칠 전에 계획되지 않으면 떠날 수가 없고, 안거 해제를 하고나면 도반들과 함께 훌쩍 여행을 떠날 수도 없는 것이 매일 생방송을 하는 나의 고충이었다. 나뿐만이 아니라 이런 고충은 아마도 매일 생방송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다 격고 있는 일일 것이다.
그렇게 마음에 스트레스를 쌓아가다 보면 결국 수행자가 하기에는 생소한 이 방송에 마음이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얼마 되지 않아 몰래 사라져버릴 것 같아서 내 자신의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가장 현명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나는 이 스튜디오 안에서 마음이 자유롭지 못하고 최선을 다하지 못하면 그 어디에도 자유는 없다고 빨리 정리했다. 그리고 자주 가고 싶은 산과 계곡은 가슴에 품기로 했다. 그렇게 큰 산 하나 품고 방송과 일 속에서 안거를 시작한 지 꽤 오랜 시간이 흐르고 있다.
자신이 위치한 곳에서 하고 있는 소임을 통해 수행 삼지 못하면 그 어떤 자리에 있어도 마음 안에는 다른 자리나 일에 대한 아쉬움이 있어 충실하지 못할 것이다. 강단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 학자가 선원 좌복 위에 앉아 있는 자기를 그리워하는 일이나, 선원 수좌가 화두 삼매에 들지 못하고 머릿속에서 책장만 넘기고 있다면 그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말이다. 매일 숨 쉬고 있는 그 안에 삶에 대한 희망과 절망이 함께 한다는 것, 번뇌와 보리가 함께 하고 행복과 불행이 같이 한다는 것을 알면 마음이 현재에 오롯하게 머무를 수 있을 것이다.
절망이 있어 희망을 더 크게 품게 되고 번뇌가 많아 보리가 더 빛나듯이 더불어 있기에 더 소중하고 아름다운지도 모른다. 큰 산에 나무와 잡초가 서로를 거스르지 않고 더불어 아름답게 존재하듯이 사람도 각자 다른 위치에서 다른 모습으로 살면서 서로의 거울이 되고 희망이 되는 일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그래서 나는 성성한 눈빛의 수좌스님들이 꼿꼿하게 앉은 모습을 생각하며 나를 세우고 내 안살림을 점검하고 있다. 가끔 만나는 도반들이나 삶의 모습은 다르지만 삼소회(불교, 천주교, 원불교, 성공회 여성수도자 모임) 회원들이 나를 보는 좋은 거울이 되어 주고 있어 그 인연들에 감사하고 있다.
지난 여름 하안거를 마치고 하루에 천배씩 절 기도에 들어간 도반스님의 기도정진에 기쁨이 있고, 수녀님의 다 헤진 옷과 신발에 나눔과 넉넉함이 배어 있어 그것도 고마움이다. 동안거를 떠나는 사제의 걸망에서 자기를 찾고자 하는 푸른 눈을 보았고, 텅 비워진 들녘에서 새로운 인연의 씨앗을 보았다. 그리 넉넉하지 않은 살림이지만 소년소녀 가장을 위해 앞장서는 불자의 따뜻한 발걸음은 또다른 이의 용기고 희망임을 보았다. 버려진 아이들의 부모가 되어 그 아이들이 부족함 없이 당당한 사회 구성원으로 자리하도록 배려하는 그 마음에서 배어나는 보살의 향기를 느꼈고 아이들의 해맑은 미소에서 그들의 미래를 보았다.
땅으로 스며드는 빗물에 감사해 본적이 있는가. 유리창에 머물다간 한 자락 겨울 햇살에 고마움을 전해 보았는가. 반가운 지인의 편지를 전해주는 우편배달부에게 따뜻한 말 한 마디 건네 보았는가. 목적지에 다다라 버스 기사님께 “수고 하셨습니다” 라고 인사말을 건네 보았는가. 공양시간 음식을 마주하고 농부의 손길에 감사함을 전해 본 일이 몇 번인가. 얼굴이 시린 날 추위를 가려주는 옷가지가 자기 몸과 인연이 되기까지의 감사함을 생각해 보았는가. 심신을 건강하게 낳아준 부모님께 몇 번이나 감사해 보았는가. 이렇게 생각해 보니 감사하고 고마워해야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나뭇잎을 다 내려놓은 12월 산에서는 나무들의 모습을 생긴 대로 볼 수 있다. 곧은 나무는 곧은 대로 굽은 나무는 굽은 대로 나무 가지가 많거나 적음이 그대로 드러난다. 사람도 겨울에는 밖으로 활동을 지향하기 보다는 내면으로 침잠하기 쉽다. 그래서 나는 자신을 보는 달이고 자신의 허물을 발견하는 달이라고 정해 보았다. 그리고 부족함을 탓하며 가난해지기 보다는 자신이 소유한 것을 생각하며 나누고 넉넉해지는 달이었으면 좋겠다. 감사한 인연들을 생각하고 그 마음을 전하는 달이 되고, 그래서 다시 희망을 얻고 용기를 채워가는 달이면 좋겠다.
구름이 사라지고 밝은 해가 뜨면 사물의 그림자는 감출 수가 없다. 그렇듯이 밝고 맑은 세상 사람들의 보살행을 통해 자기의 굽어 있는 눈길과 모난 마음을 비춰보는 거울로 삼으면 좋을 일이다. 상대방의 허물을 찾으려고 애쓰기보다 칭찬할 것이 무엇인가 찾으려고 애쓰는 사람, 남의 언어습관을 시비하기보다 자기의 언어습관을 살피는 사람, 남 앞에 서서 잠시 우쭐한 사람보다 조금 뒤에 있어도 오래도록 함께 있어 즐거운 사람, 하나를 더 가져서 즐거움을 얻는 것보다 비워 낸 자리에 깃든 충만함을 아는 사람, 무엇보다 자기를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보다 알려고 노력하는 시간을 갖는 사람이길 바람 해 본다. 그래서 12월에는 회한 속에서 희망을 보는 달이기도 하다. 그러고 돌아보니 실천 못한 일도 많고 나에게도 허물이 많다.
그동안 하루하루 변함없는 신변잡기의 글을 읽어준 해인지 가족 여러분께 감사드리며 모두가 행복하시길 기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