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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사 수련동문회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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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달의 이야기 - 박정배/수련동문회 2004년 12월 274호
흔히 남들은 ‘이러이러한 계기로 불교와 인연을 맺었다’고들 하는데 나는 아무리 되짚어도 특별히 생각 나는 계기가 없다.
젊었던 시절에 한번쯤 가져보는 막연한 상상 속에서 출가를 꿈꿔보기는 했지만 뚜렷하게 내가 불교와 인연을 맺은 것이 언제이고 어떤 계기 였는지도 알 수가 없다.
다만 인연이라면 간간이 불교에 관련된 책들을 보았다는 것뿐, 그것도 꼭 선택해서 본 것이 아니라 흔히 말하는 잡독雜讀의 과정에서 간간이 접했을 뿐 이것이 꼭 불교와 연을 맺어준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막연한 불심속에 어느해 월간 ‘해인’이라는 잡지를 만나게 되었다.
지금처럼 제본이 잘된 책이 아니라 달랑 종이 두 장을 반으로 접어서 8면으로 나눈, 책이라기보다는 마치 학창시절에 보던 학급문고 수준이랄까.
외견은 그랬어도 한 달에 한 번 전해오는 ‘해인’에서 조금이나마 불교를 알게 되었지만 그때는 지금처럼 그 책들의 소중함을 몰라서 절반은 유실되었다.
통권 68호까지 발행된 책 중에 남은건 35권뿐이지만 그중 통권 37호의 창간호는 나에게 가장 소중한 장서목록의 1호가 되어 있다.
그 창간호 첫장을 들추면 방장 성철 스님, 부방장 혜암 스님, 수좌 법전 스님, 주지 일타 스님 이렇게 큰스님들의 명호가 큼지막하게 눈앞에 다가온다.
현 종정(법전) 스님 외에는 생전에 뵙지는 못했지만 때로 힘들고 지칠때면 난 그 안에서 그분들을 만나고 그분들의 미소에서 위안을 얻곤한다.

‘해인사 수련동문회’
나에게 정말로 뜻있고 소중한 모임이다.
‘해인’으로 인연을 맺은 지 20년 만에 정식으로 해인사와 인연을 맺었으니 나에게 그 길은 멀고도 먼 길이었다.
관념의 종교에서 현실의 종교로, 마음만 불자에서 미약하나마 수행修行의 불자로, 이렇게 4박 5일의 여름수련은 나에게 대단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지난 세월 내가 생각했던 불교는 할머니 아주머니들이 초하룻날 초 하나와 쌀자루 이고 절에 가서 불공 드리며 복이나 비는 그런 종교로 알고 있었는데…… 스님들은 한유하게 지내며 신도들의 불공이나 드려주는 정도로밖에 몰랐던 상식들을 순간에 뒤집는 두뇌의 혼란이 지나고 마지막날 재가오계를 받으며 마음속으로 굳힌 것이 있으니 그 내용은 이렇다. “어느 누가 뭐라 해도 스님들은 훌륭하시다!”
설사 어떠한 문제가 있다 해도 너무 단편적인 생각이라 할지라도 나로선 충분한 이유가 있다.
평생을 새벽 3시에 일어나야 하는 생활을 흉내낼 수 있을까?.
음식이란, 맛과는 관계없는 삼시三時 공양.
나는 되짚어 본다.
수행의 척도는 고사하고 ‘내가 이러한 생활을 할 수 있을까?’
대답은 “아니다”였다.
4박 5일의 수련은 나에게 이것을 가르쳐 주었으며 모든 사람들이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고 “세상에서 나보다 훌륭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는 것을 배웠다.

요즘 해인사는 현응 주지스님께서 새로 오셔서 소임스님들의 개편과 함께 많은 변화가 있다. 이에 발맞춰 우리 수련동문회도 장시간 의견을 취합하는 시간을 가졌다.
가장 큰 안건은 수련동문회는 철야정진을 기본으로 하지만, 먼곳에서 차량을 직접 운전하고 오시는 법우님들의 안전을 위하여 그분들이 마땅히 쉴 곳이 없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로 부각되었다.
넉넉하지 못한 방사에는 우리 회원 외에도 선우회와 공유하며 또한 방문하시는 일반 불자님들까지 함께 사용하다보니 불편하기가 이루 말할수 없다.
또 하나는 활성화 문제가 거론되었는데 여기에는 수행 프로그램의 다양화가 지적되었다.
전자는 해인사의 배려 문제이기에 접어두고 우리들의 문제인 활성화 문제와 프로그램의 다양화 문제를 생각해 보았다.
일년에 열두 번 모임을 봄 가을 사찰순례 두 번, 신입법우 환영회, 연말 총회, 신년 법회, 경우에 따라 초파일 운력 등을 빼고나면 6번 남는다. 마애불 참배, 성철 스님 사리탑 정진등을 계획하지만 일기 관계로 무산되는 경우가 많으니 집행부의 고충이 이해가 된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여기서 우리는 심각하게 한번 되짚어 봐야할 것이 있다.
우리는 각자 한 달에 한 번 해인사에 가는 분명한 이유에 대해서 스스로에게 분명한 당위성이 없다면 하루의 수행일망정 힘만 들고 귀찮아서 나태해질 것이다.
나는 이런 문제를 오래 전에 이렇게 생각하고 결심을 한 적이 있기에 소개해 보려 한다.
해인사는 역사적으로는 한국불교의 법맥을 지켜오는 법보종찰이며 현실에서도 청담 스님, 성철 스님, 자운 스님, 혜암 스님, 일타 스님 등 큰스님들의 숨결이 묻어 있으며 지금도 종정이신 법전 대종사께서 주석하시는 대도량이다.
더구나 스님들만 수행하시는 그곳에 재가자로서 발을 들이고 단 하루지만 한솥의 밥을 먹고 함께 수행할 수 있다는 뿌듯한 생각으로 달려간다.
다양한 프로그램이 없어도 또 큰 법문이 없어도 좋다.
그곳에서 전해지는 가풍과 위의威儀 만으로도 내 자신을 다잡아 추스르며 한 달을 보낼 수 있으니….

‘자비수참’
정말 올해는 더욱 값진 한 해였었다.
포교국장 스님의 공석으로 허전한 자리를 율원장 혜능 스님께서 열과 성의로 우리들을 지도해 주시고 계시며 더구나 ‘자비수참’기도를 함께해 주시니 수많은 절과 그 많은 불자들과의 인연이 어찌 귀하지 않으랴….
서울, 부산, 대구, 구미, 대전, 청주, 울산, 진주, 마산, 창원, 전주, 제주도 까지 정말로 대단한 법우님들, 이곳이 해인사가 아니면 어디서 만날까! 모두가 소중한 도반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