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 것과 없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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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달의 이야기 - 여몽/동학사승가대학 대교과
2004년 12월 274호
몇 년 전, 그렇게 커다란 남자의 눈물방울을 본 적이 없다.
남자들은 여자 앞에서 눈물 보이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고 다른 방법으로 눈물을 대신하여 감정을 극복하며 지낸다고 생각하던 시절이다. 그런 환경에서 자라서인지 눈물을 추억으로 삼을 만한 일도 없었던 것 같다.
출가를 하겠다고 결정을 내리고 제일 먼저 한 것은 짐정리다. 옷가지와 책, 사용하고 있던 통장, 핸드폰… 이러한 것들을 정리해서 사소한 일로 연락을 주고받는 번거로움은 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도 남겨두어야만 할 이유가 내게는 없었다. 두 번째 한 일은 아버지를 대신해 집안의 어른인 큰오라버니를 찾아뵈었다. “동생으로 생각하면 남들처럼 살았으면 하지만 부처님 제자가 된다고 하니 기쁘기도 하다”며 같이 살고 있었던(절에 열심히 다니는) 언니의 말을 뒤로 하고 집을 나섰다. 당시 오라버니는 일이 있어 며칠 서울에 올라오셨는데 만난 곳이 한강변 어디였던 것 같다. 출가한다고 그리고 내일 간다고 간단하게 말했던 것 같다. 평소처럼…. 갑자기 당황스러웠다. 평소에는 전혀 없던(한 번도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오라버니 눈에서 굵은 눈물방울이 뚝! 뚝! 떨어지는 것이다. 따가운 햇볕아래 코끝이 시큰해져 왔던 기억이 남아 있다.
지난 철인가, 방학이 되어 영화 ‘아는 여자’를 본 적이 있다.
6개월이라는 시한부 인생을 살게 된 주인공인 남자에게는 남들에게는 있는 3가지가 없다. 내년이 없고, 첫사랑이 없고, 술을 마시면 주사가 없다. 내년이 없는 이 남자는 하루하루를 정리하며 보내는데 술을 마시면 주사가 생겼고 첫사랑을 만나게 되고 그리고 잘못된 진단은 이 남자에게 내년이 있게 된다는 내용이었는데 천연덕스런 연기, 인간적인 따뜻함, 무엇보다도 머물고 싶지 않은 상황에서도 억지로 어떻게 해보려는 고통스런 모습이 아니라 편하게 인연을 받아들이면서 느린 템포로 가는 그 영화가 마음에 들었다. 이렇게 영화를 봄으로서 전에는 없던 새로운 기억과 느낌이 생겼고 오라버니를 만난 것은 몇 년 전, 복잡했을 감정의 그 눈물은 이제 없다. 있다가 없어지고 희미해지는가 하면 뭔가 다시 생긴다.
졸업을 앞두고 가장 크게 느껴지는 것은 공부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도반들과 헤어져 이제 다른 인연으로 살게 된다는 것이다. 석남사에서 원두소임을 살 무현 스님, 1~2년 동안은 은사스님을 시봉하고 선방에 가는 원력을 세운 동현 스님, 그리고 옆방에서 1년을 함께 한 홈페이지스님(승가대 진학), 우리 반 막내스님들…. 특히 무현 스님에 대한 기억은 참으로 남다르다. 평소 먹을 것이나 다른 일을 할 때도 혼자만을 생각하기보다는 언제나 반스님들을 챙길 줄 알고 대중을 생각하고 귀찮아 보이는 일들에도 쉽게 마음을 낸다. 아픈 사람을 챙겨주는 모습은 거의 보살이 아니고서는 하기 힘든 일을 한다. 이러한 스님들과 헤어지려고 하니 지난 4년이 슬라이드처럼 지나간다.
‘새벽달이 나를 부른다’며 문필봉 옆 산등성이에 걸려 있는 보름달 좋아하기를 4년째, 올해가 가고 내년이 온다. 한 해가 기울어져 가는 동학골의 겨울 밤하늘이 유난히 총총하다. 그런 나에게도 올해는 있는데 내년에는 없는 것이 있고 올해는 없는데 내년에 생기는 것이 있다. 내년이면 강원생활이 없고 강원을 같이 한 도반이 없다. 동학사를 떠나니 화장길 앞 계곡의 물소리도 가까이 듣지 못할 것이고 쉬는 날이면 관음봉을 오르는 일도 없을 것이다. 대신에 본사에서 새로운 소임이 맡겨질 것이고 밉고 고마운 도반들이 없는 대신에 사형들과 사제들을 만날 것이며 초하루 보름이면 산을 오르는 대신에 법회준비를 할 것이다.
11월에는 있는데 12월에 없는 것도 있다. 편집실 소임을 회향할 것이고 대교반이 사용하는 실상선원에 없었던 경상과 좌복이 생긴다. 내 자리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매일매일 ‘옷깃만 스쳐도 인연’인 사람들과의 만남, 스쳐지나가는 바람, 저 밤하늘의 초생달을 바라보는 인연에까지 닿는다. 낙엽이 떨어져 산등성이가 훤히 보이는 산사의 솔잎가지 위에 하얀 눈이 12월에는 내릴지도 모르겠다.
새해 1월이면 졸업을 앞두게 된다. 치문에서 화엄경까지 함께 한 반스님들과 부처님의 발자취를 따라 가보는 인도 성지순례를 떠나게 되었고 이 졸업여행에서 4일 동안 달라이라마의 입보리행론 설법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이틀이 지나고 3일이 되던 오후던가. 사람이 화와 분노를 내는 것은 ‘원하지 않는 것을 하게 하고 원하는 것을 방해하는 것에서 분노가 생기네’라는 경구를 인용하여 화와 분노의 원인을 지적한 것이었는데, 내가 깊게 인식한 부분은 그 다음이었다. ‘적이나 혹은 벗의 부당한 행동을 보게 될지라도 이와 같이 연에서 비롯된 것이니 미워하지 말고 측은한 마음을 일으켜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부당한 행동을 보더라도’ 하는 부분에서 잠깐 생각이 멈추었다. 놓치고 있었던 그 무엇, 부족하다고 생각했던 그 무엇이 짚이는 듯하였다. 인연을 수순하지 못하고 역류하는 내 모습이 그 안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었다.
4년을 함께 지내다 보니 유난히 마음이 통하는 도반이 있는가 하면 아무리 이해를 하려고 하여도 통 코드가 안 맞는 스님이 분명히 있다. 여기에는 편함과 불편함을 오고가는 말과 행동이 따라오기 마련이다. ‘서로의 공부에 이익이 없으니 저 스님과는 더 이상의 인연을 만들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을 내린 적도 있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있는 그대로’ 보려는 노력, 더 나아가 미움이 아니라 측은히 여기는 마음을 일으키도록 해야 한다는 것을…. 고통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을 안타까이 여기는 마음이 없이는 일으킬 수 없는 것들이다.
이러한 마음을 내지 않기 위해서는 ‘습’을 잘 들이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한다.
올해의 인연이 다하여 흩어지고 내년의 인연이 오고 있는 즈음, 여전히 친한 사람과 불편한 사람들 사이에서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게 될 것이고 때론 하고 싶으나 하지 못할 상황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유의지가 있는 그래서 대자유인이 되고 싶은 나! 어떻게 인연을 지어갈 것인가, 마음을 어떻게 낼 것인가를 늘 염두에 두고 살아갈 것이다. 어떤 일이든 항상 선한 동기를 부여하도록 그래서 탁한 것을 걸러내려는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내년에는 진리에 대한 확고한 신념으로 퇴굴심이 없는 최상의 부드러운 마음을 가지도록 노력해 볼 작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