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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서 있는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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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달의 이야기 - 우성/해인사승가대학 사교과 2004년 12월 274호
해인사는 매주 일요일이면
전 대중이 도량청소 울력을 한다.
어느 절이나 비슷하겠지만
해인사 일주문 주변에는
낙엽송이 많아,
다른 계절과 달리 초겨울에는
낙엽 쓸어 모으는 일이 큰일이다.
모처럼 겨울 산사를 찾은
이들에게는 수북이 쌓인 낙엽을
밟는 낭만이 솔솔하겠지만,
청소하는 이들에게는 시간과 힘이
배로 들기에 여간
성가신 게 아니다.
그래도 싫은 표정 없이 묵묵히
비질하는 손을 바쁘게 움직인다.
스님들의 잿빛 승복과 떨어진
잎새들이 묘한 조화를 이뤄 너무도
자연스럽고 경건하게까지 보인다.
꽃은 시들기에 그 아름다움이
빛을 발하고, 죽음이 있기에
유한한 생명의 소중함을 알듯이,
앙상한 나무 등걸을 보며
세월의 무게와 소중함을 실감한다.
현상계의 무상함을 느끼며
분주하게 지나왔던
지난날을 돌아본다.
출가하여 이번 겨울까지 하면
일곱 번 겨울을 보내는데,
처음 출가당시의 갑갑함은
얼마나 해소되었고,
공부는 얼마나 진척이 있었는지
자문해보지만 자신이 없다.
아는 스님이 내게 선정 삼매를
체험해 보셨냐고 물으면서
‘십년 동안 그런 경험 없다면 우리는
헛산거죠’ 하던 말이 생각난다.
그래도 아직은 사년이 남았구나
위로해보지만 왠지 공허하다.
한 해를 보내는 마지막 길목에서
항상 하는 반성과 후회지만
올해는 가슴마저 답답하다.
며칠 전 줄곧 선방만 다니는
도반을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작아지는 내 모습을 보았다.
헤아리기 어려운 깊이와 차분함,
점점 익어가는 그의 영적 성장에
자괴감이 든다.
그런 생각은 처음이다.
처음 만났을 때 서로의 모습은
비슷했던 거 같은데 말이다.
마치 백두산에 떨어진 두 방울의
물이 흘러 흘러 하나는 동해,
다른 하나는 서해바다가
되는 차이로 벌어지듯이 저만치
앞서가는 도반의 모습을 본다.
물론 마음공부는 조급함이나
상대적 비교가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좀더 진지하고
철저하지 못한 생활 때문에
씁쓸하다.
2년 전 동안거 때
부득이한 사정도 있었지만,
좀더 용맹심을 내기 위해
대중처소를 떠나 강원도 산골에서
두 달간 토굴생활을 한 적이 있다.
출가해서 인적도 없는 곳에
혼자 살아보기는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해 겨울은 유난히 눈도 많아
발도 꽁꽁 묶인 채로 살았다.
반찬은 김치와 김이 전부였지만
다행히 쌀은
두 달 먹을거리는 되었다.
친구래야 밤마다 찾아오는
노루와 이른 아침에 방문하는
잉꼬새부부, 다람쥐가 전부였다.
세상에 이런 곳도 있나 싶을 정도로
정적과 여유로움이 너무 좋았다.
나름대로 계획도 세워
열심히 정진했다.
그런데 20여일 지나니까
퇴굴심도 나고 게을러
지기 시작하면서 생활의 리듬이
하나씩 무너지기 시작했다.
한 번 생활이 무너지기 시작하며
누구 눈치도 안 보니
겉잡을 수 없었다.
수행자는 죽음 고독 권태로움에
초연해야 한다고 그랬는데
사람이 너무나 그리웠다.
귀찮게 생각했던 대중들과의
부딪침도 하나의
그리운 추억으로만 남았다.
기대가 커서였을까
두 달이 지났을 때는
좋은 경험 했다는
위안보다 후회가 더 컸다.
그때 결심하길 공부가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기 전에는
대중처소를 떠나지 말고,
조바심내거나
욕심 부리지 말자는 것이었다.
그렇게 굳은 마음을 먹고
해인사로 돌아와서 이년을
보냈건만 별로 나아진 게 없다.
과거의 전철을
또 밟고 있는 느낌이다.
만족을 모르는 중생의 삶에서는
당연한 결론일텐데….
단지 내가 얻은 것이라면
인제는 산사람으로 살 수밖에 없는
운명 같은 것을 느낀다고 할까.

최잔고목의한림殘枯木依寒林
부러지고 굽은 고목 나무가
겨울산을 지킨다

겨울산을 보면
항상 이 말이 생각난다.
아름드리 좋은 결을 가진
나무들은 목수들에게
다 베어지듯이 저 잘나고
재주 많은 이들은 절집을 떠나거나
대중에 도움이 안 된다는 교훈을
얘기할 때면 즐겨 쓰는 말이다.
결국 마지막까지 절집에 남는
이들은 제 분수에 자족하며
묵묵히 지금의 자리를
지키는 이들의 몫이다.
나는 인생을 잘 모르지만 이 말이
어찌 승가에서만 통할 것인가.
‘참 나는 못났다’는 생각을
할 때마다 저 등걸처럼
오랫동안 산중을 지키며
살 수 있겠지 하며
위안을 삼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