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지는 해의 경사는 너무 가파르다. 대저 천지란 만물萬物의 역려逆旅이요, 세월은 영원히 쉬지 않고 지나는 나그네이다. 그리하여 이 내 떠도는 생은 꿈같이 짧으니 이 세상에서 기쁨을 누리는 시간이야 얼마나 되겠는가. 夫天地者萬物之逆旅 光陰者百代之過客 而浮生若夢 爲歡幾何.
당나라 시인인 이백李白의 춘야연도리원서春夜宴桃李園序의 첫 구절이다. 세월이란 것을 두고 영원히 쉬지 않는 나그네로 비유했으니, 삼백 육십일을 두고 한시도 쉬지 않는 해를 보며 겨울이니 여름이니 구분하여 빠르고 늦음을 가늠할 일도 아닌 것이다. 본시 세월과 태양은 쉬지 않고 가는 것이 그 미덕일 뿐 아닌가. 사람의 괜한 마음에 인생의 황혼에서도 매양 덧없고 빠르게만 느끼는 것이다.
세상사와 인생사가 이처럼 무상無常하기로 예로부터 사람들은 변치 않는 갖가지 사물에 그 마음을 의탁하였다. 늘 같은 모습의 돌을 보고 변함없는 마음을 기렸고 소나무나 잣나무의 상록常綠을 보며 그 청정함을 흠모했다. 이들 자연은 늘 한결같아 그 의미를 새기며 옷깃을 여미게 된다. 열반하신 석주 큰스님께서도 이와 같은 구절을 즐겨 쓰셨다.
서리 내린 소나무를 보고 내 지조를 고결하게 가다듬고
물에 비친 달을 보고 내 마음을 비운다.
霜松潔操 水月虛襟
서리가 내리든 흰 눈이 쌓이든 아랑곳없는 소나무의 상록常綠은 일생을 수행의 수레에 놓고 있는 이에게는 귀감이었다. 공자孔子 역시 추운 겨울이 지나야 송백의 푸르름을 알고 세상이 어지러운 연후에야 군자의 지조를 안다(歲寒然後知松栢之後凋 亂世然後知君子之不改)고 하지 않았던가. 또한 물에 비친 달은 그저 그림자 일 뿐을 알아 부귀나 공명과 같은 헛된 이름을 바라지 않았으니 그것 또한 내 마음을 비우고 또 비우는 도구인 것이다.
능호관凌壺觀 이인상李隣祥은 조선 효종 때의 선비로 인조 때 영의정을 지낸 이경여의 현손이다. 그의 증조부가 서출이었던 이유로 본과本科에는 이르지 못하고 미관말직으로 벼슬을 마쳤다. 42세에 벼슬을 사직한 후 단양으로 낙향하여 그곳에서 은거하며 평생을 그림과 학문연구에 전력했던 선비였다고 전한다. 그는 시서화詩書畵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고 빼어났었다. 그것이 허명이 아닌 듯 지금까지도 그의 그림 여러 점이 전해지고 있는데 이들 모두 다른 그림과는 다르게 청아하고 단정한 격조를 지녀 지금까지도 필명이 높다. 서출이라는 한계였을지라도 스스로 낙향하여 전원에 머물면서 그는 아마도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는데 시간을 보내지 않고, 다만 수월水月로 자신의 마음을 비웠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인상의 눈덮인 소나무 <설송雪松>의 그림은 나무의 뿌리와 줄기만으로 송백의 강건함을 나타내 보였다. 이것이 이른바 근간根幹이다. 푸른 소나무에는 푸른 솔잎이 무성해야 그 본면목을 보여준다고 하겠으나 근간이 없는 말단이 어디 있으랴. 사람들은 소나무의 근간을 잊고 솔잎만 취하려 한다. 아마도 능호관은 이런 사람들의 세태를 그림으로 꾸짖고 싶었던 것 같다. 그림 속의 소나무는 장송長松이고 노송老松임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그 노송은 화면 아래 굳건하게 드러난 뿌리로 오히려 그 기운이 생동하고 힘차다. 그러고 보면 낙락장송 위에 흰 눈은 참으로 어울리는 짝으로 그 한기가 화면 밖에까지 불어오는 듯하다. 한기寒氣가 있으나 상쾌한 찬바람이다.
이인상은 마음을 비우듯 화면을 비웠으며 색과 먹을 아끼던 화가였다. 그림마다 그의 생활이 배어 있는 듯한데 그래서인지 그의 그림을 보면서는 일격逸格보다는 청격淸格을 논함이 알맞을 듯싶다. 이 그림을 보면서 석주 노스님의 상송결조霜松潔操 수월허금水月虛襟의 두 구절이 떠오르는 이유도 바로 이런 것이다. 선禪의 모습이 항상 괴이한 일탈逸脫로만 나타나지는 않기 때문이다.
세상의 모든 일들이 무상하고 또 무상하지만, 천지는 뜨고 지는 해와 차고 기우는 달같이 변하되 변하지 않는 무진장無盡藏이다. 옛 분들이 보았던 저 하늘의 해와 달과 별을 오늘밤 내 눈에 또 담으니 송백의 푸르름이야 이제 또 다시 이야기한들 무엇하랴. 다만 그 해와 달의 걸음이 송백松柏 같은 푸른 머리에 흰 눈을 뿌리고 가는 것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