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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은 얻었다고 하고 한 사람은 잃었다고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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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하고 청정한 수행을 위한 법문 - 조계종정 해인총림 방장 법전 스 2004년 12월 274호
일득일실一得一失이니
빙수위실憑誰委悉고
석화불통石火不通하고
전광불급電光不及이로다.
한 사람은 얻고 한 사람은 잃었다고 하니
누가 그 곡절을 알겠는가?
부싯돌 불빛도 통하지 못하고
번갯불 광명도 미치지 못하는구나.


법안문익 선사께서 결제철의 어느 날 사시공양 시간이 되기 전에
큰방에 들어와서는 손가락으로 발(簾)을 가리켰습니다.
그러자 동시에 두 승려가 발을 걷어 말아 올렸습니다.
이에 법안 선사가 말하였습니다.
“일득일실一得一失이로다. 하나는 얻었고 하나는 잃었도다.”

법안문익 선사는 나한계침 선사의 법을 이었습니다.
장주州 땅을 행각하던 중에 길을 떠나려는데
함박눈이 얼마나 내리는지 앞길을 종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마을의 한 구석에 있는 낡은 절의 문 앞에서
걸망을 풀고 쉬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눈이 그치지 않자 절 안으로 들어가니
나한계침 선사가 화롯가에 앉아 있다가 문익을 보고서는 물었습니다.
“이번 길은 어디로 가려는가?”
“이리저리 행각하렵니다.”
“무엇이 행각하는 일인가?”
“부지不知니다. 모르겠습니다.”
“부지최친不知最親이라. 모른다고 하니 가장 잘 된 대답이군.”
문익이 의아해 하자 그 노장님이 다시 물었습니다.
“산하대지山河大地가 나와 더불어 같은가? 다른가?”
“같습니다.”
그러자 계침 선사는 두 손가락을 세우고는 뚫어지게 쳐다보더니
“두 개”라고 하고는 일어나 가버렸습니다.
눈은 그쳤고 길을 떠나기 위하여 행장을 꾸리니 다시 계침 선사가 나타났습니다.
“납자는 항상 삼계三界는 오직 마음이라고 남들에게 설하고 있는가?”
그리고는 뜰 앞의 돌멩이를 가리키면서 말하였습니다.
“이 돌멩이는 마음 안에 있느냐? 마음 밖에 있느냐?”
“마음 속에 있습니다.”
그러자 계침 선사는 웃으면서 말하였습니다.
“행각하는 사람이 무엇을 집착하는 까닭에 돌멩이를 마음 속에 두고 있는가?”

멀리 행각하려는 납자가 저렇게 무거운 바위를 품에 안고
다니느라고 얼마나 수고스럽겠느냐고 하는 냉평冷評인 것입니다.
이에 문익은 대답하지 못하고 부끄러워 오히려 도망치듯 길을 떠났는데
도리어 그것이 하나의 의심이 되어버렸던 것입니다.
그래서 괜히 돌아다니면서 시일을 허비할 것이 아니라
그 스님의 지도를 받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여 가던 길을 되돌아와 그 절의 문을 다시 두드렸습니다.
나한계침 선사가 나와 맞이하면서 물었습니다.
“아직도 그 무거운 바위를 가슴에 품고 있는가?”
법안 선사는 엎드려 코가 닳도록 큰절을 하고는 가르침을 청했습니다.
그리하여 정진한 끝에 마침내 나한계침의 법을 이었던 것입니다.
그는 뒷날 청량원에서 수많은 납자들을 제접하면서 선풍을 드날렸습니다.

일득일실一得一失은 법안 스님뿐만 아니라
남전 선사도 이와 비슷한 법문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어느 날 남전 선사께서 한 납자에게 말했습니다.
“밤사이에 바람이 심했지?”
“예! 밤사이에 바람이 심했습니다.”
그러자 남전 선사가 다시 말하였습니다.
“바람이 문 앞에 있는 소나무 가지를 부러뜨렸느니라.”
“네! 스님. 그랬습니다.”
남전 선사가 다른 납자에게 말했습니다.
“밤사이에 바람이 심했었지.”
“무슨 바람입니까?”
“바람이 문 앞의 한 그루 솔을 꺾었느니라.”
“무슨 솔입니까?”
그러자 남전 선사는 말했습니다.
“일득일실一得一失이로다. 하나는 얻고 하나는 잃었도다.”

결제란 얻는 것이 있다거나 잃는 것이 있다거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일득一得’이라거나 ‘일실一失’이라고 말한다면 제대로 결제를 하는 납자가 아닙니다.
지금 ‘일득일실一得一失’을 제대로 밝히지 못하는 까닭은 마음의 깨달음이 분명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병을 알지도 못하면서 선지식 노릇을 하려고 한다면 이 사람은 다른 이가 알아도 모를 것이요,
더욱이 다른 사람이 모른다고 하면 더더욱 모를 것은 뻔한 이치입니다.
얻음과 잃음이라는 소견을 내는 자리에서는 이를 전혀 가려낼 수가 없습니다.
가려내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남을 위하여
그리고 어떻게 남에게 자신있게 일득일실一得一失을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까?
한 사람은 얻고 한 사람은 잃었다고 하니 누가 그 곡절을 알겠습니까?
그러므로 모름지기 뼈를 깎는 노력으로 정진해야 할 것입니다.
산승이 고구정녕하게 당부하는 말을 듣고서 발심하여
결제 동안 참으로 용맹정진을 한다면 마침내 ‘일득일실一得一失’의 경지를 떠날 수 있을 것입니다.

청량원에서 법안문익 선사가 손으로 발(簾)을 가리켰습니다.
이때 두 스님네가 똑같이 좌우에서 그 발을 걷어 올렸습니다.
그런데 법안 스님의 말은 한 승려는 득得했다고 하고 한 승려는 실失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좌우에서 똑같이 발을 걷어 올렸는데 왜 한 사람은 얻었다고 하고 한 사람은 잃었다고 했겠습니까?
이번 결제철에 한 철 동안 잘 참구해보시기 바랍니다.

수득수실誰得誰失고
약향자리若向者裏
득일척안得一隻眼하면
변지낙처便知落處하리라.
누가 얻고 누가 잃었는가?
만약 이 속을 향하여
바른 안목을 얻는다면
바로 낙처를 알 것이니라.□

2548(2004)년 동안거 결제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