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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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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설세설 - 성전 2004년 12월 274호
어느덧 12월이다. 새해가 어제 같은데 벌써 한 해가 가는 것이다. 빠르다. 세월이 마치 고속의 물길처럼 내 곁을 스쳐 지나간다. 나는 어디로 흘러가는가. 그리고 나는 어디쯤 흘러왔는가. 마치 내가 물결에 떠가는 나뭇잎만 같다. 가는 곳도 흘러온 거리도 나는 알 수가 없다. 인생은 그렇게 흘러가는 것인가. 인생은 내게 아무런 대답도 들려주지 않는다.
얼마 전에는 노스님의 다비식에 갔었다. 90이 넘어 떠나는 길 날이 포근했다. 모두들 스님이 복이 많다고 했다. 96세의 세수는 누구나 누릴 수 있는 수명은 아니다. 그것은 다복한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특권과도 같은 것이다. 복진즉사福盡卽死. 탄허 스님께서는 살아생전 늘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맞는 말이다. 스님의 복량은 스님의 수명만큼 긴 것이었다. 나는 나의 복의 크기를 생각해 본다. 그 길이가 얼마일까. 나는 내 복의 길이가 아주 길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복 짓는 일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작복作福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열심히 복 짓는 일을 하다보면 나도 그렇게 노스님처럼 오래 복된 시간을 살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복 짓는 일이 어찌 쉬운 일이겠는가. 내 것이 아깝고 오만하면 복 짓는 일은 아주 요원한 것이 되고야 마는 것을. 내 것도 아끼는 마음도 이제는 좀 버리고 오만한 마음도 이제는 좀 버려야겠다. 좀 버리고 살 나이가 되지 않았는가. 이 나이에도 오만하고 내 것 아까운 마음이 있다면 그것은 아직 철이 안 들었다는 말과도 같은 것이다. 그것은 어쩌면 스스로를 욕 먹이는 일인지도 모를 일이다.
이제는 다비장에 가면 왠지 죽음이 먼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것이 내게도 머지않아 올 것이라는 사실을 절감하고는 한다. 오늘은 그가 갔지만 내일은 내가 가야 한다는 생각이 내게 쓸쓸하게 다가온다. 그리고 죽음을 맞는 나의 모습을 그려본다. 어떨까. 위대한 스승들처럼 그렇게 잠을 자듯이 혹은 이웃에 산책을 나가듯이 길을 떠날 수 있을지 자신할 수가 없다. 솔직히 두렵다. 그렇게 담담하고 의연하게 길을 떠나는 내 모습은 그리려고 해도 그려지지가 않는다. 부처가 일찍이 보았던 삶의 무상한 모습들을 나는 이제야 보는 것이다.
부처는 무상을 만나 정각을 얻었다. 그는 이 무상한 세상을 가장 잘 산 사람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를 깨달은 사람이라고 부른다. 나는 이제 늦은 나이에 삶의 무상을 만났다. 눈으로는 무상한 삶의 모습들을 많이도 보아 왔지만 이제 와서야 비로소 가슴으로 무상함을 만난 것이다. 그러나 정각은 내게 너무 먼 얘기라는 생각이 든다. 정각을 꿈꾸지만 정각은 이를 수 없는 거리에서 나를 내려보고 있을 뿐이다. 그 이를 수 없는 거리가 때로 내게 행복이고 때로 불행이 된다.
나는 많은 시간을 흘러왔다. 해가 가듯 나 역시 그렇게 가야 할 시간이 올 것이다. 오고 가는 세월 그 속에서 오고 가지 않는 마음을 안고 나는 길을 걸어가고 싶다. 내일 해가 떠오르는 것은 해는 언제나 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곧 새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