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밑에서 전개되던 제 7대 종정 추대 건이 작년 11월 26일 제101회 정기중앙종회(의장,정대)를 계기로 표면으로 나타나 그 움직임이 대중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미 많은 사람이 예측했듯이 이 건은 매우 복잡하고도 과열되는 양상으로 치달아 거의 모든 종도가 우려의 눈빛을 나타내고 있다.
현 성철 종정스님의 유임을 바라는 범어 문중과 월산스님을 추대하려는 덕숭 문중간의 치열한 공방전은 이미 충분히 예상되었던 일이었다. 그런데 상황의 전개는 원로회의와 종회와의 갈등이 첨예하게 대립되어 덕숭,범어 양 문중의 격돌은 뒷전에 밀린 느낌이다.
\'81년 1월 10일 원로회의(당시 의장,고암)에서 만장일치로 종정에 추대된 제6대 성철 종정의 임기가 \'91년 1월 9일로 만료되자 \'90년 11월 정기중앙종회에서는 후임 종정추대를 논의했다. 그런데 종회는 실질적인 문제는 접근도 못하고 \'종정추대조례\'안 마련에도 실패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세(勢) 우위를 점하려는 범어,덕숭 양 문중의 의견이 팽팽히 맞서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말았던 것이다. 다음달 18일에 제102회 임시 중앙종회를 열고서야 양측은 절충안에 합의, 총 18조의 \'종정추대조례\'를 통과시켰다. 쟁점은 개의(開議) 정족수였다.
\'88년 4월 28일 개정된 종헌에 의하면, 종정추대는 원로회의 의원 전원과 당연직(종회의장,호계의원장,총무원장), 종회에서 선출한 31명으로 구성되는 종정추대위원회에서 하기도 되어있다.
그런데 문제는 회의가 성립할 수 있는 개의 정족수를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라는 점이었다. 덕숭문중이 \'추대의원 세적 과반수 참석으로 개의\'를 주장한 반면, 범어 문중은 만약 그렇게 되면 원로스님이 한 분도 참석치 않아도 개의될 수 있다는 문제점을 지적, \'원로회의 의원 제적 과반수 포함 재적 3분의 2 참석으로 개의\'를 주장했다. 당시 원로회의 의원은 19명. 당연직 3명과 종회 선출의원 31명을 합하면 총 53명으로 \'종정추대위\'를 구성하게 되어 있었다. 때문에 과반수는 27명, 3분의 2는 35명이다.
결국 양측은 \'종정추대위는 재적의원 과반수의 출석으로 개의하며 재적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한다. 단, 재적의원 과반수 중에는 원로의원 재적 과반수가 참석해야 한다\'고 절충안에 합의했다.
종회가 개정된 종헌에 의해\'조례\'를 통과시킨데 대해, 원로회의는 근본적으로 다른 시각을 갖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작년 정기종회 기간인 11월 28일 열린 원로회의(의장,원산)는 재적 19명 중 15명이라는 이례적으로 많은 스님이 참석한 가운데 \"종정추대는 원로회의의 독자적이고도 고유한 기능\"임을 확인하였다고 한다. 특히 지난 \'88년 4월 28일 열린 원로회의에서 그 해 3월 29일 8대의 마지막 종회에서 의결된 종헌 개정안에 대해 인준한 바가 없다고 확인하였다. 투표까지 붙여져 11:4로 인준된 바 없음을 확인한 것이다. 그런데 원로회의의 이러한 내용은 즉각 알려지지 않았었다.
중앙종회가 제102회 임시종회를 통해 조례안을 절충한다는 소식에 12월13일 원로스님 12명이 급히 재회동(임시의장,석주)하여 17일자로 종회의장,충무원장,종회사무처에 \'통지서\'를 보냄으로써 비로소 지난 원로회의 내용의 일부는 물론 다수 원로스님들의 뜻이 알려지게 된 것이다.
통지서의 주요 내용은 앞에서 밝힌대로 ▲ 88.4.28 원로회의에서는 개정 종헌 제21조(종정추대조항)를 인준하지 않았고, ▲ 그럼에도 종회가 조례를 절충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심히 염려되어 종회에 이해와 협조를 구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원로스님들의 \'이해와 협조\'는 종회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에 12명의 원로들은 새해 1월 5일 통도사에서 재차 모임을 갖고 ▲ 88.4.28. 원로회의에 회부된 개정 종헌안 제21조는 종회에서 재심의토록 반려했음을 재확인하고 ▲ 위 동 제21조가 적법절차에 의해 종회와 원로회의에 재회부된 사실이 없으므로 종정추대는 구 종헌에 의해 원로회의에서 한다. ▲ 만약 종회가 31명을 선출한 후 종정추대위 회의를 소집하더라도 불참한다. ▲ 앞으로 10일 이내에 원로회의를 소집해 줄 것을 종회사무처에 전달한다는 등의 의견을 집약한 것으로 보도됐다.
이 요구에 의해 1월 17일 원로회의가 소집되었고 전 종도는 이날의 회의에 시선을 집중했다. 그런데 5일 이후 17일 회의가 열리기 전 돌발사태가 발생했다. 1월9일 종회사무처(처장,지명)는 1월7일자로 석주,월하,대휘,고송,서암,자운스님에게 원로의원 임기가 만료되었음을 통지한 것이다. 임기만료 전 사전예보나 재추대에 대한 한번의 언급도 없이 이루어진 통지서 전달로 인해 원로들은 강한 불만을 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원로회의가 열리기 하루전(16일) 칠보사에 다시 모인 원로스님들은 17일 회의에 전원 불참했다. 일부 보도에 의하면 혜암,비룡,지종,운경,경월,도천스님 등 원로의원 6명은 \"금번에 임기 만료된 스님들께서 참석하지 못하는 원로회의에 참석할 뜻이 없으므로 불참한다.\"는 통지서를 보냈다고 한다. 결국 17일 원로회의는 월산,응담스님만 참석함으로써 성원미달로 유회됐다.
종정추대를 둘러싼 현상과 본질
88년 종헌 개정안이 통과되었나 한되었나의 문제는 4,28. 원로회의 결과와 11월 9대 종회 첫 회의에서 정우스님이 이 문제를 제기했으나 기각된 사실에 대한 엇갈린 해석을 따지는 일일 것이다. 물론 일부의 주장처럼 당시 원로회의가 이의를 제기한 조항이 제21조 이외에도 19조(종단대표권), 22조(종정임기), 38조(총무원장의 종회의원 겸임) 등 4개항이었는데 이제 와서 21조만 문제삼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일면 타당한 말이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해결의 길은 거의 없다. 파국만이 있을 뿐이다. 그럼 현재 상태에서 이런 파국이 왔을 때 이를 수습할 주체나 힘이 불교계에 있을까. 없을 것이다. 때문에 종도들은 종정과 총무원장 등 종단 행정의 수반과 최고 어른이 함께 연계되어 니전투구의 추태는 보이지 말자는 염원이 강하다.
우리는 여기서 제21조를 둘러싸고 종정추대권이 종회에 있느냐 원로회의에 있느냐는 쟁점이 왜 발생했나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 현상적으로 개정 절차에 대한 문제로 보여지나 본질은 따로 있다. 물론 적법한 절차도 대단히 중요하지만, 핵심적 사안은 원로스님들의 종회에 대한 강한 불신감이 제일 큰 듯하다.사실 지난 총무원장 선출에서 드러났듯이 동회는 시정 정치판의 선거를 재현하는 금권,이권의 타락 선거였다는 지적이 많았다. 종단의 \'최고 어른\'을 선거운동을 통해 만드는 것도 문제지만 이를 추대하는 다수의 주체(종회의원)들이 매우 비불교적인 형태를 띠고 있는 것이다. 총무원장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한국불교계의 상징이요 한국사회의 정신적 지도자인 종정추대에 있어서까지 그러한 전철을 밟아서는 안된다는 것이 원로스님들의 뜻으로 이해되면 전 종정들의 희망이기도 한다.
또 하나의 문제는 인물인 듯하다. 물론 후보로 떠오르는 두 분이 다 훌륭한 큰스님들이지만 원로스님들 중 다수는 후보로 떠오르는 한 분을 강하게 거부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원로회의는 88년 6월 7일에 새 종회의원이 선출되어 9대 종회가 개원한 이래 지금까지 공식 회의는 한 번도 없었다. 한 번 소집한 적이 있긴 하지만 성원미달로 유회되었다. 이렇듯 종단의 웬만한 대소사는 관여치 않는 원로스님들이 이번 종정추대 건에 있어서만은 극히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움직이고 있으며 강력한 뜻을 비친 이유도 종회에 대한 불신과 인물에 대한 기피로 분석되고 있다.
아울러 이번 종정추대가 두 어른의 뜻과는 상관없이 일부 문도들에 의해 강하게 추진되고 있다. 더 사태가 복잡해지고 모양새가 안좋기 전에 원만히 수습될 수 있도록 당사자들이 뜻을 밝히고 싶어도 일부 문도들의 극성 때문에 못하고 있다고 한다.
사실 덕숭 문중은 한국불교계에 커다란 영향략을 행사해 오면서도 한분의 종정도 배출하지 못한 한(?)이 있고, 문중의 수장(首長)격인 월산스님의 세수(78세)를 고려할때 이번이 마지막 기회가 될 것이라는 예측 속에서 적지않은 기간을 두고 준비해 온 것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이를 추진하는 일부 유력 문도는 이번 종정추대 건이 차기 종권을 위한 필수불가결한 과정으로 보고 사활을 걸고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지난 총무원장 선거에서는 자신의 문중을 지지하지 않는 용의주도함을 보였다고 한다.
독특한 수행의 가풍을 형성하여 법맥을 잇는다는 문중의 개념이 이제는 종단 정치를 위한 인맥으로 전락한 현실에 서글픔이 앞선다.
종정은 불교계의 상징, 한국사회의 정신적 지주로 계속 남아야
대한불교 조계종은 1월 31일부터 2월 1일까지 제103회 임시종회를 소집하여 임기가 만료된 원로의원 스님들의 문제를 처리하고(원로의원 추대는 종회의 권한), 종정추대위원 31명의 선출문제를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난 이번 임시종회에서 종정추대를 마무리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비관적인 견해가 지배적이다. 자칫하면 종정추대를 둘러싼 갈등은 장기화 될 전망이다.
그런데 만약 이번 종회에서 지난번 임기가 만료된 6명의 원로의원들을 재추대한다면 원로회의는 독자적인 결정을 내릴 확률이 높을 것으로 추측된다. 지난 17일의 원로회의는 무산되었지만 6명의 원로가 재추대된다면, 원로회의는 재소집되어 자체 내에서 종정을 추대할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될 때 종회에서는 어떻게 대응할지. 또 최악의 경우 종회가 원로의원을 재추대하지 않고 31명을 선출하여 종정추대위를 소집, 누군가를 결정했을때 이 여파는 어떻해 될 것인지,
종회가 원로의원을 재추대하고 종정추대위 회의를 소집했으나 원로의원 재적 과반수가 참석하지 않아 개의도 못하고, 원로회의도 독자적인 움직임을 하지 않을 경우, 즉 대책도 없이 종정 궐위 상태만 장기화되는 경우는 안생길는지....
이제 종정추대 건은 해결되어야 한다. 복잡하고 어려운 상황에서 그래도 문제해결의 열쇠는 원로에게 있다고 본다. 충분한 의견교환과 토론,설득 과정을 통해 숫자로 누르기가 아니라 상호 이해하고 협력하는 속에서 일치를 이룬다면 전 종도는 적극지지할 것이다. 특히 후보로 거론되는 두 어른이 어렵겠지만 원로들과 상의하여 원만히 해결되도록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행여 누구라도 무리수를 두어 종단이 혼란에 휩싸이게 해서는 안될 것이며, \'흠집\'을 안은 종정추대도 막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