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불암 아자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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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의 여로 - 정찬주
1991년 02월 108호
선재는 난방이 잘 안되는 큰 방에서 에스키모인들의 얼음집처럼 이부자리를 둘러쓰고 또 그 <칠불암 아자방>이란 전래동화를 들었다. 스님이 선물한 그 카세트테이프는 언제 들어도 온몸을 훈훈하게 덥혀 주었다.
어른 스님들의 그 공부방은 구들이 한자의 아(亞)자 형상으로 놓여 있어 사람들은 아자방이라고 불렀습니다. 구들이 어찌나 잘 놓였는지 불을 들이면 따뜻한 기운이 한 달 이상이나 가곤 했습니다.
아자방의 신비로움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장작 한쪽, 낙엽 한줌만 불을 붙여 놓어도 그 불기운이 공부하는 어른 스님들의 엉덩이에 모두 전해졌습니다.
마을사람들은 아자방을 한번만이라도 만져보기를 원했습니다. 특히 구들을 잘 놓는다는 구들도사들은 더욱 보고 싶어했습니다. 그러나 스님들의 공부방은 구경거리가 아니었습니다. 아주 오랜 옛날부터 오늘날가지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았던 것입니다. 명상에 잠겨 있는 어른 스님들이 어느 순간에 큰 지혜를 깨우칠지 모르므로 그 순간을 방해해서는 안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새로 부임해온 사또는 아자방을 꼭 보고야 말겠다고 우겼습니다.
\" 방을 구경하고 싶소\" \"스님들 공부에 방해가 됩니다.\" 아무리 권세있는 사또라 해도 보여줄 수 없었습니다. 불심이 아주 깊은 마을 할머니들에게도 보여주지 않았던 것입니다.
\"꼭 방만을 보겠다는 것은 아니오. 이 방에서 공부하시는 스님들을 보는 것만 해도 여기 온 보람이 아니겠소?\" 주지스님은 난감했습니다.
그렇다고 당장에 스님들을 불러 모아서 회의를 열 시간도 아니었습니다. 방금 점심 공양을 했으므로 스님들이 산속 암자로 뿔뿔이 흩어져 버린 뒤였습니다. 설형 회의를 연다고 해도 아자방을 보여 주자는 스님은 한명도 없을 게 뻔했습니다. 사또는 계속 젊은 혈기로 맞섰습니다.
\"고을 사또로서 우리 고을의 자랑인 이 방을 좀 보겠다는데 무엇이 잘못됐다는 말이오. 어서 방문을 여시오.\"
\"우리 고을의 큰 자랑임엔 틀림없으나 스님들이 공부를 하고 있어서요.\" \"허허\"\"스님들이 공부를 더욱 참되게 하여 큰스님이 되는 게 더 큰 자랑이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내가 직접 열어보겠소.\" 이제는 주지스님도 별 도리가 없었습니다. 사또가 재빨리 아자방 방문의 문고리를 잡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주지스님은 눈앞이 막막했습니다.
그런데 또 이게 웬일입니까? 방 안에 있는 스님들은 주지스님과 사또가 벌이는 실랑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모두 다 꾸벅꾸벅 졸고 있었습니다. 점심 공양을 아주 맛있게 든 모양이었습니다. 하늘을 쳐다보며 입을 벌리고 조는 스님, 머리를 숙인 채 방바닥을 들여다보듯 꾸벅거리는 스님, 방구를 뿡뿡 뀌며 조는 스님... 한마디로 공부하는 자세가 전혀 아니었습니다.
\"이런 해괴한 자세로 공부한다는 것인가...\" 사또는 입맛을 쩍쩍 다시면서 속으로는 화를 냈습니다. 그래서 지체없이 고을을 돌아가 자신이 사무를 보는 동헌에 앉아서 주지스님 앞으로 편지를 썼습니다.
\"칠불암에는 큰스님들이 많은 듯하오. 그러니 스님들 중 누구라도 목마(木馬)를 만들어 와서 동헌 마당 한 바퀴를 돌아보도록 하게 하시오. 목마를 잘 타면 큰 상을 내리겠거니와 그렇지 못하면 크게 경을 치겠소.\"
스님들은 모두 모여 회의를 했습니다. 살아 있는 말을 타라고 해도 큰일인데, 목마를 타고 돌라하니 큰 걱정거리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누가 이번 일을 해결하겠소?\" 모두가 입을 다문 채 앉아 있기만 했습니다. 나이 든 스님들은 한숨을 크게 내쉬기도 하였습니다. 바로 그 때 어른 스님들의 어깨 너머에 오도카니 앉아있던 어린 스님이 조용히 일어났습니다. \"제가 맡겠습니다. 싸리나무를 엮어서 목마를 만들어 주십시오.\"\"네가 무슨 재주로...\"
어른 스님들은 어린 스님을 말렸습니다. 목마가 살아 있는 말처럼 움직인다는 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어른 스님들은 어린 스님이 하도 울면서 고집을 부리므로 더 말리지 못했습니다. 며칠 뒤, 어린 스님은 사또가 있는 동헌으로 나갔습니다.
어린 스님 옆에서 목마를 들고 있는 절 일꾼은 바들바들 떨고 있었습니다. 사또가 먼저 말했습니다.
\"네가 목마를 타겠다는 말이냐?\" \"예\" 사또는 어이가 없었습니다. 어린 스님을 보낸 칠불암의 어른 스님들은 자신을 무시했다는 생각이 들어 화가 나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목마를 타기 전에 몇 가지 물어보겠다. 며칠 전 내가 본 아자방의 스님들 모습은 전혀 도인답지 않았느니라.\" \"당치 않은 말씀이옵니다.\" \"그래? 하늘을 쳐다보며 입을 벌리고 있는 것도 공부란 말이냐?\"
\"예, 수많은 별들의 뜻을 헤아리는 공부입니다. 하늘과 땅의 이치를 잘 알아야만 중생을 더 잘 제도할 수 있기 때문이옵니다.\"
\"그렇다면 머리를 숙인 채 방바닥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도 공부란 말이냐?\"
\"죄를 짓고 살면 죽어서 지옥에 가게 됩니다. 방바닥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은 지옥에서 고통받고 있는 중생들을 어떻해 해서 구제할 수 있는가를 궁리하는 공부이옵니다.\"
\"그럼 몸을 가누지 못하고 전후좌우로 흔드는 것은?\"
\"예, 버드나무가 전후좌우로 바람에 흔들리지만 어느 곳에도 머무르지 않듯, 스님들도 무엇에나 집착하지 않으려는 공부이옵니다.\"
\"허허! 방구를 뿡뿡 뀌면서 조는 공부는?\"
\"도량이 좁은 사람들의 고집을 깨뜨리게 하는 공부이옵니다.\"
사또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습니다. 목마를 타보라는 말도 꺼내지 못했습니다. 어린 스님이 목마를 타고서 동헌 마당을 돈다면 그거야말로 사또에게는 큰일이었습니다. 마을사람들이 과거에 급제한 자신보다 어린 스님을 더 존경하게 될 테니까요.
그러나 사또는 두 눈을 딱 감고 말았습니다. 어린 스님이 목마를 타려고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작은 어깨를 으쓱이며,
난방이 안된다고 투덜거리던 선재아내도 슬그머니 선재 옆에 쭈그리고 앉아서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역시 칠불암 아자방 덕분이리라. 냉골에 대한 아내의 불평이 잠시나마 사라진 것을 보면 아자방의 위력은 대단하다고 할 수 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