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날 일반적으로 우리에게 알려져 있는 도선대사의 풍모는 그분의 생애나 사상적 업적을 살펴보기 전에 이미 중/고등학교 국사시간에 단답형으로 서술되어 있는 풍수지리의 대가, 내지는 도참사상과 연관된 스님으로 알고있을 것이다.
그래서 스님은 풍수의 신승神僧/술수/한국 지리의 비가등은 모두 도선국사와 연관되어 있는 양 억측되어져 왔다. 한발더 나아가 이러한 풍수사상이나 비기등이 한동안 얼마나 혹세무민하는 미신으로 호도되었으며 도선대사와 불교를 연관시켜 불교 또한 미신을 조장하는 종교인 양 인식되어 왔는가?
그러나 도선국사는 그 생애가 뚜렷하게 밝혀져 있지는 않지만 선문구산 중의 하나였던 동리산의 개산조 혜철대사의 직계제자였다는 점에서 그 자신은 선승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 비명에 따르던 스님은 전남 영암 사람으로 속성은 김씨로 태종 무열와의 시손이었다. 15세에 월유산 화엄사에서 득도한 이래 화엄학을 공부하였으며, 이 시대의 대부분의 선승들이 그러했듯이 화엄교학을 연찬한 이후 동리산 개산조인 혜철 문하에서 선을 익혔다. 37세 되는 해에는 옥룡사를 창건, 이후에는 줄곧 선승의 삶을 살아가신 분이다.
대체로 이 시대적 상황은 신라 하대의 말페적 정치구조와 함께 민간신앙과 도교의 영향, 밀교사상이 수용되던 시기였다. 일찍이 혜철국사가 밀교적 성향을 지니 선사였으므로 다분히 그 영향을 짐작할 수 있으며 풍수지리로 일반에게 알려져 있는 사상은 도선스님이 주장한 비보사탑설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 비보설은 삼한 산천 3천 8백여 군데를 택하여, 마치 사람에게 혈액과 같은 이치여서 산천에 병이 들었을 때에 낙점처에 사원이나 탑 또는 부도등을 세워산천의 병을 고칠수 있다는 이론이다. 따라서 이 비보설은 다순한 풍수사상이라기 보다는 불교가 길이 이 땅에서 흥황하기를 바라는 애종적 발상이며 비보설에서도 밝혀 놓았듯이 절을 세우고 탑을 세워 얻어진 국가적 이익과 공덕이 선리의 정묘함에는 미치지 못한다고 주장하였으므로 스님의 애종정신과 스님의 선사상을 우선 이해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