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맹정진 대도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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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일관
1991년 02월 108호
몇 해 전부터 인여의 끈에 이끌여 서울에 올라와 살면서 마음이 복잡하고 심신이 피곤하면, 가끔 산을 돌아가 맑은 공기도 마시고 산사에서 쉬면서 다시 마음을 정리하고 새로운 각오로 돌아오곤 한다.
얼마 전에도 해인사를 다녀온 적이 있다. 계절의 변화에 밀려 무성하던 숲에는 나뭇가지들만 하늘을 우러러 서있고 낙엽이 곱게 쌓여 있으며, 양지바른 곳에는 풀들이 푸르름을 더하여 열심히 빛을 받아 살고 있는 겨울의 정취가 있다.
겨울 산야에서 느기는 감저은 새로운 그 무엇을 담기 위해서 모든 것을 비워 놓은 것 같은 정리된 모습이며, 나뭇가지에 매달린 꽃눈과 잎눈처럼 꿈고 희망을 안고 있는 느낌들이다. 거칠어져 가는 마음자리에 계절의 변화를 보며 새감 편안한을 느낀다.
옛날에는 우리들도 넉넉히 앉아서 푸른 숲이나 강을 얼마든지 볼 수 있었다. 몇 년전 해인사 도서관에서 헤르만 헷세의 [싯달타]를 읽은 생각이 난다. 오랜 방황끝에 싯달타는 마침내 한 늙은 뱃사공을 만나, 그의 도움으로 강에서 깨달음을 얻는다. 깨달음을 얻은후 싯달타는 늙은 뱃사공의 뒤를 이어 뱃사공이 된다. 뱃사공이 된 싯달타는 공한 강물을 저으며 사람들으 건네주고 있다. 싯달타가 배를 저어가는 한 대목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저녁놀을 배경으로 노를 젓는 그 뱃사공의 모습이 아직까지 가슴에 남아 있는데 그때 싯달타가 물에 비친 자기의 모습을 조용히 내려다 보고 있었다. 이 구절은 그대로 무척이나 감동적인 한폭의 그림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정서를 지금 우리는 좀처럼 맛보기 힘들어졌다. 나무나 강 구름 대신에 보이는 것이 빌딩과 아스팔트, 자동차같은 것들 뿐이다. 이런 것들은 정서를 파괴하는 것이다. 요즈음 우리가 보고있는 것은 거의 현대화된 것들이다. 이떻게 생각하면 현대화란 전부 서야화하는 것인데 그것은 결국 모든 지역들을 각과 선으로 바꾸자는 것이다. 사람의 감정보다는 계산에 빠른 컴퓨터를 우선으로 하자는 것이며, 이것은 얼마짜리이고, 이것은 어디에 필요하고, 저것은 필요없다는 식으로 생각한다. 생활환경이 너무 바빠져서 푸른 산이나 강을 보고 싶어도 그 아름다운 자연을 바라보며 느낄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없고, 아름다운 꽃을 봐도 그꽃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없다. 이처럼 보고 생각하고 생활하는 일상사 전체가 자구 거칠어져 가느 것을 보니 안타깝다.
삶의 가치개념과 인간성 상실의 어지러운 사회현상들을 함께 보고 느끼며 이런 모든 문제들을 극복할길은 없을까 하는 생각을 자주 하게된다.
인간은 무지하고 사악하기 이를 데가 없다. 거기에서 어떤 진실을 기대할 수는 없을 것 같으며, 모든면에서 한정괸 인간의 능력을 갖고 일체의 한정을 넘어선 절대적인 진리를 인식하려는 것부터가 차라리 이성적 인간의 오만일지 모른다.
그러나 부처님은 인간의 이러한 사악함과 유한성에 절망하지 않고 인건성에 끝까지 신뢰를 두셨다. 다시말하면 인간은 스스로 깨달을 능력이 있으며, 자기의 구원을 스스로 실현시킬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법화경\'에 설해진 상불경 보살은 이러한 뜻을 잘 보여준다. 상불경 보살은 살마들을 대할 때마다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당신들은 부처님이 되실 것입니다.” 사람들이 그를 조소하고 나무라도, 심지어는 모둥이로 때리고 돌을 던져도 그는 이 모든 괴로움을 감내하면서 “당신들은 부처가 되십니다.”는 말을 끊이지 않고 한결같이 했다는 것이다.
그를 상불경보살이라고 한 것은 이런하 이유 때문이지만 이 이야기는 부처님 가르침의 극치를 보여준다. 사람을 사람으로 존경해 주고 있음은 물론, 각자의 마음속에 누가나 부처님의 성품이 있음을 예를 통해 깨우치고 있는 것이다.
자아를 잃고 무명의 어두움에 가려 망상번뇌를 양식으로 삼아 살아가는 중생들에게 부처님께서 수행을 통해 인간성을 회복하는 깨달음의 길을 여셨다. 그귀한 깨달음을 얻는 수행 가운데 참선공부가 있다. 지금도 해인사에서는 성도재일을 앞드고 7일간 용맹정진을 해오고 있는데, 학인시절과 선방에서의 생활을 되돌아보면 마음에 새로움이 가득찬다.
처음 학인시절에 용맹정진을 할 때의 기억이다. 처음 용맹정진에 참석하려면 먼저 큰스님으로부터 화두를 받아야 한다고 해서 도반들과 함께 법당에서 밤을 새워 부처님 앞에 삼천배 절을 했다. 부처님 앞에서 올린 삼천배는 용맹정진에 임하는 우리들의 굳은 각오와 다짐이기도 했지만 성철 큰스님에가 화두를 받으면 그만큼 절을 해야 한다고 했기 때문이다.
밤새 절을 마치고 오전에 백련암으로 올라가 백련암 큰방에서 큰스님으로부터 마삼근 화두를 받았다.어떻게 화두를 우리들에 주실까 하고 호기심이 많았는데 손바닥만한 시험지에 마삼근 세글자가 씌어진 종이를 주는 것으로 화두를 받는 데 대한 설레임은 끝이 났다.
그믐날 삭발 목욕을 하고 저녁 예불을 마친 후에 운집을 알리는 목탁소리에 맞추어 장경각 아래 있었던 선열당 선방엣 모임을 가졌다. 이 자리에는 용맹정진에 참여하는 스님들과 사중 산중 어른스님들께서도 함께 참석하셔서 정진에 필요한 소임을 뽑고 지켜야 할 유의사항을 아려 주었다 유의사항은 주로 경책하는 방법과 앉아서 정진할 좌차를 정하는 일 그리고 용맹정진에 필요한 준비물들이었다. 정진을 위한 마지막 준비모임에서 일례를 보는 스님들이 수마와 산란을 쫒아줄 경책을 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세심한 당부의 말씀과 정진주에 자기의 자리를 이탈하지 말 것을 강조했다. 모임이 끝난 후 처음 참여한 학인들을 위해 부방장스님으로부터 화두간택을 위한 밀밀한 말씀을 듣고 강당으로 돌아왔다.
지금은 장경각 아래에 있는 선열당과 퇴설당이 다른 용도의 건물로 사용되지만 그 당시엔 선방으로 사용되었고, 선열당과 퇴설당도 각기 다른 분위기의 정진풍토를 갖고 있다. 극락전 뒤로 선방이 옮겨지기 전까지 선열당은 젊은 수좌스님들이 주축이 되어 좀거친 듯하면서도 활기에 차고 용맹스럽게 정진을 했고, 퇴설당은 구참스님들이 주축이 되어 차분하면서도 집념에 찬 정진을 하며 서로를 경책했다. 요즘은 어디서 용맹정진을 하는지 모르지만 그때는 여름 하안거와 겨울 동안거 기간 중 일년에 두 차례 용맹정진을 했는데 기간은 각7일간이었다. 여름 하안거 때는 칠월 초하루부터 초파일 새벽까지 대적광전 큰법당에서 정진을 했는데, 주위를 통제하고 문발ㅇ르 내리어 시원하게 주변 분위기를 바꾸었으며 법당을 오르는 계단 입구엔 ‘용맹정진대도량’이란 글귀를 크게 내걸고 정진을 했다. 법당이란 분위기 때문인지는 잘 몰라도 금방 법당의 부처님처럼 성불成佛할 것 같은 알 수 없는 들뜬 마음으로 7일간의 정진을 쉽게 하곤 했다.
겨울 동안거 때는 십이월 초하루부터 초파일 새벽 성도절까지 부처를 가려 뽑는다는 ‘선불방’이란 편액이 걸려있는 궁현당 큰방에서 대중들이 모여 아궁이에 장작불을 지피고 정진을 했다. 계속되는 불사로 출가할 때 공양을 짓고 대중스님들의 찬상을 준비하던 곳들은 다 헐려나가고 지금은 낯선 새 건물들이 즐비하게 서있어 옛날에 장작불으 지피며 공양도 짓고 부지깽이를 두드리며 염불을 배우던 추억을 볼 때마다 좋다는 생가보다는 낯선 곳에 와 있다는 이질감과 몇 백년의 역사와 문화전통을 잃어버렸다느 아쉬움이 더 크며, 용맹정진할 때 후원 행자님이 공양솥에서 눌은밥 긁던 소리를 우리들의 후배 스님들은 영영 들을 길이 없어졌다.
동안거 용맹정진에 처음 참가했는데 새벽 예불을 알리는 목탁성을 듣고 일어나 빨리 세수를 하고 좌구와 가사를 가지고 궁현당에 모여 정해진 좌차에 따라 자리를 잡고 소임자 스님의 죽비소리에 맞추어 부처님께 절 삼배로 간단히 예불을 마치고 입선에 들었다. 정진은 한시간 단위로 계속되었는데 50분은 좌선을 하고 10분은 경행을 하며 주야로 7이러간을 반복했다. 매 시간 한 명의 일례가 대중스님들을 혼침과산란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아주 엄격하게 경책해 주었다. 200여명의 대중스님들이 방안 가득 앉아서 참선을 해도 방은 텅 빈 것같이 고요하고 밖의 새소리, 바람소리만 들리 뿐이었다.
오후 2시경이면 성철스님께서 정진하는 대중 곁에 내려오셔서 더욱 용맹스럽게 대중들이 정진하도록 경책을 하시고, 정진을 시작한 후 3~4일이 지나 대중들이 수마와 혼침으로 씨름하고 있을 때 혜암스님께서 대중들을 이끌고 눈이 쌓인 운동장에서 눈 위를 달리며 잠을 쫒아 주셨다.
정진의 맛과 깊이를 모를 때는 화두를 잊고 육신과 싸우며 혼침과 산란심 속에서 밤낮을 바꾸다 용맹정진을 마치곤 했다. 학인때는 정진 중간중간에 먹던 차와 과일 맛을 탐닉하기도 했고 자정이면 대중들에게 주는 야식인 잣죽을 먹고 혼침 속에서 새벽시간을 헤매다 일례스님으로부터 심하게 경책을 받기도 했다.
지난 정진의 힘이 삻에 소중한 재산으로 남아 있다 일을 하며 살아갈 때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끝까지 참고 이기는 인내심이 생겼으며, 매사에 조심성이 생겼고 심한 어려움을 만나도 먼저 한걸음 물러나 그일을 바라보면서 차분히 해가는 지혜가 조금은 생겼다. 이 모든 것이 정진에서 얻은 소중한 지혜라 믿는다.
오늘날 무질서와 가치관의 혼돈 앞에 선 우리들은 무엇보다도 먼저 부처님의 말씀을 근본으로 삼고 삻에 있어 최상의 깨달음을 얻고자 발심 수행하여 선재동자 같은 보살의 길을 걸어가야 할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불교인의 정진자세라 믿으며, 그 속에서 우리는 무한한 지혜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부처님은 법화경에서 “너희들은 이제 모든 부처님의 진정한 뜻을 알았을 것이다 그러니 의심치 말고 기뻐할지어다. 너희는 모두가 부처가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고 계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