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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심교 단상(斷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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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비의 소리 - 도각 1991년 02월 108호
해인사를 겹겹이 에워싼 가야산 자락은 넓고 깊다. 소백산맥을 따라 한참 달려오다 덕유산에서 갈라져 동쪽으로 동쪽으로 휘몰아쳐 우뚝 솟은 주봉과 그 정상을 정점으로 서쪽의 비봉산, 동남향의 환적대, 남쪽의 매화산 등이 울창한 숲, 깊은 계곡과 함께 깊고 넓은 덕스러운 품새를 내보인다. 또한 산자락 굽이굽이에 크고 작은 절들이 무수하게 자리하고 있어 그 넉넉함을 더해준다.
이렇듯 겹겹이 펼쳐진 산록과 계곡과 산사만으로 깊다고 하는 것의 의미가 모두 설명되는 것은 아닐 것이며, 자연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만으로는 별반 중요하지도 않다. 이러한 산과 산사는 반도 땅 어디에고 무수히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 깊음의 의미는 천년의 숨결로 이땅 사람들의 갖은 고난과 역경을 함께 하며 중생의 넉넉한 귀의처로서의 해인사와 불교의 역할에서 찾아져야 한다. 때로는 준엄하게 꾸짖기도 하고 그들이 상처받고 아파할 때는 그 아픔을 함께 나누는 연민으로 끈끈한 삶의 연대를 만들어 나감으로써 비로서 가야산의 깊음은 산술적 부피로서의 깊이가 아닌 역사적 자기책임으로서 올곧은 깊고 넓음의 의미가 획득되어지리라.
해인사 큰절에서 외나무다리를 지나 홈제암을 거쳐 원당암에 이르는 작은 산책로를 따라가면 큰 계곡을 건너는 길에 세심교가 자리하고 있다. 두리봉에서 발원하여 굽이굽이 산 계곡을 흘러내려와 이곳에 이르러 제법 큰 물줄기를 이루어 커다란 암반들 사이로 하야 svh말을 일으키며 큰 소릴르 내며 흐르는데 그 물소리에 귀를 열고 온몸을 적시고 있노라면, 온갖 세속적 번뇌는 물소리에 씻기우고 시들했던 삶의 세포들은 왕성하게 살아나는 것이 느껴진다. 옛 사람들 또한 이 다리의 이름을 번뇌와 미망의 마음을 씻는다는 뜻에서 세심교라 이름하였을 것이다.
갠지스 강처럼 도도히 흐르는 장강의 흐르는 물줄기도 아니고, 콜로라도의 깊은 계곡을 굉음으로 떨어지는 폭포소리도 아니면서, 이끼낀 암반과 아름드리 고목 사이를 굽이쳐 흐르는 물은 상처받고 괴로운 이들에게는 모성의 쓰다듬으로, 욕망과 갈애로 얼룩진 마음을 씻겨주는 손길로 독선과 아집에 사로잡힌 이들에게 무상의 법문으로, 미움과 증오로 허덕이는 이들에게 사랑과 자비의 말씀으로 쉼없는 장광설을 들려준다. 속진에 쫒기어 거칠고 메마른 심상으로 찾아와 이 물소리에 잠기면 지친 영혼은 깊은 영감의 새로운 깊은활력을 찾게되고, 치열한 구도의 열정으로 더워진 가슴으로 만나면 더없이 시원한 청량감을 맛볼 수 있는 곳이다. 이렇듯 이곳은 세속의 번뇌를 씻어내고 새로운 삶의 활기를 찾게 하며 수행의 깊은 의미를 반조해 보는 가벼운 산책의 길로 우리에겐 소주한 곳이기도 하다.
올 겨울 세심교의 물소리는 유나히 우렁차다. 겨울 얼음장 밑 흐르는 물로 작은 속삭임에 지나지 않던 개울물 소리가 올 겨울의 따스함으로 여느 겨울답지 않게 기운차게 큰소리를 내면서 흐르고 있다. 세심교 물소리가 크게 들리는 것은 비단 자연음으로서의 물소리만이 아니다. 자신들의 무한대적 욕망충족을 위해 역사와 민족앞에 씻을 수 없는 죄과를 범한 전직 대통령이란 사람의 몰염치한 행동과 그 주위에 따라붙어 사회정의와 도덕률을 도외시하는 종권 담당자들의 시끄러운 행태 앞에 단호한 거부의 몸짓을 힘차게 보였던 해인사 스님들의 칼날같이 준업한 역사 정의에의 자기투신을 통하여 더욱 청량하고 미더운 소리로 들린다. 이 겨울의 음습함을 틈타 진행되는 부정의한 것들에 대한 해인사 스님들이 보여준 의연함을 죄짓고 뉘우침 없는 그들에게 우뢰와 같은 경책의 소리며, 땅에 떨어진 불교의 위신을 역사와 민족앞에 선명한 모습으로 일으켜 세우는 청정한 법음이다.
다시 세심교 물소리는 이렇게 이야기 한다. 그들이 진정 이 땅의 사람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이곳 가야산 자락을 흐르는 계곳 물소링 온갖 욕망을 씻어내고, 역사와 민족 앞에 저지른 죄과와 불교를 욕되게 한 행위를 뼈를 깍는 심정으로 참회하고, 조요히 향리에 묻혀서 땅갈고 누에치며 땀흘려 일하는 일생을 보내라고, 그렇다! 그들이 그렇게만 한다면 우리들 어울려 사느 이따의 삶이 얼마나 멋지고 아름답겠는가! 먼 훗날 후손들에게 우리는 이 시대 이 자리의 아름다움을 위해 이런 일을 했노라고 자랑스럽게 애기할수 있잖겠는가.
문득 물소리에 젖어 신라말 이곳에서 말년을 보냈던 고운 최치원 선생이 농산바위에서 새겼던 시 한구절이 떠오른다.

미친 흐르는 물 바위치고 산 울리어 狂奔疊石吼重巒
지척간에도 사람소리 분간 못할레 人語難分咫尺間
행여 세상귀비 귀에 들릴까 常恐是非聲到耳
흐르는 물이 산을 귀멀게 하네. 故敎流水盡籠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