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간과 출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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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연재 - 혜묵
1991년 02월 108호
“사람들의 마음은 남북으로 달라도 불법은 예나 지금이나 동일하다. 진(진)을 부정하지도 속(속)을 밝히려도 말지니, 오히려 색(색)으로써 공(공)을 따지는 것.
大覺國師 義天「圓宗文流」
“아! 슬프다. 비린내 나는 바람과 핏방울의 피가 어지러이 세상을 행하고 검수(劍樹)와 도산(刀山)이 크게 참회하노니, 인간(人間)이 어느 세상 인고, 취한 듯 살다가 꿈같이 죽음이라, 공인 것이랴 유인 것이랴, 밖으로 단견(斷見), 상견(常見)에 대 해 들은 바 없고....... 요즘 불가에서는 가뭄이 심한 터인데 알지 못하겠다. 우리 승려 동지들도 목마름을 느끼고 있는지............” 萬海 韓龍雲 「佛敎維新論」
백담사에서 법석에 올라 고승들을 상대로 법담을 즐기던 전두환 씨는 해인사 강원의 젊은 학인들에게 수모를 당하시고, 이제는 온통 전쟁의 광풍이 몰아친다. 모든 신문들이 미친 듯이 쏟아 붓는 전쟁이야기 사이로 저 해인사의 작은 사건을 흥미 있게 소개했다. 행간에 담긴 정치적인 관심 너머로, 그들은 백담사의 환대와 해인사의 홀대를 모두 불교라는 주체로 상대 지우고는 며칠 사이에 표변한 불교의 모순된 행동을 의아해 하는 눈치였다. 사람들은 이제껏, 모두가 손가락질하는 죄인을 받아들인 불교의 ‘웃기는 자비심’을 비아냥거려 왔다. 그들은 이제 저 때늦은 반발을 유치한 불교의 기특한 개심으로 귀엽게 보아주는 것인가. 환대한 자들은 누구이고 홀대한 자들은 누구인가. 그들은 모두 불교인 일 테니 똑같은 자들인가. 죄인을 용서한 자비심은 누구의 것이고, 역사적 죄인의 발걸음을 거절한 산문(山門)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인가. 오는 사람 막지 않고, 가는 사람 붙들지 않는다는 불문의 전통은 어디에 있고, 수행정진을 종으로 삼는 청정가풍에 ‘역사’는 왜 새삼 소동거리가 되는가. 과연 비린내 나는 바람과 핏방울로 어지러운 세계에, 백담사의 주인인 듯 싶었던 만해의 신년 소감은 어떨는지. 어떤 스님은 그런 것이 다 위 없는 불법(佛法)의 묘용(妙用)이 아니겠느냐며 웃었다. 만해는 평생을 불교계의 혁신과 민족의 독립을 외치며 싸우다 북향한 심우장에서 한만을 남긴 채 죽어갔다. 그는 역사의 흐름에서 뒤처지고 소외된 불교와 민족을 동시에 개혁하려 하였다. 그는 시대에 뒤떨어진 봉건적인 폐단들에 주복하였으며, 그러한 폐단들을 과감하게 파괴하고, 역사의 흐름에 맞춰 새롭게 개조할 것을 호소했다. 아울러 그는 그러한 개혁을 대승불교의 여러 이념들을 기초로 수행할 수 있다고 생각했으며, 그러한 봉건적 폐단은 불교의 이념과는 상반되는 것이어서 그 이념이 진보하는 역사를 지도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는 불교의 이념과 사회의 개혁을 하나의 틀 안에서 해결해 내려는 시도를 죽을 때 가지 버리지 않았다. 그는 불교 이념에 입각하여 고루한 틀과 위선적인 권위를 깨고 용감하게 민중과 사회 속으로 뛰어들 것을, 그리고 자랑스런 그 이념들을 가지고 민중과 민족의 역사를 혁신할 것을 주장했다. 그러나 만해는 철저히 실패했다. 청정수행의 가풍을 내세운 비구승들은 수선(修禪)운동을 통해 선종의 정통성을 되찾고 정화를 기치로 교단을 정비하는 전혀 다른 방향을 선택했다. 그들은 오히려 잡다한 세간의 요구에 오염된, 속화(俗化)된 불교에 주목했으며, 그러한 세간의 문제를 제도할 수 있는 가르침의 순수성을 중시했다. 그들은 민족이나 사회적인 개혁, 나아가 불교계의 개혁조차, 불교의 정통성이 확보되고 불법의 동일성이 유지되어야 비로소 가능한 것으로 판단했다. 불교의 개혁은 따라서 세간을 향해서가 아니라 불교 자체, 출세간을 향한 것이어야 했다(이유나 당위성을 차치하고 수선운동은 어쨌거나 세간과 출세간을 엄격히 이분화 하는 시각을 초래했다). 비구, 대처 싸움의 와중에서 원효나 만해는 쉽게 대처승들의 금과옥조가 되었고, 그 결과 오늘날 우리는 만해를 거론할 때마다 그를 선사라고 불러야 할지 머뭇거리다가 대충 둘러쳐 버리는 지경이 되었다. 그가 기초했던 대승이나 선은 어디로 가고, 그는 이제 시인이나 독립운동가로 남았을 뿐이다. 그는 더 이상 선사도, 스님도, 불교인일수조차 없는지도 모른다. 그의 이름에서 선사라는 호칭을 떼어낸 것은 최상승의 임제정맥을 이어받은 진짜 선사들인가, 진짜 불교를 위해 파괴와 혁신을 주장한 만해 자신인가. 어쨌든 재미있는 것은 (유신이나 정화의)양자가 주장하는 개혁의 기초가 거의 동일하다는 점이다. 그들은 언제나 조사들의 선구, 대승경전, 화엄교학의 이념들로 되 돌 아 온다. 그러나 그들은 그 동일한 기초에서 전혀 다른 개혁을 이끌어 낸다. 하나는 세간을 향하여, 하나는 출세간을 향하여. 만해가 고통스러워했던 가뭄과 목마름이 수좌들의 목마름과는 달랐기 때문일까. 과연 인심은 변해도 불법은 불변하는 것인가. 동일한 불법을 가지고 교단을 장악한 수행승들은 진짜 선사가 되었고, 실패자인 만해는 민족의 시인으로 만족해야 했으니, 과연 무애(無礙)의 만상(萬像)을 지어내는 진성(眞性)의 묘용(妙用)인가. 확실히 만해는 실패했다. 그는 불교인으로서 정당하게 민중과 민족의 개혁을 직시했으면서도 이념과 현실의 올바른 고리를 제시하지 못했다. 그는 그 자신이 갖고 있던 불교작인 사고방식의 봉건성을 인식하지 못했으며, 현실개혁의 조급함으로 인해 봉건교학의 정교한 굴레를 과소평가했다. 그가 개혁의 기초로 제시하는 불교적 이념의 폭과 그 해석의 깊이는 엷고도 좁다. 따라서 현실개혁의 정당한 의지는 과격하고 무분별한 모험주의로 간주되었으며, 그 결과 현실을 등지고 불교의 자기동일성을, 고금에 불변하는 불교적 이념의 확보를 위한 새로운 경향을 반동시켰을 뿐이었다. 물론 이러한 단편적인 객담을 통해 백담사에서 해인사로 이르는 온갖 문제들을 낱낱이 결론지을 수는 없다. 사실, 만해의 유신이나 정화 또는 수선운동 그 어느 것도 역사적으로 불교적으로도 정리된 적이 없는 미결의 문제들인 것이다. 그러나 수선운동의 전통은 그동안 불교운동의 주류로서 불교계를 지도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수선운동 자체의 반성이나 정화의 역사적 당위성, 나아가 만해가 호소했던 목마름에 시원한 결론을 내려주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아직도 미완성으로 남아 있는 수선운동에 대해 시대적인 자긍에 의해 새롭게 형성되는 민중불교운동이 맞서기 시작하면서 불교계의 문제들이 각자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세간과 출세간, 진과 속의 이분 적 대립 구조를 통해 표현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역사적 죄인을 당해 산문을 폐쇄하는 행위의 기저에는 강한 이중적 반발감이 뒤얽혀 있다. 하나는 세간의 문제에 대해 응답해야 한다는 의지이며, 또 하나는 출세간의 자기동일성에 대한 자존심이다. 그러나 그 이중적 의미는 세간의 개혁을 위해 떨쳐 일어나는 것으로 표현 되지도 않고, 세간의 죄인을 맞아 출세간의 정법으로 당당하게 다스리려 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거꾸로 세간의 이념(역사적인 죄인 따위의)을 빌어 신성한 출세간의 경계를 수호하는 명분으로 삼는다. 간간 승려들의 의식구조를 주제로 한 여론조사들도 이러한 이중성을 보여준다. 즉, 대부분의 승려들이 세간의 문제들을 인정하고 개혁의 필요성에 동조하면서도(현실문제에 대한 스님들의 의식은 놀랄 정도로 진보적이다) 실천의 문제에 닥쳐서는 일로향상의 수행정진, 출세간적인 집념을 강하게 보인다(실천에 대한 그들의 의지는 또한 놀라울 정도로 완고하며 보수적이다). 그리고 이러한 이중적 태도가 한사람의 의식 속에 일관적인 틀로서 조화되어(또한 뒤섞여) 있다는 사실은 더욱 놀랍다. 완결되지도, 결론 지워지지도 않은 중요한 문제들을 이렇게 세간과 출세간의 짜여 진 이분법적 구조로 읽어보려 하는 까닭은 이러한 문제들이 봉건교학(특히 화엄교학)의 이분 적 논리 구조에 얽매여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앞에 인용한 「원종문류(圓宗文類)」의 게송 따위의 사고방식, 세간과 출세간, 속(俗)과 진(眞)이 불일(不一)이고, 상즉(相卽)하고 상입(相入)하여 서로를 형성시켜 주지도 하고 해결해 주기도 한다는 사고방식, 이러한 논리에 의존하여 극단적인 이중성이 교묘하게 어우러져 있을 수 있게 된다. 진을 부정하지도 속을 밝히지도 않으면서 고금에 동일한 불법을 갖고 어떻게 남북으로 다른 인심을 다스릴 수 있겠는가.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러한 묘용(妙用)은 어디에도 없고 세간과 출세간은 어디서나 맞부딪치고 있다. “진성(眞性)은 매우 깊어 극히 미묘하니, 자성(自性)을 지키지 않으면서 연(緣)을 따라 이룬다.” 우리가 법당 안팎에서 밤낮으로 외우는 법성게의 한 구절. 불변하며 수연하는 미묘한 진성의 논리. 얼마 전 스님들 몇 분이 모여 윤회를 놓고 토론하는 자리에서 인간의 윤회 뿐 만 아니라, 불교 자체도 시공의 변화에 따라 윤회할 터인데 그러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불교를 불교이게끔 유지시켜 주는 것이 무엇이냐는 물음을 던진 적이 있다. 스님들의 의견은 대개 불성(佛性)이라는 표현으로 일치를 보았다. 그렇다면 불성은 또 무엇인가. 그것은 예나 지금이나 동일하면서도 남북으로 갈린 사람들의 인심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일까. 이러한 사고와 언어구조 속에서 불성과 인심을 다투다 보면 또다시 세간과 출세간의 극단적으로 상반된 실천운동과 만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우리 불교계에 아직은 저와 같은 정반대의 실천을 유발하는 동일한 근거, 불일불이(不一不異)의 교묘한 논리를 명료하게 해석해 내는 체계나 도구는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그런 전제 하에서는 백담사와 해인사를 둘러싼 세간의 비아냥과 의아함도 감내해야만 할 한계인 것 같다. 불교는 세간을 초월한 깨달음의 경지적(境地的) 특성으로 인해 본질적으로 세간과 출세간의 문제를 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출세간이란 말 자체가 세간의 부정으로 되어 있듯이, 세간 없이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출세간이 어디 있겠는가. 아무리 출세간을 지향하는 승가라 할지라도 세간이 안고 있는 문제들이나 이념들에 되돌아갈 준비를 하지 않으면 안된다. 게다가 그러한 준비를 몇 백 년. 몇 천 년 전의 해결되지도, 해결될 수도 없는 공허한 논리로 언제까지나 대신할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