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돈의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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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마의 방 - 안길모
1991년 02월 108호
우리 사회를 어둡게 하는 비리 가운데 소위 ‘프리미엄,이란 것이 있다.우리 말로는 ,웃돈,을 주는 행위를 프리미엄이라고 한다. 서양문화가 들어오면서 프리미엄을 얹어 거래하느 못된 짓도 받아들였다. 쉽게 거론되는 프리미엄으로 아파트 당첨권 거래를 들 수 있다. 달동네에서 어렵게 살다가 그 지역이 재개발지역으로 지정되는 바람에 주민들에게 신도시로의 이주권이 주어진다. 이 때 어느 주민이 입주권을 얻었다는 소식만 들리면 ’복부인‘들이 달려가 웃돈거래로 입주권을 사간다. 사람이 사는 데에 절대 필요한 삼요소가 의(衣).식(食).주(住)다. 주거권이 프리미엄으로 팔려가는 것을 보면서 삶의 3분의 1이 프리미엄에 팔려간다는 서글픔을 느낀다. 자리몫이 좋은 상가(商街)의 점포는 몇 천만원의 프리미엄이 붙어 거래된다. 이른바 기득권만 잘 얻으면 앉아서 큰 돈을 벌 수 있다. 수단 좋은 사람은 기득권 거래만으로 재벌이 되기도 했다. 하루 품삯이 2만원에서 3만원 선에 있는 근로자들의 눈에 비친 프리미엄은 천하의 괴물이고 도깨비방망이다. 프리미엄 하면 ’헬스 클럽‘ 회원권을 빼 놓을 수 없다. 헬스 클럽 회원권 가운데 한 장이 천만 원이 넘는 것도 있다. 이 경우 회원권 보다 웃돈이 서너배 이상 크다. 웃돈의 크기로는 ’골프클럽‘ 회원권을 빼놓을 수 없다. 골프 클럽 정회원권이 최고 1억 원까지 올라 있다고 한다.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회원권의 시세와 증권시세가 비례한다고 하니 참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다. 1억 원 속에는 태반이 웃돈이란다. 그래도 억대를 들여 골프클럽 회원이 된다. 골프장 입구를 보면 ’00 컨트리 클럽‘이라고 팻말이 붙어 있다. 클럽(CLUB)을 구락부(俱樂部)라고 번역한다. “함께 시골정취를 맛볼 수 있는 장소에서 어울려 즐기는 모임”이라는 의미다. 함께 어울려 잔디밭에서 공(珙)치기를 하자는데 1억 원씩을 내야 한다니 범속(凡俗)한 사람들에게는 납득이 가지 않는다. 골프장이 요즘엔 ’운동장(運動場)‘에서 ’정치장(政治場)‘으로 변해간다. 정치인들은 골프를 치며 여러 가지 논의와 타협과 구상을 한다. 알다시피 골프를 치며 불구대천(不俱戴天)의적인 양 맞서던 여당과 야당의 지도자가 합당(合黨)할 것을 합의했다. 재벌의 총수들은 골프장에서 사업을 설계한다고 한다. 창공을 나는 작은 백구(白球)를 좇는 시력으로 돈밭에 돈주머니를 펼 계획을 한다. 배추 한 포기에 1백 원을 받고 팔았다는 농부의 얼굴을 그리며 생각하면 도시 납득이 가지 않는다. 그러나 현실은 현실인 만큼 그런 세태를 인정치 않을 수 없다. 그렇게 보면 온갖 곳에 프리미엄이 없는 곳이 없다. 이미 우리는 ’웃돈 없이는 아무것도 못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웃돈이 잘못되면 뇌물이 된다. 자기에게 주어진 직책을 이용해 웃돈을 받았으면 독직(瀆職)이 된다. 옛날엔 자리를 송두리째 팔아 넘겼다는 기록도 있다. 이를 매관매직(賣官賣職)이라고 한다. 웃돈을 받고서야 발령장을 썼다는 상급자도 있었던 시절이 있었다. 중생들의 삶을 잘 아는 보살이 있다면 오늘만큼 가슴이 아플 때가 없을 것이다. 굳이 유마거사님을 들추지 않아도 아프게 알고 있는 보살들은 많다. 웃돈거래와 관련된 이야기로 암바바리(菴바바梨) 여인과 예차(隸車)와의 프리미엄 거래를 소개한다. 이 이야기는 「장아함경(長阿含經)」제 2권에 수록돼 있는 유행경(遊行經)에서 빌린 것이다. 이 경에 나오는 암바바리는 음녀(淫女)로서 행실이 별로 탐탁치 않은 여인이었다. 그녀는 비사리성의 아름다운 산에 살고 있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비사리 땅에 오셨다. 암바바리 여인은 비록 자신의 행실은 사회적인 지탄을 받고 있지만 부처님에게로 향한 지성심은 남달랐던것 같다. 암바바리 여인은 부처님께로 가서 삼귀(三歸)의 예를 갖추고 절한 다음 오계(五戒)를 평생토록 지키켔으니 재가신도가 될 것을 허락해 달라고 부탁했다. 스스로 생명이 있는 것을 죽이지 않응 것이며, 도둑질을 하지 않을 것이며, 음탕한 행위를 다시는 하지 않응 것이며 거짓말을 하지 않을 것이며, 취하는 음식을 먹거나 마시지 않을 것을 악속드렸다. 이어 암바바리 여인은 다음날 점심때 부처님과 부처님의 제자들 모두를 암바바리 동산으로 초청해 공양(供養)을 올리겠으니 허락해 달라고 여쭈었다. 부처님은 그녀의 정성이 갸륵하여 이를 허락했다. 기쁨에 넘친 암바바리 여인은 마차를 급히 몰고 암바바리 동산으로 돌아가다가 예차(隸車)라는 귀족의 마차와 충돌하는 ’접촉사고‘를 낸다. 예차 사람들은 그녀가 급히 서두는 이유를 물었다. “나는 내일 부처님을 공양하기로 약속 받았습니다. 나는 서둘러야 합니다.........” 예차 사람들은 “아차 한발 늦었구나!”라고 생각하고 암바바리에게 부처님의 공양약속을 양보하라고 말했다. 그러나 암바바리 여인은 허락하지 않았다. 예차 사람들은 약속을 양보하는 대신 웃돈 백천 량의 금(金)을 주겠다고 제의했다. 그러나 암바바리는 역시 허락하지 않았다. 이번엔 백천 량의 16배를 제의했으나 대답은 ’노!“ 예차 사람의 프리미엄 제시액이 높아간다. ”우리 재산의 반을 주겠소. 아니 우리 나라의 반을 주겠소.“ ”그럴 수 없습니다. 부처님은 제가 공양합니다.“ 예차 사람들은 화가 났다. 직접 부처님을 찾아 뵙고 암바바리와 약속을 깰 것을 엄포 반 간청 반으로 여쭈었다. 암바바리 여인과 점심식사를 하는 것보다 돈 많고 권세 있으며 권력이 당당한 예차 사람들과 점심을 하자는 것이었다.
부처님의 대답은 단호했다. “암바바리 여인이 이미 나를 청했소. 그러나 그대들이여, 당신들이 나를 초대했으니 그 자체로 나는 여러분의 공양을 받은 것과 같습니다. 부처님은 그리고 약속대로 암바바리 여인이 머무는 암바바리 동산으로가서 점심공양을 받았다. 그 자리에서 암바바리 여인은 동산과, 근처의 숲과, 방과, 집과, 옷과, 바루를 바쳤다. 이들 여섯 가지가 소위 승방육물(僧坊六物)이다. 유행경에 등장하는 웃돈 거래량은 요즘의 액수에 비해 어마어마하게 크다. ‘백천만 량 재산과 국가의 반’등의 거금을 웃돈으로 걸었다. 그 많은 웃돈을 걸고 얻어내려는 것은 다만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는 약속’이었다. 그 많은 웃돈거래에 마음을 먹지 않고 부처님 공양의 약속을 지켰던 암바바리 여인의 정신을 우리는 장하게 읽어야 한다. 요즘과 같은 사람들의 사고(思考)패턴으로 보면 나라의 반을 얻게 되는데 ‘런치파티 주최의 약속’쯤은 쉽게 저명인사에게 팔아 넘길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암바바리 여인은 약속을 지켰다. 오늘 우리가 암바바리라고 가정한다면 우리는 권력자의 뇌물공세 앞에서 얼마만큼 버틸 양심과 저력을 있을까를 반성해 볼 때다. 그것도 거금의 웃돈과 직위를 동원한 간접압력과, 비협조적이었을 때의 보복등이 엿보이는 상황이라면-. 우리는 암바바리 여인에게 찬사를 보내자는 것이다. 부처님은 암바바리 여인과의 약속을 지켜 주셨다. 그건 당연한 귀결이었다. 그러나 현대인에게는 그런 당연한 일들도 찾기 힘들어지고 있다. 약속은 식은 죽 먹기로 깨버리고 눈 앞에 나타난 현실적 세(勢)에 따라 외모를 바꿔가는 카멜레온의 동굴 속에 우리는 살고 있다. 약속 그것은 지켜질 때 약속이다. 지켜지지 않은 약속은 배신이다. 암바바리 여인도 부처님도 약속을 약속으로 지켰다. 오늘날 그 간단한 약속을 지키지 못해서 사회에 물의를 일으키는 인사들이 얼마나 많은가. 오늘날 변변치 않은 몇 푼의 돈 앞에서 양심을 변질시키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몇 푼의 웃돈과 몇 등급의 자리 승진에 양심을 팔아 이 직장 저 직장으로 유랑하는 철새들이 얼마나 많은가. 누구는 이런 세태를 메뚜기 이동식 스카웃 세태라고 했더라만........ 요즘엔 ‘아무도 믿을 사람이 없다’는 탄식을 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약속을 받았어도 돈만 많이 주면 쉽게 깰 수 있다는 생각이 팽팽하다. 세상이 바람 든 고무 풍선 같다. 늦기 전에 ‘이 세상과 내 생명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약속’을 갖자. 암바바리 여인은 숱한 남정네들과 웃돈거래 했지만 생명을 걸고 부처님을 위한 ‘런치 파티’를 지켰다. 우리들에게도 부처님과의 약속은 있다. 기억해주기 바란다. 잊었다고 말하지 말기 바란다. 당장이라도 팔둑을 걷어보면 연비(然臂)자리가 완연하다. 우리들은 부처님 앞에서 몸을 태우며 ‘당신의 가르침을 바르게 실천하고 온누리에 바르게 전하며 스님들을 존경하겠다는’는 약속을 분명히 했다. 그때 도 ‘살생하지 않겠습니다. 도둑질하지 않겠습니다. 거짓말하지 않겠습니다. 술을 먹지 않겠습니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일부 불자들은 그런 약속을 했다는 사실마저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듯한 행동 속에서 나날을 지내는 것 같다. 요즘같이 약속이 지켜지지 않는 세상에 그 무엇을 주고라도 바꿀 수 없는 약속을 평생의 약속으로 되돌아가자는 의미에서 우리들의 기득권을 주장해본다. ”우리는 불자자 되겠다는 약속을 남보다 먼저 했습니다. 이 약속은 기득권입니다. 이 기득권은 어떤 프리미엄으로도 살 수 없고 팔 수 없는 것입니다.“
안길모씨는 충북 괴산에서 출생하였다. 고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동국대 불교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동양방송과 중앙일보기자와 중앙승가대에서 강의한 바 있고, 불교방송 보도국장을 거쳐 현재는 불교방송 기획심의실장으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