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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자승 재촉하여 차 달이라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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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류동천 - 김홍영 2004년 09월 271호
금계錦溪 황준량黃俊良(1517~1563) 선생은 조선 명종 15년(1560)에 성주 목사가 되었는데, 부임한 후 간혹 여가가 있으면 해인사를 찾아 산수 풍광을 즐기는 한편, 학문과 시문에 능한 스님들과 교분을 나누기도 했다.
금계의 집은 소백산 아래 있었는데, 그 주위에 흐르는 시내 이름이 금계錦溪였다. 그는 일찍이 금계 가에 한 칸의 띠집을 지었지만 지방관으로 다니느라 돌아갈 겨를이 없이 다만 멀리 소백산 푸른 기운이 우뚝한 것만 바라볼 따름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객지에서의 무료한 심회를 달래기 위해 가야산 가을 경치를 구경하러 나섰는데, 해인사에 들러 주지스님을 만났다. 그 주지는 마침 시율詩律에 능한 터라 금계에게 자신의 시축詩軸을 내보였는데, 7언 율시 한 수와 7언 절구 두 수를 적은 것이었다. 금계는 그 시축을 읽고나서 차운했는데, 다음에 소개하는 시는 7언 율시에 차운한 것이다.

객회난금견사다客懷難禁繭絲多 객회를 견디기 어려움 매우 많아
일입우두상간아一入牛頭賞磵阿 가야산에 들어가 시내 굽이 구경하네
호호운산개시락浩浩雲山皆是樂 드넓게 구름 낀 산은 모두 즐겁고
망망원화본무애茫茫元化本無涯 아득한 천지 조화는 본디 끝 없네
풍화미로추용호楓花未老秋容好 단풍이 시들지 않아 가을 모습 좋은데
광경여류영절과光景如流令節過 광경은 물 흐르듯 좋은 절기 지나가네
일모주성환초초日暮酒醒還 해 저물어 술 깨자 다시 쓸쓸하기에
송창최환소승다松窓催喚少僧茶 송창에서 동자승 재촉하여 차 달이라 하네

고치의 실올(繭絲)처럼 많은 금계의 객회는 우두산, 즉 가야산의 시내 굽이를 구경하는 동안 드넓게 구름 낀 산과 아득한 천지의 조화 가운데 어느덧 즐거운 심회로 변하고, 단풍이 시들지 않은 가을 광경에 좋은 절기가 흘러감을 느낀다. 이때는 주지스님의 지극한 환대를 받아 몇 잔 술도 겸한 뒤였다. 이렇게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동안 문득 해는 저물어 주흥酒興도 따라서 깨자 동자승에게 차를 달여오라 하였다. 그리고는 아마 주지스님과 함께 차 향을 음미하면서 시를 논했으리라. 금계는 또 뒤의 시에 차운하기를, 구슬이 구르는 소리를 내는 계류溪流의 서늘한 바람을 쐬며 한 번 유하주流霞酒에 취한다면 금단金丹의 선약仙藥이 없더라도 절로 신선이 될 만하다고 하였다.
그로부터 4백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가을의 문턱에 선 가야산은 여전히 맑은 물소리 울리며 비단 수놓은 듯한 단풍으로 선경仙境을 장식하고 산 밖의 사람들을 부른다.□

*필자 주 : 본문에 인용한 시의 제목은 <가을에 가야산을 유람하고 주지승의 시축에 차운하다(秋賞伽倻次持僧軸)>이고, 이 시는 황준량의 시문집인 《금계집》 권6에 실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