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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미일본박물관(Japanese America National Muse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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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보여화 - 김진숙 2004년 09월 271호
미국에 최초로 이민 온 아시아 사람은 19세기 초 중국인이었다. 그 후 그들은 미국의 농업 발전에 크게 기여했지만 19세기 후반 미국인과 중국인 사이에 감정이 악화되면서 중국인이 더 이상 미국에 오지 못하도록 법령이 제정되었다. 이 때문에 미국 내의 저임금 노동자가 부족하였기에 다음으로 아시아인 중에서 일본인 독신 남자들의 이민이 허용되었고 이들 역시 캘리포니아의 사막에서 주로 농업에 종사하였다. 이 시기의 아시아인들은 유럽에서 온 이민자와는 달리 미국으로의 귀화가 법적으로 금지되었으며 자신의 재산을 소유할 수도 없었고 백인과의 결혼도 금지되는 등 많은 차별을 받았다고 한다.
특히 일본인 이민자의 경우는 일본의 1941년 하와이 진주만 공격으로 인해 미국 내에서 많은 수난을 당하였다. 당시 약 10만 명 정도 되던 미국 내 거주 일본인은 위험한 사람들로 분류되어 여러 곳의 강제수용소로 분산 수용되면서 수용소 생활을 하였다고 한다. 대부분의 이민생활이 힘겹게 시작하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지만 처음부터 불평등과 차별로 시작된 아시아인의 미국에서의 이민 생활은 상상 이상임을 알았다.
그래서 각 이민자 커뮤니티는 크든 작든 간에 그들의 이민의 역사와 본국의 전통을 알리려는 노력을 쉬지 않는다. 특히 이곳 캘리포니아 지역은 주로 아시아 이민자가 많은 까닭에 더욱 그러하다. 그 중에서도 이번에 방문하였던 전미일본박물관(Japanese America National Museum)은 그 규모도 물론 크지만 일본인의 이민의 역사와 실상을 잘 보여주고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이곳은 미국 내의 가장 오래 되고 큰 일본 커뮤니티가 있는 LA 중심부에 자리잡고 있는 리틀 도쿄(Little Tokyo)에 위치하고 있다. 리틀 도쿄에는 박물관 외에도 문화회관, 극장, 일본식 상점과 가게, 그리고 몇 개의 커다란 불교 사원이 있다. 매년 8월 백중에는 일본식 축제가 열리고 박물관 앞 광장에서 무용 발표와 음악회가 열리기도 한다. 박물관과 문화회관의 갤러리에서는 현재 미국에 거주하면서 활동하는 작가는 물론이고 동양과 일본 국내 작가들의 작품도 끊임없이 소개하고 있다.
전미일본박물관은 입구가 마주 보고 두 동의 건물이 있는데 사무실로 쓰이는 한 곳은 입구를 일본 사원의 입구처럼 꾸며 놓았다. 다른 한 곳은 상설전시장과 특별 전시를 위한 갤러리, 자료실, 상점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곳의 상설 전시장은 사진과 비디오, 전시물을 이용하여 이민 1세대부터 시작하여 현재에 이르기까지 일본인의 이민 역사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강제수용소 당시의 판잣집을 그대로 전시하고 있어 비장한 느낌마저 들고 있다. 박물관 전체의 벽과 창문에는 박물관을 짓도록 기부한 사람들의 이름이 빽빽이 새겨져 있는데 어찌 보면 하나의 장식처럼 보이기도 하나 개인적인 느낌으로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염원으로 이 박물관이 세워지게 되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박물관은 이층으로 전체가 타원으로 지어져 넓고 시원한 밖의 풍경을 감싸 앉고 있다. 전시 내용과는 달리 이러한 구조로 인하여 관람자의 기분을 여유 있고 밝게 만들어준다.
박물관의 전시를 보면서 한 가지 주목하고 싶은 것은 바로 일본 불교사원의 역할이었다. 불교사원은 미국에서 이민자들의 정신적인 지주 역할은 물론이고 일본 요리, 꽃꽂이, 일본어와 영어 교육, 수예, 음악 등도 가르쳤다고 한다. 또한 전시품 중에는 집에서 모시는 불단을 미국에까지 가져와 그대로 모시고 있었다. 일본인들의 불교에 대한 신앙을 보면 어떤 특별한 믿음보다는 그들의 삶 속에 녹아 있는 한 부분처럼 여겨진다. 우리처럼 매주 절에서 법회를 본다거나 매년 여름 산사에서 수련회를 갖는다거나 하는 행사는 없지만 삶 전체 속에서 조용히 묻어나는 불교적인 자세는 놀라울 정도이다. 이러한 그들의 불교적인 삶은 전통 문화를 지켜낼 뿐만 아니라 그들을 하나로 이어주는 정신적인 지주역할을 하는 것은 물론이다.
이곳 리틀 도쿄에도 약 4군데 정도 종파는 다르지만 규모가 아주 큰 일본 불교사원이 있다. 이곳이 일본 커뮤니티의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 커뮤니티 내의 학교나 단체에서 행사가 있으면 자연스럽게 사찰의 법당을 이용한다. 이제는 많은 일본인들이 LA 외곽으로 이주해 살지만 이곳은 여전히 그들에게 고향과도 같은 곳인 것 같다. 이들이 비록 차별과 무시 속에서 이민의 역사를 시작하였지만 이제는 이민자들의 노력과 본국의 노력으로 그들의 미국 내에서의 위상은 당당하다. 아마도 이 전미일본박물관이야말로 이러한 것을 대변해 주는 것이 아닌가 한다. 그리고 그 밑바탕의 힘은 불교와 그들의 전통문화임은 말할 것도 없다.
박물관 2층 홀에서 할머니 한 분이 종이 접기로 은방울꽃을 만들고 있다. 종이 접기의 종이는 한국 것이라며 보여준다. 그리고 한국 커뮤니티도 이러한 박물관이 있느냐고 묻는다. 아직 없다고 대답하는 내 기분이 왠지 씁슬하다. 우리 불교도 미국에서 한국 커뮤니티의 정신적인 지주 역할을 하며 우리의 전통문화를 지키고 이민 2, 3세들에게 가르치는 주도적 역할을 할 수 있는 날이 하루 빨리 왔으면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종단차원의 해외포교에 대해 보다 체계적, 지속적인 지원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