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루뭉실한 스님
이전 게시물
다음 게시물
연꽃 담는 오솔길 - 진명
2004년 09월 271호
사람을 많이도 지치게 했던 가마솥더위 때문인지 살갑게 부는 바람이 반갑기 그지없다. 꺾이지 않던 폭염의 기세도 불어오는 가을바람에는 어쩔 수 없나보다. 가마솥더위가 어디로 갔는지 사방을 둘러봐도 찾을 수 없고 여름이라는 단어에만 남아 있을 뿐이다. 도저히 찾아올 것 같지 않던 가을이 이렇게 성큼 찾아와 창문을 닫게 한다. 살아가는 일도 이런 것일 게다. 만났는가 싶으면 어느새 저만큼 멀어져 있고 한 고비를 넘었는가 싶으면 또 다른 고개가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조금 더 인내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면서 말이다.
나에게 방송이라는 일은 많은 인내를 가르친다. 서울에서 사는 것만으로도 인내해야 할 일이 많은데 방송실 안에서 한 시간은 호흡을 잡고 있어야 한다. 세월이 많이 흐른 것 같은데 지금도 여전하다. 긴장해야 하는 시간을 인내해야 하는 것…… 그러나 나의 그런 긴장을 시원하게 날려 주는 팬레터가 있어 긴장의 고비 인내의 시간들을 잘 건너가고 있다.
아마 방송을 시작하고 한 삼년쯤 되었을까? 나를 많이 웃게 했던 편지가 있었다. 멀리 부산에서 온 편지였다. 한참 봄이 깊어갈 즈음, 싱그러운 초록이 짙어가고 산과 들에는 소박한 찔레꽃이 한창일 때였다. 불자였는지 기억은 없지만 남자 청취자로 기억하는데 매일 아침 “차 한 잔의 선율”을 듣기 위해서 출근 시간을 조금 늦추고 천천히 출근하면서 라디오를 듣는다고 했다.
그러니까 편지 내용에 의하면 가까운 거리임에도 천천히 한 시간을 출근을 하는 셈이었다. 그런데 그 청취자의 편지를 읽어 내려가는데 이 대목에서는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스님! 매일 아침 스님이 진행하는 방송을 잘 듣고 있습니다. …… 그런데 스님 목소리를 듣고 있으면 요즘 한창 피어 있는 하얀 찔레꽃을 닮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청초하면서도 소박하고 아름답고 향기로운 찔레꽃을 말입니다…….” 이 대목을 읽는데 왜 그렇게 웃음이 나던지. 편지를 읽다 말고 내가 말했다. “네, 이 대목에서 제가 웃지 않을 수 없군요. 아는 사람은 알지요. 제가 왜 웃는지를…….” 그렇게 웃음을 머금고 겨우 편지를 다 읽고 음악 선물을 띄워 보냈다. 그 날 그 시간 나를 아는 불자 부부가 운전을 하고 출근하며 그 방송을 듣다가 어찌나 웃음이 나서 박장대소하다가 하는 수 없이 차를 갓길에 세우고 웃음을 다 웃고 난 후에 다시 운전을 했다고 했다.
또 어떤 불자님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내가 서울대 음대 출신이 되어 있기도 했다. 이유인즉, 방송을 꾸준히 듣는 연세가 지긋하신 불자님이 계신다. 그런데 어느 날 이웃에 사는 친구가 자기 집을 방문을 했단다. 그 친구는 타종교를 믿는 친구였는데 우연찮게 친구가 방문한 시간이 “차 한 잔의 선율”이 방송되는 시간이었단다. 그 시간은 느긋하게 차를 한 잔 하며 여유를 즐기는 시간이라 누구의 방해를 받기 싫어하는 시간이었단다. 그런데 그 친구가 클래식음악을 아는 친구였던지라 방송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어떤 방송이냐고 묻기에 목소리에 힘주고 말했단다. “우리 불교방송에서 하는 차 한 잔의 선율이라는 프로인데….” 그랬더니 진행자 목소리가 참 편안하다고 하기에 얼른 받아서 “진행자가 스님이신데….” 더 크고 또렷하게 말했단다. 그랬더니 “스님들은 목탁치고 기도만 하는 줄 알았는데 저렇게 클래식음악도 많이 알고 방송도 하느냐”고 해서 무슨 소리냐고 “우리 스님들이 얼마나 공부를 많이 하는지 아느냐…”고 했단다. 그러니까 그 친구가 하는 말이 “저 스님 어느 음대 나왔어? 서울대 음대 나왔나? 어떻게 저렇게 많이 알지?”라고 해서 얼른 그 불자가 “아마도 그럴 것이다”라고 대답했다고 하면서 나에게 묻는 말이 “스님 어느 음대를 졸업하셨어요?” 했다. 그래서 “네 부처님 음대 나왔습니다”라고 대답하면서 나는 또 웃지 않을 수 없었다. 다음에 또 누군가가 물으시면 부처님 음대 나왔다고 하라고 하면서 둘이 한바탕 웃었던 일도 있다.
뿐만 아니라 대구에서 팬레터를 보내온 어떤 애청자는 항상 오프닝 인사에서 “안녕하십니까. 차 한 잔의 선율 진명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내 발음을 잘못 들었는지 편지를 보내 올 때 내 이름을 “진명희 아나운서…”라고 써서 보내며 살갑게 보통 누나에게 털어놓는 말들을 다 담아 보내오기도 했다. 또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던 어떤 청취자에게서는 성지순례를 함께 다녀온 후에 이런 말을 들었다. 어느 날 채널을 돌리다가 목소리가 편안해서 채널을 맞추고 방송을 듣기 시작했단다. 나름대로 이런 추측을 하면서 말이다. “아… 불교방송에서 목소리 좋은 연예인을 초청해서 방송을 하나보다…”라고 한껏 상상의 나래를 펴면서 말이다. 그런데 하루하루 방송을 듣다 보니 일반 진행자가 아니고 스님이더란다. 약간은 충격과 함께 신선함과 설렘으로 방송을 계속 듣다가 어느 날 방송에서 진명 스님이 지도법사로 가는 성지순례 안내가 나와서 목소리와 인물을 대조하기 위해 상상으로 그려 놓은 그 목소리의 주인공 진명 스님을 품고 나왔는데 이게 웬일인가. 전혀 목소리와는 다른 스님이 나타나 지도법사라고 하기에 내심 “아니지, 저 스님이 진명 스님은 아닐테지… 아마 다른 스님이 또 오겠지…” 하면서 기다렸는데 성지순례 버스는 출발을 하고 “제가 차 한 잔의 선율을 진행하는 진명입니다”라고 하면서 지도법사가 인사를 해서 함께 온 딸아이와 둘이 마주 보며 웃었다고 했다. 장거리 성지순례 길이라 이동 시간이 길어서 버스를 번갈아 타며 법문이라기보다는 일상적인 이야기들이며 또 불자들이 사찰에서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것들, 재가와 출가자들이 함께 만들어 가는 우리 승가공동체가 풀어가야 할 문제들을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했었다.
일상으로 돌아와 며칠 방송을 하고 있는데 인터넷 홈페이지 게시판이 아닌 정성스럽게 쓴 편지에 마음을 담아 편지를 보내왔다. 그 편지 중에 나를 또 한 번 크게 웃게 했던 대목이 있었다. 그대로 옮기자면 “……스님의 방송을 들으며 일년여 동안 제 나름대로 스님을 그렸는데, 아주 현대적이고 키가 크면서 호리호리하고 예쁜 스님인 줄 알았습니다. 그리고 좀 따뜻하지만 많이 쌀쌀맞아 말을 걸기가 어려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제 계산이 착오였습니다. 스님의 모습은 두루뭉실하고 볼 품 없었는데(실례라면 용서하십시오.) 성지순례를 함께 하는 내내 밝은 웃음을 잃지 않는 스님의 말씀을 듣는 동안 마음이 시원했습니다. 때론 당당하게 때론 학인시절 도반들과 함께 도모했던 에피소드로 대중을 파안대소 하게 만들었던 일이며 법당에서 낭랑하게 기도하며 축원하시던 스님을 뵙고 나니 더 많이 친근해져서 날마다 방송을 더 기다리게 되었습니다…….(일축하고)”라는 내용이 빼곡하게 두 장에 담겨 있었다.
하하하하하… 두루뭉실하고 볼 품 없는 진명 스님과 호리호리하고 예쁜 진명 스님이라… 물론 나는 웃음과 함께 편지를 다 읽어 드렸다. 나를 스님인 줄 모르고 아나운서 누나로 간직한 청취자도 있을 것이고 잠깐 스쳐간 청취자라면 연예인의 한 사람이나 음악 전문가로 남아 있기도 할 것이다. 청취자는 전파를 타고 마음을 파고드는 그 소리 하나에 누구도 막지 않는 상상의 나래를 마음껏 펼치기도 하고 다양한 빛깔로 자기 것을 만들 수 있는 시간이 라디오를 듣는 시간일 것이다.
이렇듯 라디오 방송은 텔레비전과 다르게 프로를 진행하는 사람을 볼 수 없기 때문에 그저 목소리 하나로 그 사람을 파악하게 된다. 그러나 목소리 하나로 그 사람의 깊이와 넓이를 안다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많이 생각하는 것까지도 번거로워 하는 요즘 사람들에게 상상의 나래를 펼 수 있는 시간, 누군가가 내가 들려주는 짧은 말 한마디에 삶의 고단함을 쉬어갈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은 포교가 있을까 싶다.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라디오 방송을 통해 부처님의 가르침에 좀더 쉽게 다가앉을 수 있길 바랄 뿐이다. 내가 두루뭉실하고 볼 폼 없어도 상관없으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