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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 뒤르껭:성스러움의 상징과 사회(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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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이뭐꼬 - 법진 / 해인강원 강사 2004년 09월 271호
프로이드가 비엔나에서 무의식으로 인간의 의식 세계를 이해할 수 있다는 기상천외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을 때, 뒤르껭은 프랑스에서 매우 색다른 종교 이론을 내놓고 있었다. 뒤르껭은 사회구조, 사회관계, 사회제도 등을 중시하여 인간의 사상과 행위를 이해하고자 하였다. 그에게 있어서 법과 도덕, 노동과 여흥, 가족과 개성, 과학, 예술, 그리고 종교 등 인간의 삶의 주요 요소들은 모두 사회적인 맥락에서 이해될 때에만 의미있는 것이었다. 사회라는 전제 없이는 어떤 것도 존재할 수 없었다.
얼핏 보기에, 사회와 관련된 주제를 연구하는 사상가들은 보수적일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렇지만 현재 사용되고 있는 사회학적 용어들을 검토해 보면, ‘사회적 환경,’ ‘사회적인 퇴보,’ ‘사회 공학,’ ‘사회 개혁,’ 또는 ‘사회적인 맥락’ 등이 거의 예외 없이 진보적인 변화를 염두에 두고 있다. 사실 1세기 전만 하더라도, ‘사회적’이라는 용어는 기껏해야 상류층의 넉넉한 저녁 파티 정도를 일컫는 말로 매우 제한적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그렇지만 뒤르껭이 제기한 ‘사회적’이라는 말은 이와 매우 다르다. 사회적인 것은 개인적인 것보다 훨씬 더 근본적인 것으로 문화의 핵심과 같은 것이었다. 인간은 결코 개인적일 수 없다. 어떤 상황에서도 인간은 가족이나 친척, 도시, 인종, 정당, 민족, 전통, 또는 그 밖의 어떤 것에 속해 있어야 한다. 개인은 사회를 통하여 이해해야 했고, 그리고 사회는 사회적인 맥락에서 이해해야 했다.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뒤르껭은 새로운 학문의 방법론을 제기하였는데 이른바 ‘사회학’이라는 것이 그것이다. 그렇다고 ‘사회에 대한 과학(science of society)’이라는 의미로 사용된 ‘사회학’이라는 말이 뒤르껭에 의해 최초로 사용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뒤르껭은 학문적 경향에 있어서 프로이드와 두 가지 유사한 점을 갖고 있다. 첫째는 둘 다 먼 특정한 과거 사회를 연구 대상으로 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다만 프로이드가 과거의 심리학이라면 뒤르껭은 과거의 사회학이었다는 점이 다르다. 두 번째는 둘 다 유럽 지성사 전통에서 매우 오랫동안 의문거리였던 종교적인 행위와 믿음에 관하여 불가피하게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종교란 과연 무엇인가? 왜 종교는 인간의 삶에서 그렇게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가? 종교는 개인과 사회를 위하여 어떤 기여를 해왔는가? 프로이드는 이와 같은 질문에 대해 종교에 의지하지 않고는 개인적인 인격을 설명할 수 없었다. 그리고 뒤르껭은 사회 없이는 이러한 질문에 답할 수 없었다. 이면에 숨겨져 있는 강력한 ‘사회적인’ 어떤 힘을 이해하기 위하여 ‘종교적인’ 것을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뒤르껭에게 종교와 사회는 서로 분리될 수 없는 유기적인 것이었다.

사상과 영향
뒤르껭의 사회에 대한 연구는 그에 의해 갑자기 새롭게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프랑스 학자들 가운데 그에 앞서 이미 그와 유사한 주장을 내놓은 자들도 있었다. 따라서 뒤르껭의 사상은 이러한 프랑스 학자들을 계승하여 발전시킨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1800년대 후반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유럽은 두 가지 큰 경험을 했다. 하나는 경제적인 산업혁명이고, 다른 하나는 정치적인 면에서의 프랑스혁명이다. 뒤르껭은 이 둘이 서양문명사 전통에서 유럽인들의 삶을 크게 바꾸었다고 보았다. 유럽은 거의 2,000년 동안 농업사회였고, 배타적인 계급질서와 토지에 기반을 둔 귀족 중심의 사회였으며, 기독교 교회의 진리와 전통 그리고 구조를 반영하고 있는 지역 공동체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그러나 이 두 가지 혁명을 거치면서 유럽문명은 온전히 새로운 문명의 변화를 겪게 되었다는 것이다. 시골의 농민들이 공장이 있는 도시로 대거 이주하였고, 토지와 명성을 누리고 있던 귀족보다는 자본을 소유하고 있는 공장 상인들이 사회의 중심세력이 되어, 특권을 가진 귀족들로부터 일반 서민에게로 권력의 핵심이 넘어갔다. 그리고 종교는 곳곳에서 논쟁에 휩싸여 있거나 아니면 심지어 신앙 그 자체에 대한 믿음이 크게 약화되기도 하였다. 이를 두고 뒤르껭은 다음과 같은 네 가지로 이해하였다.
1. 유럽의 전통적 사회제도가 가족과, 지역 공동체, 그리고 종교적인 신앙으로 서로 긴밀하게 결속되어 있었듯이, 19세기 말에 새로운 계약적인 질서가 생겨났다. 이 질서 속에서는 개인적인 이익과 부에 관련된 것들이 주된 요소가 되었다.
2. 도덕과 규범의 측면에서, 교회에 의해 인정받은 성스러운 가치가 새롭게 대두된 가치에 의해 도전받았다. 종교적인 신앙보다는 이성을 강조하였고 그리고 내생에 천당에서의 행복보다는 금생의 현실적인 행복을 중시하였다.
3. 정치적인 측면에서, 사회 기층 집단으로 시민 대중이 출현하고 그리고 사회 통합체로 강력한 중앙 집권국가가 출현함으로써 사회 통제의 본질적인 질서가 바뀌고 말았다. 개인은 전통적으로 간직해 온 그들의 고전적인 도덕적 가치, 즉 가족, 마을, 그리고 교회로부터 벗어나 그들이 어떤 정당 또는 대중 운동단체, 그리고 국가에 속해 있는가를 중시하였다.
4. 개인적인 측면에서, 이와 같은 새로운 가치가 개인에게 더없는 자유와 희망을 약속했지만, 동시에 엄청난 위험요소를 안겨 주었다. 위대한 번영과 자아실현의 약속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외로움과 개인적인 고립이라는 위험요소이기도 했던 것이다.

사회의 본성(본질)
《분업 The Division of Labor》에서 뒤르껭은 사회의 본성에 관한 온전히 새로운 견해를 내놓았다. 사회적인 삶은 인류 문화가 경험한 근본적인 특징들이 구체화된 것이다. 기존의 연구에서는 이러한 것들을 두고 ‘사회계약’이라고 이해하였다. 그들이 말하는 사회계약이라는 것은 사회에서 두 개인이 어떤 사안을 두고 ‘네가 이것을 하면 나는 저것을 하겠다’는 합의를 이루어 낸 순간부터 시작된다는 점을 중시한 것을 말한다. 그렇지만, 뒤르껭이 보기에 이러한 주장은 그럴싸한 상상의 이야기에 불과한 것일 뿐 역사 속에 실재한 것은 아니었다.
인간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늘 가족, 마을, 또는 부족 등 어떤 집단 속에서 그 일원으로 태어났고 그리고 그 맥락에서 생활해 왔다.
인간의 역사에서 사회적인 결속은 항상 개인적인 것들을 우선하는 것이었다. ‘집단’이라고 하는 개념으로부터 개인의 도덕적인 의무와 개인의 소유권 등이 제기된 것이다. 뒤르껭은 이러한 변화를 두고, 고대와 현대 사회는 단지 그들이 소속된 집단의 단위를 이루는 방법에 차이가 있을 뿐이라고 이해하였다. 초기 공동체는 외부적인 강제 성격이 강한 기계적인 연대책임을 강조하였다. ‘좋은 행위는 집단의 도덕을 깨뜨리는 사람들을 처벌함으로써 지켜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에는 유기체적 연대책임을 강조한다. 분업이 이루어지고 있고,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자기의 방식에 따라 다양한 행동을 하고 있기 때문에, 도덕의 실천도 다양하게 발전하게 되었다. 도덕은 처벌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각 개인이 다른 사람의 일을 방해함으로써 결국에는 자신에게 불이익이 올까 두려워서 실천하는 것이다.
뒤르껭이 보기에, 도덕성이나 다른 사람에 대한 의무감은 종교로부터 분리될 수 없었고, 동시에 도덕이나 종교는 사회적인 틀로부터 분리될 수 없었다. 어떤 것도 사회적인 맥락을 벗어나서는 존재할 수 없었다. 서구 문명에서 어떤 사회가 원시시대로부터 전해내려 온 어떤 집단의식을 폐기하였다면 그리고 분업을 통하여 도덕적으로 개인주의적인 제도를 변화시킬 수 있었다면, 종교와 도덕이 사회적인 질서의 유지와 변화에 공히 기여한 것이다.
도덕적인 질문은 종교에 대한 질문을 감안하지 않고는 대답하기 곤란하다. 뒤에서 살펴볼 《종교적인 삶의 기본 형태 The Elementary Forms of Religious Life》 (1912)는 이러한 것들을 폭넓게 감안한 뒤르껭의 종교이론의 핵심을 담고 있다.
사회에 대한 과학적인 연구
뒤르껭은 1895년에 《사회학적인 방법론의 원칙들 The Rules of Sociological Method》을 출판하여 사회학이 객관적이고 독립된 과학으로 연구되어야 한다는 점에 대해 폭넓게 검토하였다. ‘과학적’이라는 말은 예컨대 생물학자가 볼 수 있고 만져볼 수 있는 것들을 대상으로 객관적인 연구를 해나갈 때 타당한 것인데, 과연 보이지도 만져볼 수도 없는 ‘사회’라고 하는 추상적인 것을 어떻게 과학적으로 연구할 수 있을까? 뒤르껭은 영국의 타일러나 기타 인류학자들과 마찬가지로 사회를 ‘문화’라고 간주하였다. 돌멩이나 바다 조개가 실제로 존재하는 것처럼 사회적인 사실들도 참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사회는 어떤 사람의 머리를 스쳐 지나가는 단순한 생각이 아니라 그것은 언어나, 법률, 관습, 사상, 가치, 전통, 기술, 그리고 생산물 등으로 구성된 사실들의 문화 복합체이다. 이들은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고 그리고 개인적인 인간의 마음에 형식적인 것으로 존재한다. 이러한 복합체들은 우리가 이 세계에 태어나기 전부터 존재했고, 태어난 순간부터 우리들에게 강제로 주어진 것들이며, 그리고 죽고 난 후에도 이들은 우리의 존재 여부와 상관없이 생존한다. 만일 우리 주변에 이와 같은 참된 그리고 독립적인 사회적인 사실들이 있다면, 그들을 연구할 수 있는 독특한 과학적인 훈련이 있어야 한다. 살아 있는 유기체가 물리학과 화학으로 설명되듯이, 사회는 사회학이라고 하는 과학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뒤르껭의 사회학적 방법론에 대해 자세하게 논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뒤르껭이 종교에 대한 연구 방법으로 어떤 것을 사용했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뒤르껭에 따르면, 인간은 어떤 사회에서건 무엇이 정상적인 행위이고 어떤 것이 병적인 즉 비정상적인 행위인가를 결정해 왔다. ‘정상적인’이라고 하는 말은 언제나 어떤 집단 내에서라는 범위를 전제로 결정된다. 예컨대, 자살이 일본과 같은 어떤 사회에서는 정당화되지만, 어떤 사회에서는 죄악시된다. 일부다처제는 원시사회에서는 매우 일반적인 결혼풍습이었지만 현대에는 그렇지 않다. 따라서 ‘정상적’이라고 하는 개념은 사회를 전제로 하는 말이다. 어떤 사회의 ‘기능적인’ 측면에서 정상적인가 아닌가 하는 것은 인간의 행위를 설명하는 데 매우 중요한 것이다. 설사 어떤 사회에 설교를 매력적으로 하는 설교자가 있어서 그 종교가 크게 부흥할 수 있었다고 하더라도, 부흥이 갖는 기능은 사회적인 맥락에서 파악되어야 하는 것이다. 사회학자의 관점에서 보면, 설교자의 성공 여부는 많은 죄인들을 개종시키는 데 있지 않고 사회적인 맥락에서 그 사람들로 인해 공동체 또는 사회가 어떻게 변했는가 그리고 그러한 개인들이 공동체를 위해 어떤 역할을 했는가에 있는 것이다.
뒤르껭은 《자살 Suicide》 (1895)에서 종교의 기능적인 측면이 어떤 것인가를 검토하였다. 유럽 사회의 자살 비율을 면밀히 검토한 후, 자살률이 기독교 국가들에서 가장 높고 카톨릭 국가에서 가장 낮으며, 두 종교가 공존하고 있는 국가에서는 중간이었음을 지적하였다. 이러한 결론은 자기본위의 정서가 강한 국가일수록 자살률이 높은 것을 말한다. 기독교와 카톨릭 모두 자살을 죄악시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종교적인 믿음 체계 때문에 이러한 비율의 차이가 난다고 단정하여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사회학적인 측면에서는 확실한 차이가 있다. 기독교 사회는 카톨릭 사회보다 많은 개인적인 자유를 허용한다. 기독교인들은 신 앞에 자기 자신으로 선다. 그러나 카톨릭 사회는 사제가 신과 사회 사이의 중간역할을 하며 교구 내의 강한 결속을 강조하는 등 사회적인 공동체 의식을 강조한다. 그러므로 한 공동체의 자살률은 부정적인 측면에서 사회 통합의 정도와 관련되어 있는 것이다. 자살의 원인과 자살이 갖는 사회적 기능도 또한 고려해야 할 사항이다. 개인적인 자살의 원인은 개인에 따라 다르다. 그러나 기능적으로 말하면, 개인주의적인 자살은 느슨해진 사회적인 연대와 긴박감의 결과물인 것이다. 또 다른 자살의 원인으로 뒤르껭은 목적의식이 없는 것을 들었다. ‘무법률(lawlessness, anomia)’은 소속감이 없고 목적의식이 없는 것을 의미한다. 잘 훈련된 사회학자들이 보기에 자살 현상은 일반적인 연구가가 보는 것과는 다른 관점으로 비쳐졌던 것이다.□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