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강물을 본 적이 있는가동쪽 울타리 아래 국화꽃 꺾어들고 採菊東籬下
한가롭게 남산을 바라보네. 悠然見南山
산기운은 황혼에 더욱 곱고 山氣日夕佳
날아오는 새, 짝지어 돌아오누나. 飛鳥相與還
이 가운데도 참뜻 있으리니 此中有眞意
말하려 해도 이미 말을 잊었네. 欲辨已忘言
-도연명陶淵明 <음주飮酒> 중 일부-
일찍이 도연명은 복잡한 세상을 멀리하고 시詩를 읊다 마침내 그 강물을 따라 전원으로 돌아왔다. 그는 지금으로부터 천칠백년 전의 사람이다. 그때의 세상살이도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았던 모양이다.
우리네 사는 것이 언제나 고향의 소나무를 입가에 올리지만 강물을 잊고 도시유목의 생활을 버리지 못해 전전긍긍이다. 이것과 비교한다면 도연명의 삶은 현자賢者의 그것이다. 다만 그때와 지금이 다른 것이 있다면 돌아가고자 하나 돌아갈 수 있는 무성하고 황폐한 전원조차 없어지는 것이 아닌가 걱정이 아닐 수 없다.
호계虎溪는 중국 여산廬山에 있는 계곡이다
여산은 그 풍광이 아름다워 일찍이 많은 선사禪師와 일사逸士들이 이곳을 의지해 공부를 하였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여산을 주제로 한 시서화詩書畵는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여산에 가보지 못한 조선의 쟁쟁한 화가들도 여산의 아름다움을 그려냈으니 그 명성을 알고도 남음이 있다.
호계라는 계곡은 혜원慧遠 스님이 손님을 배웅할 때 이곳을 지나치면 호랑이가 울었다 하여 붙여진 명칭이다. 혜원 화상이 여산에 들어 공부를 할 때 도를 이루기 전에는 이 호계를 경계로 하여 절대 그곳을 넘지 않겠다고 다짐하였으니 아무리 반가운 손님이 찾아와도 배웅을 할 때, 호계를 넘는 일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혜원 화상에게 육수정陸修靜, 도연명陶淵明 두 사람이 찾아와 밤을 잊고 즐겁게 이야기하니 그 반가움이 온 산을 채우고도 남음이 있었다. 아쉬움으로 그들을 배웅할 때는 그 반가움에 이미 이 호계를 무심코 지나치게 되었다. 호계를 이미 건너온 뒤에야 사실을 문득 깨닫고는 세 사람은 파안破顔하고 크게 웃었으니 이것이 호계삼소虎溪三笑의 의미이다.
시인 도연명과 혜원 화상이 활동하던 시기는 이미 몇 백년의 차이가 있으니 이 일화의 주인공은 분명 그들은 아니었을 것이다. 육수정은 도인道人이고 도연명은 시인이다. 혜원 화상과 더불어 유불선儒佛仙의 대표선수가 모인 셈이다. 비록 그들의 사상은 다르지만 관통하는 그 흐름이 같음을 이야기하고자 이들을 모아놓은 것이라 생각된다. 생각이 통하는 사람들의 모임에는 이렇듯 즐거움이 있다.
호계삼소虎溪三笑는 선화禪畵를 막론하고 붓을 든 이들이 즐겨 그리는 주제가 되었다. 청대淸代 화가인 고기패高其佩(1672~1734)가 그린 <호계삼소도虎溪三笑圖>는 개울가에 세 사람이 계곡에 떨어지는 폭포를 바라보고 있는 모습을 그렸다. 이들이 호계를 건너온 사실을 표현하고자 화면 아래에는 다리가 놓여 있다. 호계를 건너온 세 사람이 담소를 나누며 폭포를 바라보고 있다. 여산廬山은 특별히 여산폭포로 유명한데, 잘 알려진 이백의 ‘비류직하삼천척飛流直下三千尺’의 구절은 여산폭포의 장대함을 읊은 것이다. 한 화면에 여산폭포와 호계, 세 사람의 일사逸士에다 삼소三笑까지 차곡차곡 표현하였으니 그야말로 뷔페식 그림이다. 화가는 이 그림에서 혜원 화상의 너털웃음보다는 여산과 더불어 그 일화에 더 관심이 있어 보인다. 호계삼소의 등장인물이 어떠했든 문제는 개울을 건넌 무심함과 세 분의 웃음이 아닌가.
어릴 적 학교 다닐 때 짝꿍과 싸우고서 책상에 금을 그어놓은 기억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책상 위에 금을 긋듯 우리는 보이는 곳에나 안 보이는 곳에나 수많은 금을 그어놓고 산다. 선을 긋는 순간 이것과 저것이 생기고, 내 것과 네 것이 구분된다. 그러나 이 천지天地가 금을 그어 나눴다는 말은 일찍이 들어본 적도 없거니와 하늘에 떠 있는 저 해와 달도 사람들이 그어놓은 금과 상관없이 온 대지에 구별 않고 빛을 비춘다. 그것으로 제 살림을 만들거나 못 만들거나 그것은 이 땅에 사는 중생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