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호 보기


안행

다음 게시물
산설세설 - 성전 2004년 09월 271호
누구에게나 처음이 있다. 그리고 처음 그때는 누구나 어렵다. 처음 해인사 강원을 갔을 때 나는 평상시처럼 고개를 들고 상반 스님의 질문에 대답했다. 그러자 바로 저쪽에 앉은 스님으로부터 한 소리가 날아왔다. ‘눈 깔아요.’ 나는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했다. 그것이 나에게 하는 말인지 알지 못했다. 그러자 다시 그 목소리가 날아와 나를 쏘았다. ‘눈 깔라니까.’ 나는 비로소 알아들었다. 그 소리가 내게 한 것이라는 것을. 나는 엉겁결에 눈을 내리깔았다. 눈을 내리까는 것,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해인사 강원 생활의 시작이라는 것을 나는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해인사 강원의 하반 생활은 눈을 내리까는 것이다. 눈을 치뜨거나 두리번거려서도 안 된다. 그것은 걸을 때도 역시 마찬가지다. 만약 두리번거리다 걸릴 때면 법당에 가서 보통 삼천 배 참회를 해야만 한다. 그래서 해인사 강원에 가면 누구나 알 수 있다. 그 스님들이 상반인지 하반인지를. 만약 어떤 스님이 눈을 제대로 뜨고 다니면 그는 분명 상반 스님일 테고 만약 눈을 아래로 깔고 다닌다면 그는 틀림없이 하반 스님일 것이다. 눈높이가 바로 상하반의 구분이 되었던 것이다.
하반시절은 제약이 많다. 강의를 들으러 갈 때도 저녁에 논강을 하러 갈 때도 그리고 공양을 하러 갈 때도 줄을 서서 가야만 한다. 손을 흔들거나 잡담을 해서도 안 된다. 그리고 사방을 두리번거려서도 안 된다. 두 손은 포개어 단전에 놓고 눈은 땅을 보고 입은 굳게 다문 채 걸어가야만 한다. 이것을 우리는 안행이라고 불렀다. 그 모양이 마치 가을 밤하늘을 나는 기러기의 모양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러나 기러기의 비행에는 자유가 있어 보였지만 우리들의 안행에는 자유가 없었다. 그것은 기러기의 안행을 닮은 서글픈 보행이었다.
내가 상반이 되어 하반 스님들의 안행 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을 때 안행이 참 좋아 보였다. 그것은 초심자의 마음가짐의 표현이었다. 손을 흔들지 않듯이 마음을 고요히 하고 두리번거리지 않듯이 마음을 집중해야만 한다는 마음의 훈련이었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마음의 여유가 비로소 그 의미를 보게 한 것이다.
해인사 강원은 순경계보다는 역경계가 많았던 것이다. 그래서 해인사 강원을 나오게 되면 누구에게나 하심을 잘 하게 된다. 상이 떨어지는 것이다. 공부는 역경계에서 더욱더 크게 이루어진다는 것을 해인사 강원은 증명하고 있다. 그때 눈 한번 제대로 떠보지 못한 세월과 걸음 한번 맘껏 걸어보지 못한 시간들이 내 수행의 길에 커다란 거름이 되어 나를 키우고 있다는 것을 나는 깨닫고 있다.
지금 혹시 누군가 아직도 안행을 서글픈 보행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대답할 것이다. 그리고 다시 이렇게 말하고 싶다. 그 서글픈 보행이 있었기에 지금 나는 자유롭게 비상하고 있다고. 그 시절, 눈도 제대로 못 뜨고 안행 하던 그 시절을 참고 견디기를 썩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