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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과유科儒의 가야산 유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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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류동천 - 김홍영 2004년 08월 270호
지금으로부터 약 230년 전인 1773년 가을에 거창에서 경상 우도에서 행하는 향시鄕試가 있었다. 이때에 경상 좌우도에서 이 향시에 응시하고자 하는 과유科儒들은 각자 자기 출신지역에서 거창을 향해 모여들었는데, 설파雪坡 손성악孫星岳(1741~1813)도 그 과유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설파는 거창으로 향시를 보러 가던 중 무릉교를 지나 홍류동으로 들어가 해인사를 유람하고, 향시를 본 후에 다시 해인사에 들러 유숙하고 집으로 돌아간 일이 있다.
설파는 30년이 지난 1804년 봄, 옛 유람의 기억을 되살려 <가야산유록伽倻山遊錄>이라는 제목으로 한 편의 기행문을 남겼는데, 이 글에서 무릉교, 홍류동의 최고운 제시석題詩石, 홍류동을 따라 올라가면서 석벽에 새겨진 달관達官의 성명, 취적봉, 홍하문, 학사대, 치원암, 대웅전, 판전板殿, 명나라 장군 이여송의 삿갓 등 가야산의 고적古跡과 일사逸事를 다양하게 소개하였다.
설파는 홍류동을 지나면서 석벽에 굵게 새겨진 달관의 성명에 붉고 푸른 색으로 칠을 넣은 것을 보고, 그 그림자가 시냇물에 비쳐 붉은 빛이 떠내려가기에 이 골의 이름을 또한 ‘홍류’라 할 만하다는 해석을 내리기도 하였다. 해인사의 외문인 홍하문에 이르러서는 문에 걸려 있는 갈천葛川 임훈林薰(1500~1584)의 시 한 편을 소개했는데, 물론 이 시판詩板은 현재 홍하문에 보이지 않는다. 경내로 들어와서는 학사대 곁의 치원암致遠菴을 둘러보았는데, 이곳에는 최고운의 영정이 걸렸고, 그 영정에는

무협중봉지세 巫峽重峯之歲 무협의 열두 봉우리 나이에
사입중원 絲入中原 베옷 입고 중원에 들어갔다가
은하열수지년 銀河列宿之年 은하 28수의 해에
금환동토 錦還東土 비단옷 입고 동토로 돌아왔네

라는 구절이 적혔다고 했다. 이는 최고운이 12세에 당나라에 갔다가 28세에 신라로 돌아온 것을 말하는데, 최고운이 그의 저서 《계원필경집桂苑筆耕集》의 서문에서 술회한 글이다. 이 밖에도 대웅전과 판전의 규모, 대장경판에 얽힌 고사, 그리고 향시를 마친 후 원근의 과유들이 일시에 해인사에 모여들어 분주한 절의 분위기, 홍하문 밖에 일시적으로 길게 늘어선 저자의 모습 등을 재미있게 묘사하였다.
설파는 <가야산유록>을 적고 나서 쓸모없는 글이라는 비난이 없지 않을 것이라는 겸양의 말로써 끝을 맺었다. 그러나 후일 《가야산지伽倻山誌》를 편찬할 사람이 있다면, 그가 기록한 가야산의 고적과 일사는 결코 빠뜨릴 수 없는 쓸모있는 글임이 절로 입증될 것이다.□

*필자 주:본문에 언급한 <가야산유록>은 손성악의 시문집인 《설파집》 권3에 실려 있다. 28수는 하늘의 별자리를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