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쉽게 하는 이야기 중에 평상심이 곧 도라는 말이 있다. 조주가 남전에게 물었다. “어떤 것이 도道입니까?”
“평상심이 곧 도이다(平常心是道).”
조주가 다시 물었다. “무슨 뜻입니까?”
“분별하면 곧 어긋난다.”
“분별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도를 알겠습니까?”
“도는 앎에도 속하지 않고, 알지 못함에도 속하지 않는다. 앎은 잘못된 깨달음이요, 알지 못함은 이것도 저것도 아니다. 만약 참으로 분별하지 않는 도에 이르면, 오직 태허太虛와 같이 텅 비어 확 트일 것이니 어찌 옳고 그름을 따지겠는가?”
조주는 이 말을 듣고 크게 깨달았다.
평상심이 도라는 말만 보자면 범인凡人의 일상에서 평상시 마음이란 것이 그렇게 도에 가깝지만은 않다. 하루 스물네 시간을 지내면서 안이비설신眼耳鼻舌身에 휘둘리는 마음이 필경 백 중에 아흔아홉이 넘을 것이 일상이다. 서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고, 누우면 자고 싶은 사람의 상정常情을 두고 평상심이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도란 것은 무릇 사람의 마음 속의 일이 아니오, 본디 천지天地에 두고 있는 일이라 그러한 것이다.
양해梁楷는 화원이었으나 궁중에 오래 머물지 않았고 주로 영은사靈隱寺에 머물면서 선화에 심취하던 선승禪僧이었다. 선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와 불교 내면의 사정을 그림으로 풀어내었으니 말로써 다 이를 수 없는 경지가 그림으로 이루어졌다.
양해가 몇 번의 붓질로 이백의 마음을 그려내니 시간을 뛰어넘어 그의 자유로운 시어詩語가 한 줄의 말도 필요 없이 되살아나는 듯하다.
<이백행음도李白行吟圖>는 절제하되 그 정신을 충분히 드러낸다는 안목에서 아름다운 그림이다. 화폭 속에 당대唐代의 시선詩仙은 화선畵仙이 허락한 최소한의 붓질과 금金보다도 더 아낀 먹만으로 보는 이와 하나가 될 수 있으니 여백餘白이 담고 있는 바는 화면 전체를 채우고도 남음이 있다고 하겠다.
가는 붓으로 그려낸 먼 곳을 응시하는 작은 눈과 그리고 시를 읊는 듯한 입 모양으로 이미 그림 안에는 그가 벗했던 달빛과 잘 익은 술 향기가 가득하다. 시인의 그림자도 없고, 달빛도 없건만 이미 한편의 시詩가 그 안에 담겨 있는 것이다. 그림 속 시인의 발걸음은 바람에 실린 듯 유유히 소요逍遙하되 옷자락은 단정하며 흐트러지지 않았다. 화가의 필력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백(李白:701~762)은 당나라 때의 시인이다. 그가 시로 읊은 것은 미인美人의 용태容態만이 아니며 술과 달과 자연이 그의 벗이었다.
술잔 들어 달 맞이하니 擧盃邀明月
달과 나와 그림자 셋이어라. 對影成三人
달은 본래 술을 못하고 月旣不解飮
그림자는 한갓 내 곁을 떠돌 뿐 影徒隨我身
한동안 달과 그림자 벗해 暫伴月將影
행락은 모름지기 봄에 맞추었다. 行樂須及春
내가 노래하니 달은 그 사이를 거닐고 我歌月徘徊
춤을 추면 그림자 함께 어지러워 我舞影凌亂
깨어서는 함께 즐겁고 醒時同交歡
취하니 제각각 흩어지리. 醉後各分散
영원히 무정들과 노닐다가 永結無情遊
아득한 저 은하에서 다시 만나길. 相期邈雲漢
-이백 <월하독작月下獨酌> 중에서-
산을 오르다보면 바람소리, 물소리에 취해 산을 오르던 일도 잊고 주저앉아 버리기도 하거니와, 맑은 물에 탁족濯足하는 재미에 내가 어디 있었던 것인지도 잊는 것이 우리 일상이다. 시인詩人도 마찬가지로 하늘의 달을 빌어 술을 마시며, 술을 빌어 그 달을 잔에 담고자 하였으니 이 또한 산은 잊고, 바람소리에 취한 격이다.
이 천지의 평상심이란 어떠한 것인가.
세상 만물이 그러하듯 지극한 선禪의 자리는 쉼이 없다. 그러니 필부필부匹夫匹婦의 평상심을 찾다가는 산을 가던 것도 잊고, 길도 잊으며 산 그림자가 산이라 생각하고, 달을 가리키던 손가락을 보고 달로 여길 법한 일이다. 산은 늘 거기 산대로 있으며 달은 하늘에 달대로 있으니 어찌 산과 달이 나를 위해 있다고 할 것인가. 다만 산과 달을 나와 분별치 않아 그 중심에서 동기同氣로서 만나는 것이 이 천지天地가 지닌 공평무사公平無私의 평상심이라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수행이라 시작한 그 마음도 이와 같은 소요逍遙가 되어버려 앞으로 나가기를 멈추고 주변에 취해 있지는 않는지 돌아보고 또 돌아볼 일이다. 시선詩仙은 계곡에서 멈췄으나 선승禪僧은 산등성이에서 그것을 바라본다. 수만의 말을 한 장의 그림에 담았으니 이 또한 불립문자不立文字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