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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그문트 프로이드(Sigmund Freud)와 종교심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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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이뭐꼬 - 법진 / 해인강원 강사 2004년 08월 270호
토템과 타부(Totem and Taboo)
1913년에 출간된 《토템과 타부, Totem and Taboo》는 프로이드가 원시인들의 심리 분석을 시도한 것이다. 개인적으로 진화론에 대해 깊은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심리분석의 대상으로 원시인들을 우선 선택하였다. 다시 말해서 프로이드는 현대인들의 신체, 지성, 인격 등이 원시인들의 그것들로부터 단선적으로 진화해 온 결과라고 믿었던 것이다. 따라서 복잡한 현대 문명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초기 단계의 문명을 이해할 필요가 있었다. 여기에서 말하는 인류의 초기 문명은 문명화된 그리스나 로마시대는 물론 동물 조상으로부터 진화하기 시작한 선사시대의 인간과 그들의 문화까지 포함하는 포괄적인 것이었다.
프로이드도 앞서 살펴본 바 있는 타일러나 프레이저 등 초기 인류학자들과 마찬가지로 인류 초기문명의 핵심적인 요소들이 동물 토템(Totem)과 타부(Taboo) 관습에 잘 반영되어 있다고 믿었다. 씨족 내지 부족사회의 원시인들은 특정 동물이 그들의 삶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성스러운‘토템’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원시인들은 일상적인 삶의 원칙에서 금기시된 특정한 인물이나 사물을 ‘타부’로 삼기도 하였다. 그렇다면 왜 원시인들은 이와 같은 토템이나 타부를 만들어 자신들을 스스로 속박하였을까?
이에 대한 프로이드의 답은 인간이 무의식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그가 건강하든 정신병을 앓고 있든 간에 심리적으로 이성적인 면과 무의식적인 면을 동시에 갖고 있다. 예를 들어, 인간이 어떤 특정한 일을 도모할 때에 동시에 그것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강박관념에 시달리는 정신병적인 사람들도 그들이 사랑하는 사람이나 부모가 돌아가면 심한 슬픔을 느낀다. 그러나 그들의 무의식의 세계를 면밀히 들여다보면, 건강한 사람들과는 달리 그들의 슬픈 감정은 사랑이 아니라 죄의식이나 미워함에서 비롯된 것이다. 정신병 환자가 무의식적으로 그들의 부모가 돌아가기를 바라고 있다가, 일단 그들의 부모가 돌아가고 나면 자신들이 그와 같이 잘못된 바램을 가지고 있었다는 심한 죄의식을 느낀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스트레스를 극복하기 위하여, 정신병적인 사람들은 죽은 이들의 영혼이 부정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원시문화 가운데 토테미즘과 타부는 인간의 이와 같은 심리적인 불안감을 잘 반영하고 있다. 다윈의 진화론처럼 만일 인류가 원숭이에서 진화했다고 한다면, 최초의 인간들은 그들의 동물 조상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강한 한 남성 아래 다수의 여성들과 아이들이 집단적으로 함께 어울려 살았을 것이다. 그리고 충성과 호의, 그리고 위험에 처했을 때의 안전문제 등을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공동체 질서 속에서, 어린 남성에게 강한 아버지는 늘 선망의 대상이었겠지만 동시에 늘 좌절감을 안겨다주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어린 남성들은 자신들의 아버지를 두려워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존경함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의 눈을 피해 집단 내의 모든 여성들을 자신의 성적 파트너로 만들고 싶다는 충동을 갖고 있었을 것이다. 젊은 남성들은 공동체 내에서 아버지로부터 자신들의 안전을 보장받아야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제한적인 성적 이중 구조 속에서 ‘원시살인’이라고 하는 운명적인 행위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시 말해서, 성적인 파트너를 확보하기 위하여 젊은 남성들은 힘을 합쳐 아버지의 권위에 대항해 반란을 일으켜서 그들의 강한 아버지를 죽이고, 급기야는 카니발을 열어 자기 아버지의 시체를 재물로 사용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최초의 원시살인은 인간에게 일정 정도의 만족감과 해방감을 가져다주었지만, 곧이어 큰 부담을 동시에 가져다주었다. 젊은이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행위에 대해 죄의식과 후회로 괴로워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자신들이 아버지를 죽였다고 하는 죄의식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하여 ‘아버지의 대체’또는 상징으로서 토템 동물을 발견한 것이다. 그들은 이 동물을 토템으로 숭배하기로 뜻을 모으고, 토템을 죽이지 않기로 맹세하였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러한 풍습은 전 씨족에 널리 퍼져 모든 살인에 대한 보편적인 율령으로 일반화되었다. 다시 말해서, ‘그대들은 토템을 죽이지 말지니라’는 최초의 도덕적인 규약을 만들게 된 것이다.
후회의 감정은 곧이어 제 2의 타부인 근친상간의 규약을 만들어냈다. 자신들의 행위를 후회하고 과부가 된 아버지의 아내를 생각해낸 순간 그들은 두 번째의 율령을 만들어 낸 것이다. ‘그대들은 아버지의 아내를 그대의 아내로 만들지 말라.’ 공동체 내에서 더불어 살기 위해서는, ‘씨족’ 밖에서 아내를 구해오지 않으면 안 되었다. 프로이드는 젊은 형제들 사이에 이루어진 선사시대의 공감대를 신화적인 ‘사회관계’ 이면에 놓여있는 실제적인 사건이라고 믿었다.
첫 번째 타부는 두 번째 타부보다 복잡한 형태로 나타난다. 어떤 경우에는 토템을 희생시킴으로써 새로운 신이 된 최초의 아버지의 살인을 상징적으로 재현하기도 한다. 이러한 의례를 통하여, 젊은 아들은 공공연히 아버지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표현하고 동시에 성적인 금욕으로 인해 생겨난 증오를 푸는 것이다.
현대적인 관점에서 보아, 기독교에서 밀떡과 포도주를 먹는 것은 원래 예수의 살과 피를 먹는 것의 상징으로 예수의 십자가 못박힘을 기억하는 상징이다. 예수가 신의 아들(가장 연장인 형제, 반역의 지도자)의 반역에 의해 죽었는데, 이는 최초의 반역인 ‘원죄’에 대한 처벌로 이해될 수 있다. 그리고 예수는 최초의 범죄를 속죄한다. 그러나 그 속죄도 또한 의례상의 재연에 불과하다. 기독교 신학에서 아버지와 아들은 하나이고, 아들의 죽음에 대한 서약은 상징적으로 아버지의 살인에 대한 서약이다. 그러므로 성찬식에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 의한 증오와 사랑을 동시에 기억하는 것이다.
프로이드는 오랜 기간을 두고 서서히 진행되어온 진화의 모든 내용이 초기 식인풍습에 대한 토템 의례로부터 기독교의 성찬식이 만들어지기까지 일어났던 종교적인 개념들 속에 포함되어 있다고 보았다. 즉, 토템 동물이 희귀해지자, 그것은 다른 동물로 대체되었고, 점차 하나의 토템을 믿는 전통으로부터 여러 토템을 믿는 다토템 전통으로 바뀌었고 그리고 마침내 기독교의 유일신으로 정착하는 과정에서 일체의 진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종교는 인간으로 하여금 최초의 엄청난 범죄 행위를 하게 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 기원을 두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그는 “토템적 종교는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한 무한한 죄의식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러한 감정을 누그러뜨리고 그에 대해 상징적으로 순종하는 것을 만들어 냈다. 이것이 종교의 기원이다”라고 결론 맺었다.
이렇듯 원시시대의 인간 집단 내에서 일어난 최초의 살인사건은 인류의 사회생활에 중대한 계기가 된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그리고 이 사건을 변명하고자 하는 수단으로 종교가 생겨난 것이다. 이런 점에서 토템과 타부는 소위 문명이라고 하는 모든 것의 기초가 되었다.

환상의 미래
기독교인들은 프로이드가 《토템과 타부》에서 제기한 종교의 기원에 관해 매우 격렬한 톤으로 비판했다. 이러한 기독교인들의 비판을 염두에 두고 프로이드는 《토템과 타부》를 출판한 지 14년 후에 종교를 현재적 관점에서 관찰한 <환상의 미래 The Future of an Illusion>를 다시 내놓았다. 《토템과 타부》가 원시시대를 시대적 배경으로 하여 종교의 기원을 이해하고자 했던 반면, 《환상의 미래》는 현대 모든 장소와 시간에 걸쳐 존재하고 있는 종교들을 폭넓게 검토하여 종교가 제기하고 있는 근본적인 동기가 무엇인가 그리고 그의 신에 대한 믿음이 어떤 것인가에 대해 적극적으로 답하고 있다.
《환상의 미래》도 《토템과 타부》와 마찬가지로 인간이 자연계로부터 진화해 왔다는 진화론의 주장을 당연한 사실로 받아들인다. 여기에서 말하는 진화는 자연이 인간을 만들어냈다는 단순한 사실뿐만 아니라, 그 자연이 육식동물이나 재앙, 질병 등을 동원하여 인간을 파괴하는 것까지도 포함하는 것이다. 이러한 자연의 행패에 맞서 인간은 때로 개인적인 욕망을 자제하고 때로 소위 문명을 일구어 냄으로써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렇지만, 인간의 본능은 어쩔 수 없었다. 실제로 화가 나면 폭력적이지 않을 수 없었고, 마음 속으로 희구하는 바를 온전히 그대로 얻을 수 없었고, 그리고 성적인 욕망을 맘껏 채울 수 없었다. 그래서 인간의 본능은 늘 억제되어야 했고, 대신 예술이나 여가의 즐거움이나 가족과 공동체 등의 연합을 통해 대리만족을 구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한편, 인간이 일구어 놓은 문명이 인간을 온전히 보호해 줄 수도 없었다. 질병과 죽음에 직면하여 인간은 속수무책이었다. 야만과 문화라고 하는 상반된 이중 구조 속에서 쇠퇴와 죽음이라고 하는 자연의 법칙을 극복하는 길은 요원할 뿐이었다.
프로이드에 따르면, 어떤 인간도 자연의 법칙이 몰고 오는 불행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자연적인 불행을 어린 시절의 소꿉장난 정도로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아버지는 불행을 막아주는 주체였다. 그렇지만, 아버지가 자연의 재앙으로부터 가족을 온전히 지켜주지 못하게 되자, 안전을 보장받기 위해 외부세계 즉 신에게로 그들의 관심을 돌리기에 이르렀다. 신은 자연의 위협으로부터 인간을 보호할 수 있고 죽음에 직면한 인간에게 안락을 줄 수 있다는 그리고 타부로부터 시작된 여러 가지 도덕률을 아무런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게 했다. 종교는 인간 개인에 대해 강력하고 냉혹한 자연의 힘 앞에 더 이상 괴로워하지 않아도 될 만한 자비로운 신의 섭리를 선사해 준 것이다. 종교적 신념만 가지고 있으면, 설사 죽게 되더라도, 불멸의 영혼이 우리의 몸으로부터 벗어나 신과 함께 살 것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욕망을 억제한다는 것은 언제나 공정하고 바른 입장에 서 있는 신의 법칙을 따르는 것이었다.
‘환상’은 이러한 믿음을 가장 적절하게 대변해 주는 말이다. 프로이드에게 있어서, ‘환상’은 언제나 참이기를 가정하는 믿음의 일종이었다. ‘환상’은 ‘망상’ 또는 ‘미망’과 다른 것이다. 만약 내 키가 언젠가 2.4m가 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면 이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망상 또는 미망이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프로이드는 신에 대한 믿음을 두고 창시자에 대한 망상 또는 미망이라고 폄하하지는 않았다. 단지 종교적인 이념의 참가치를 현재의 시점에서 찾지 않고, 과거에 형성된 잠재의식 속의 환상이 심리적인 본성으로 작용하여 인간으로 하여금 종교를 믿게 한다고 생각했다.
종교적인 가르침은 신에 의해 밝혀진 진리거나 과학적으로 검증된 증거에 입각한 논리적인 결론이 아니다. 반대로 종교는 인간이 참이기를 갈망하는 노력의 산물이었고 그리고 자연의 횡포 앞에 선 인간의 가장 절박한 희망의 표현이었다. 따라서 종교가 얼마나 강한 메시지를 갖고 있는가는 그것이 얼마나 절박한 희망에서 나온 것이었는가에 비례한다.
프로이드가 보기에, 종교적인 믿음의 궁극에는 항상 ‘미망’이 있기 때문에, ‘환상’과 ‘미망’ 사이의 차이점을 발견할 수 없었다. 종교는 과학적인 방법으로 진위 여부를 판단할 수 없다. 대신 종교는 개인적인 직관이나 감정으로 표현된 습관이었다. 따라서 종교는 문명에 대한 일종의 저항 행위였다. 초기의 토템이 살인이나 근친상간 등에 대해 윤리적인 기준을 제공했다고 한다면, 후대의 종교는 이와 유사한 범죄행위에 대해 지옥이라는 개념을 통해 보다 강한 윤리적 경각심을 가져다주었다. 이러한 논리를 가진 프로이드는 현재와 같이 이미 문명이 수립된 상태라면 더 이상 미신에 따를 필요가 없고 이를 후대의 자녀들에게 물려줄 필요도 없다고 믿었다.
결론적으로 프로이드는 종교를 인간에 대한 강박관념적 노이로제의 산물이라고 믿었다. 어린아이의 강박관념적 노이로제와 마찬가지로, 종교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로부터 그리고 아버지와의 관계로부터 생겨났던 것이다. 그렇지만, 이제는 이성적인 지식이 많이 축적되어 있으므로 논리적인 지식이 노이로제 억압의 효과를 대체할 수 있게 되었다. 진화의 과정에서 인류가 문화를 성숙시켜온 것에 걸맞게 종교도 새로운 사상의 형태로 대체되어야 했다. 그리고 그것은 환상에 기초를 둔 미신이나 신앙이 아니라 이성과 과학을 토대로 한 것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