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자는 어린이를 수술하는 소아외과 의사이다.
지금부터 13~4년 전 치료를 하였던 어린이가 지금도 기억에 남아 있다.
여섯 살쯤 되는 남자 아이가 왼쪽 발등에 입은 화상 때문에 병원에 왔다.
환아는 4주 전쯤 화상을 입어 자기 손바닥만큼 큰 상처를 가지고 있었다.
대개 뜨거운 물로 인한 화상은 특별히 세균감염이 발생하지 않는 한
열흘쯤 되면 대개 상피세포들이 증식하여 상처가 아물게 되는데
이 환아는 4주가 지나서도 상처가 낫지 않아
피부이식이 필요하다고 생각되어 환아의 어머니에게 피부이식을 권하였다.
충북 음성에서 온 환아의 어머니는 다른 병원에서도 수술을 하자고 하였는데
자기는 수술을 하지 않고 치료하였으면 좋겠다고 강하게 주장하였다.
그렇다면 집도 멀고 하니 입원하여 치료를 하면 좋겠다고 하였는데
한사코 통원 치료를 하겠다고 하여
환아의 어머니의 강한 의지에 따라 환아를 치료하게 되었다.
이 환아가 병원에 오게 되면
진찰실 안에서도 그 환아가 온 것을 금방 알 만큼 크게 울었다.
치료실에 들어와서도 크게 울면서 발버둥을 쳐서 치료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았다.
제법 큰 아이이니 집에서는 울지 않고 치료를 받겠다고
단단히 약속을 하고 오는 모양이지만
병원에만 도착하면 울기 시작하니 어머니로서도 난감하였을 것이다.
한번은 치료실에서 어머니가 환아를 나무라면서 때리기까지 하여
이 문제로 아이를 절대 때리지 말라고 하면서 치료실에서뿐만 아니고
집에서도 아이를 때리거나 혼내지 말라고 당부하였었다.
환아의 치료는 전혀 아프지 않은 간단한 조치이었으나
무서운 마음이 제일 큰 문제인 것으로 생각되었다.
어머니로 하여금 혼내는 일을 그만두고
아이에게 되도록 상황 설명을 많이 하여 주라고 이야기하면서
필자는 치료과정이 절대 아프지 않다는 설명을 되풀이하여 환아와의 신뢰를 쌓아갔다.
서너 번 만나고 난 다음부터 환아의 태도에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진찰실 밖에서부터 울던 아이가 진찰실에 들어오면 울기 시작하더니
다음에는 진찰실에 들어와서도 울지 않았다.
치료를 시작하면 울고 발버둥치던 아이가
울기는 하지만 발버둥치지 않게 되었고 그 다음에는 울지도 않게 되었다.
울기에 바빴던 아이가 만나면 미소를 짓게 되고 인사말까지 할 정도로 변하였다.
말을 하기 시작하여 알게 되었는데 말을 더듬는 습관도 가지고 있음을 알았다.
이때부터 어머니보고 집에서도 절대 야단치지 말라고 부탁을 하였고
환아 어머니의 아이 대하는 태도도 바뀌어 갔다.
처음에 전혀 변화가 없었던 상처에 아이의 태도가 바뀜에 따라
조금씩 변화가 생기기 시작하여
그 크기가 줄어들더니 “선생님, 안녕 하세요”라고 인사하고
치료받은 다음 “선생님 안녕히 계세요”라는 인사를 할 때쯤 되어 완전히 낫게 되었다.
한 2개월쯤 걸렸던 치료로 기억된다.
한번 상처가 생기면 잘 낫지 않기로
유명한 발등의 화상이 필자의 예상을 뒤엎고
이식수술을 않고 깨끗이 낫게 된 것이다.
환자 어머니의 고집스런 주장에 밀려 치료하게 되었지만
필자로서는 아주 귀중한 경험을 하게 된 것이다.
이 경험을 통해 필자는 혼자 있는 시간이면 생각해 보곤한다.
분명 몸에 생긴 병으로 인해 마음에도 함께 병이 온다는 평범한 진리에 대하여.
그리고 어머니의 고집스런 주장에 피부이식 없이 상처가 나아지긴 했지만
환아와 필자와의 신뢰감에서 오는 변화가 아이의 상처를 빨리 아물게 하진 않았을까…
병원 문을 두드리고 의사를 찾는 사람이라면 어린 아이가 울면서 발버둥처서까지
자신의 공포나 불안감을 대신하듯 어른이라고 해서 그 두려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처음 병원을 찾을 때의 마음보다
두 번째 찾을 때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안정이 되게 하는 것 역시
필자가 환자를 돌보면서 치료해야 할 또 다른 부분이 아닌가 한다.
사실 13~4년 전의 치료경험이 이토록 오래 기억에 남는 것은
사람의 몸에 생긴 질환을 수술하여 치료하는 외과의사로서
어디까지가 마음(정신)이고 어디까지가 몸(육체)인지 잘 모르게 된 까닭이다.
병을 낫게 하기 위하여, 병에 걸리지 않게 하기 위하여,
우리가 어떤 마음을 가져야 되는지 알려주는 교훈적인 임상체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