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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은 배로 가고 저 사람은 걸어갔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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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하고 청정한 수행을 위한 법문 - 조계종정 해인총림 방장 법전 스 2004년 08월 270호
차심산무로此深山無路어늘
납자향심처래衲子向甚處來오
여등불운수汝等不雲水거늘
밀밀좌도량密密坐道場이로다
이 깊은 산에는 길이 없거늘
납자들은 어디로 왔는가
그대들은 구름도 물도 아닌데
빽빽하게 도량 안에 앉아 있구나.

법안문익法眼文益 선사께서 각 상좌覺上座에게 물었습니다.
“이곳에 배로 왔는가? 육지로 왔는가?”
각 상좌가 말했습니다.
“배로 왔습니다.”
“배는 어디에 있는가?”
“배는 강에 있습니다.”
그러자 법안 스님은 곁에 있던 납자에게 물었습니다.
“그대는 말해보라. 각 상좌가 제대로 안목을 갖추었느냐? 갖추지 못했느냐?”

극락암의 경봉 노사는 찾아오는 사람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극락에는 길이 없는데 어떻게 왔는가?”
답하는 사람마다 대답이 천차만별이었고
노사는 그 답변을 통하여 상대방의 공부근기를 헤아렸던 것입니다.
효봉 노사가 엿장수차림으로 금강산의 석두 큰스님을 처음 친견했을 때도 그랬습니다.
“어떻게 왔느냐?”
“이렇게 왔습니다”라고 하면서
방 안을 한바퀴 빙 돌았습니다.
이에 단박에 석두 스님은 엿장수가 법기法器임을 알아보고 출가토록 했던 일은
너무나도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이런 ‘길 법문’은 당나라 때 나한계침羅漢桂琛의 법을 이은
법안종의 개조인 법안문익 선사뿐만 아니라 낭야혜각, 동산수초洞山守初,
그리고 송나라 때 간화선의 완성자 대혜종고 선사도 하신 법문이기도 합니다.

서주舒州의 해회제거海會濟擧 선사가 법을 얻은 뒤 어느 날 낭야혜각 선사에게 갔습니다.
혜각 선사가 물었습니다.
“수좌는 지금 어디서 오는 길인가?”
“절강浙江에서 옵니다.”
“배로 왔는가? 육지로 왔는가?”
“배로 왔습니다.”
“배는 어디에 있는가?”
“강에 있습니다.”
“길을 거치지 않는 한 구절은
어떻게 이르려고 하는가?”
“억지를 쓰는 두찬 장로가 삼대같이 좁쌀같이 많구나.”
그리고는 쏜살같이 도망치듯 사라졌습니다.

동산수초洞山守初 화상이 어떤 납자에게 물었습니다.
“어디서 왔는가?”
“여주汝州에서 왔습니다.”
“여기서 얼마나 되는가?”
“칠백 리입니다.”
“짚신을 몇 켤레나 떨어지게 했는가?”
“세 켤레입니다.”
“어디서 돈이 생겨 샀는가?”
“삿갓을 팔았습니다.”
그러자 동산이 말했습니다.
“선당禪堂에 들어가서 더 참구하라.”

초당선청草堂善淸 스님이 임천臨川에서 우연히 대혜종고 스님을 만났습니다.
한자창韓子蒼이 스님을 초청하여 그의 집에 머물게 하면서 물었습니다.
“선청 스님이 어떻습니까?”
“얼마 전에 들으니 방 거사가 마조 대사에게 물었던
‘불여만법위려자不與萬法爲侶者 즉 만법과 짝하지 않는 이’라는 인연에 대하여
‘어룡하해향심처착魚龍蝦蟹向甚處着 즉 어룡과 새우를 어디에서 찾으리’라고 하였소.
만일 이와 같다면 그의 명성은 헛되이 얻은 것이오.”
한자창이 이 말을 초당 선사에게 알려주자 초당 선사가 말했습니다.
“그대가 그대에게 전해주시오.
비유하면 한 사람은 배로 가고, 한 사람은 육지로 갔는데 두 사람 모두 목적지에 이르렀다고.”
대혜 스님은 이 말을 듣고서 초당이 도를 얻었다고 인정하였던 것입니다.

법안 선사께서 각 상좌에게 ‘배로 왔느냐 걸어서 왔느냐’고 하니 각 상좌는 ‘배로 왔다’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법안 선사는 다시 ‘배가 어디에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이 부분에 이르면, 백 명에 아흔아홉 명은 기개를 드러내어 무엇인가를 보이려고 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각 상좌는 차분하게 안정된 사람인지라
거기서 한바탕 싸움을 벌일 각오로 “배는 강에 있습니다”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자주磁州 노스님은 이 대답을 두고서 “마치 모래판에다가 발이 여덟 개 달린 냄비를 갖다놓은 것 같아
조그만치도 흔들림이 없다”라고 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각 상좌가 나가버리자 다시 곁에 있는 납자에게 묻기를
‘그대는 일러보라. 조금 전의 그놈이 안목을 갖추었더냐? 갖추지 못했더냐?’ 하였습니다.
사실은 여기에 질문의 핵심이 있습니다.
만일 각 상좌가 ‘안목을 갖추었다’고 한다면 어떤 기특하고 현묘한 도리가 있으며,
만약 ‘안목을 갖추지 못했다’고 한다면 무슨 낭패를 당하겠습니까?
잘 한번 참구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산승이 마지막으로 한마디 덧붙이고자 합니다.
반결제까지 총림의 결제대중은 결제 후 반살림인 오늘까지 어떻게 걸어왔습니까?
법안 선사께서 물으신 안목을 갖추었는지 갖추지 못했는지 스스로를 한번 점검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수불세수水不洗水하고
금불단금金不鍛金이로다
매모색이득마昧毛色而得馬하고
미사현이낙금靡絲絃而樂琴이라.
물로는 물을 씻지 못하고
금으로는 금을 단련하지 못한다.
털빛을 잊을 때 준마를 얻고
실도 줄도 없을 때 거문고를 즐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