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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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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설세설 - 성전 2004년 08월 270호
하늘을 향해 길게 키를 세우고 있는 낙엽송 밑을 걸으면 기분이 상쾌해 진다. 한 번의 뒤틀림 없이 그토록 곧게 자랄 수 있는 성정이 무척이나 고결해 보이기 때문이다. 바람이 뒤흔들어도 곧아야 한다는 자신의 원칙을 지킨 나무의 순결한 정신이 가슴에 와 닿는다.
이렇게 곧은 나무 밑을 걸으면 나의 스승이 떠오른다. 그는 내가 만난 많은 사람 중에서 가장 원칙에 충실했던 분이었다. 하루 한 끼의 식사와 장좌불와 그리고 결코 앉아서 절을 받지 않던 모습들은 그가 얼마나 자신의 삶의 원칙에 철저했는가를 말해 주고 있다.
스승은 언제나 말했다. 계율은 우주 생명의 질서라고. 그리고 계행을 파하기가 지키기보다 어렵다고 했다. 그는 이미 계체를 이룬 것이다. 미워하기가 사랑하기보다 어렵고 남의 아픔이 자신의 아픔보다 견디기 어려운 몸이 된 것이다. 나는 스승이 계율에 대해서 말할 때 그 참다운 의미를 알지 못했다. 그러나 스승 곁에서 생활하면서 스승이 왜 그토록 계행을 우리에게 역설하셨는지 그의 행위를 유심히 보면서 나는 비로소 알 수 있었다.
스승은 대중과 한 절에 사셨지만 그는 대중과 좀 떨어진 곳에 자신의 처소를 따로 마련해 거처하셨다. 우리는 그것을 토굴이라 불렀다. 그만큼 그가 머무는 처소는 소박했던 것이다. 스레트 지붕과 시멘트로 발라진 그의 처소는 언제나 정갈한 기운이 감돌았다. 행자 시절 나는 하루 한 번씩 그의 토굴에 올라가 불을 떼는 소임을 맡았다. 하지만 내가 할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올라가보면 아궁이에는 불이 알맞게 타고 있었고 주변은 언제나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쌓아놓은 장작 역시도 하나도 흐트러짐이 없었다. 스승은 결코 누구에게 자신의 일을 시키는 법이 없었다. 그것은 수행자로서 엄격함을 스스로 지켜가려는 의지이기도 했지만 그것은 또한 자비심의 표현이기도 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스승은 노구에도 불구하고 빨래까지도 손수 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으셨다.
스님의 토굴에는 참 많은 사람이 다녀갔다. 스승은 누구의 절도 그냥 받지 않으셨다. 함께 절을 하기도 하셨고 또는 무릎을 꿇고 앉아 합장을 한 채로 받고는 하셨다. 큰스님으로서의 위엄을 찾아 볼 수 없었다. 차라리 그에게는 초심자의 겸손함 같은 것이 엿보였다. 나는 스님에게 여쭈어 보았다. “스님은 왜 다른 큰스님들처럼 그렇게 가만히 앉아서 절을 받지 않으신지요.” 스님이 내게 말씀하셨다. “수행자에게 겸손을 빼면 무엇이 남겠는가.” 스님은 더 말씀이 없으셨다.
생각해 보면 스승의 겸손과 자비는 결코 우연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일생을 두고 계율의 정신을 실천해온 수행자의 당연한 모습이었다. 그런 스승 옆에서 나는 많이 변하고자 노력했다. 그러나 변화는 마음과 같이 찾아오지 않았다. 스승을 쉽게 닮을 수는 없었지만 스승과의 만남이 내게는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승과의 만남은 내 일생의 과제가 되어 나를 일깨워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