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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산 진면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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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류동천 - 김홍영 2004년 06월 268호
산의 진면목眞面目을 보려거든 그 산 밖에서 산을 보아야 한다. 이러한 이치는 일찍이 중국 송나라의 대문호 소동파蘇東坡가 말한 바 있다. 동파는 <서림사 벽에 적다[題西林壁]>라는 시에서 원근 고저에 따라 각기 다른 여산廬山의 참모습을 알지 못하는 까닭이 다만 자신이 이 산 안에 있기 때문이라[不識廬山眞面目 只緣身在此山中]고 하여 사물의 본질을 제대로 인식하는 방법에 관한 일종의 철리哲理를 설파했다.
가야산의 진면목을 아는 것도 결코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다음에 소개하는 한 편의 시는 가야산에 노닐면서 능히 가야산의 진면목을 핍진하게 그려냈다고 할 만하다.

오형공제최가산鰲兄公弟最伽山 금오산 팔공산보다 가야산 가장 높으니
중유홍류유월한中有紅流六月寒 이 가운데 홍류동 유월에도 한기 감도네
법계삼천용저리法界三千容這裏 삼천의 법계 이 안에 들어 있고
선경팔만역기간禪經八萬亦其間 팔만의 선경 또한 그 사이에 있네
구승노목동년수僧老木同年壽 여윈 노승 늙은 나무 함께 세월 깊었고
건학초균임성한蹇鶴超任性閒 날개 접은 학 뛰는 노루 본성대로 한가롭네
계원선생하적지桂苑先生遐跡地 고운 선생 아득한 옛적 자취 남긴 곳
화선대흘백운환化仙臺屹白雲還 학사대 높은 터에 흰 구름 돌아오네

이 시는 근세의 한학자이자 교육가인 연단실鍊丹室 김주덕金周(1899~1969)의 작품이다.
때는 유월, 한여름 더운 날이었지만 홍류동은 골이 얼마나 깊던지 찬 기운이 느껴졌다. 이곳에는 법보종찰 해인사가 있음으로 인하여 홍류동천 그 자체가 곧 법계法界인 것이다. 도력이 높은 여윈 노승과 오랜 나무는 함께 이 산을 지키고, 산중의 학과 노루는 타고난 본성대로 한가롭게 노닌다. 또 가야산을 말할 때 《계원필경桂苑筆耕》을 지은 고운 최치원 선생을 빼놓고 말하기는 어렵다. 더구나 한학자인 연단실에 있어서는 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이 시에서 말한 홍류동, 법계, 팔만대장경, 여윈 노승과 늙은 나무, 날개 접은 학과 뛰는 노루, 고운 선생의 자취와 학사대의 흰 구름 이 정도이면 가야산의 진면목이 여실如實하지 않은가.
소동파의 여산은 산 밖에 있어야 비로소 진면목을 알 수 있으나 연단실의 가야산은 우리가 비록 산중에 있더라도 그의 시를 통하여 진면목을 볼 수 있다. 장차 염천炎天이 시작되는 유월 홍류동 안에서 잠시나마 더위를 잊고 이 한 편의 시를 음미하며 가야산 진면목을 생각해보자.□

*필자 주:본문에 인용한 시는 《연단실문집》 권1에 <유가야산遊伽倻山>이라는 제목으로 실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