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부漁夫라는 글은 초楚의 굴원屈原이 지은 글이다.
굴원이 내쫓기어 강상江湘에 머무를 때 일이다. 이때 한 어부가 세상을 피해 몸을 숨기고 강가에서 물고기를 낚으면서 스스로 즐기고 있다가 굴원을 천택川澤 근처에서 만났다. 굴원의 모습을 본 그는 괴상히 여겨 까닭을 묻고 문답을 했는데 이를 초나라 사람들이 굴원을 생각하여 글로 지어 세상에 전했다.
어부가 묻기를, “그대는 삼려대부三閭大夫가 아닌가? 당신과 같이 고귀한 분이 어찌 여기까지 왔는가?”
굴원은 비탄에 차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세상이 모두 흐린데, 나는 홀로 맑고, 뭇 사람들은 모두 취했건만 나는 홀로 깨어 있으니 그래서 쫓겨난 것이오.”
어부가 이 말을 듣고서는 “성인聖人은 사물事物에 막히는 것이 없어 세상과 함께 옮겨가는 것이라. 세상과 함께 오가도 그 마음의 중심에는 변하는 바가 없는 것이로되 그대는 어찌하여 세상 사람이 모두 흐리거든 그 진흙에 흙탕물을 쳐서 그 물결을 높이 올리지 않는가? 모든 사람들이 이욕에 취해 있거든 어찌하여 그대도 술지게미를 씹고 그 바닥의 술을 마시지 않겠는가? 어찌하여 깊이 생각만 하고 높이 서 있기를 자처하여 그 몸이 내쫓기게 했단 말인가?”
굴원은 이에 다음과 같이 답하였다.
“새로 머리를 감은 자는 반듯이 갓을 털어서 쓰고, 새로 몸을 씻은 자는 반드시 옷을 털어서 입는다고 했으니 어찌 이런 깨끗한 몸으로 더러운 물건과 함께 할 수 있으리오. 차라리 이 강물에 몸을 던져 물고기 뱃속에 들어갈지언정 세속의 티끌을 뒤집어 쓸 수 있겠는가?”
어부는 이 말을 듣고 빙그레 웃으며 돛대를 두드리고 가면서 노래하였다.
“창랑滄浪의 물이 맑으면 갓끈을 빨고, 창랑의 물이 흐리거든 내 발을 씻으리라(濯纓濯足)” 하고 홀연히 사라져 다시 굴원과 이야기하지 않았다.
간혹 창랑의 물을 운운하는 이야기는 바로 굴원의 이 글에서 전해진 것이다.
비록 성인聖人이나 도인이라도 이 몸이 천지간에 생겨난 것이니 어찌 시중市中을 잊고 살 수 있을 것이요, 진리를 찾는 사람의 마음은 그 물이 흐린 것과 맑은 것을 어찌 탓하고 가릴 것인가. 굴원은 비록 진흙탕 높은 물결을 탓하고 있으나, 이에 대해 어부는 맑은 물에서는 갓끈을 씻어 세상에 나아갈 것이고, 흐린 물에서는 발을 씻고 은둔하리라 하니 도를 향해 있는 눈으로는 물의 청탁淸濁을 나무라지 않는 것이다.
<어초문답도魚樵問答圖>는 어부사漁父辭로서 전하는 굴원과 어부의 문답을 그린 그림으로 원래 어부사의 뜻이 깊고, 많은 사람의 귀거래歸去來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였기에 수많은 작가들이 이 내용을 그림으로 옮겨왔다. 붓을 쥔 많은 사람들이 굴원이 노래한 어부를 동경하여 그를 소재로 한 여러 그림이 전해오고 있으나 이명욱李明郁의 이 그림만한 것을 일찍이 본 적이 없다.
화면 속 갈대를 배경으로 선 두 사람 사이 발걸음에는 빠른 속도감이 있으니, 어부는 필경 굴원과의 대화보다는 하루를 위한 낚시질이 더 급한 모양새이다. 창랑의 청탁淸濁을 탓하지는 않으나 그것을 가릴 수 있는 밝은 눈을 가진 어부의 마음은 평상의 도에 더 무게를 두고 있는 것이다. 하늘을 향해 뚫려 있는 초립草笠과 강건해 보이는 팔다리는 그의 생활에 대한 태도가 엿보이며, 굴원의 세상을 향한 투정을 마치 어린아이의 투정을 보듯 천연덕스런 눈길이다.
이 그림의 작가인 이명욱은 조선 숙종대의 화원畵員으로 숙종은 그의 재주를 극찬해 마지않기를 그 어디에도 견줄 데가 없는 신묘한 솜씨(妙手)를 가졌다고 하여 특별히 그 이름 석자를 쓴 도장을 각刻하여 내리기도 하였다.
이에 대해 후대사람인 강세황姜世晃은 이명욱의 그림에 속기俗氣가 있다고 평한 바 있으나 그림의 좋고 나쁨이 그 필치의 속기가 있고 없음으로만 평할 일은 아니다. 또한 붓질의 많고 적음과 먹의 윤택을 가려 선禪이니 속俗이니 가릴 수도 없다. 오직 그림이란 것은 그 뜻을 전하고 생각을 나누는 것을 그 본분으로 하는 것이므로 작가가 어부의 노래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면 이와같은 그림이 나올 수 있었을까.
달마 이래로 많은 조사祖師와 성현들이 세상을 멀리하고 초야에 있는 것은 다만 창랑의 물이 맑지 않음을 알아 이를 잠시 멀리하여 피해 있을 뿐이요, 그것을 탓하는 바를 듣지 못하였다. 성현은 그 마음을 닦아 곧 그 몸을 중생과 같이 하니 갓끈을 씻건 발을 씻건 성현은 그 마음의 중심에서 벗어나는 바가 없으니 그러한 이치로 천지天地와 더불어 같은 기운과 길을 간다고 한 것이며, 사물事物과 벗어나지 않는다고 한 것이다.
어부와 굴원의 대화를 눈 앞에 놓고 잠시 생각에 잠기기를, 창랑의 청탁淸濁을 논할 바도 못 되는 우리네 고단한 삶은 그럼 어디에 두어야 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