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호계삼소의 주인공은 제4교구 본사 주지인 정념 스님이다. 본사 주지스님을 이 자리에 모시는 일은 전례를 통해 볼 때 이례적이다. 참선수행이나 교학이 아닌 종무행정 소임자는 사실상 호계삼소의 관심 밖 인물이었다. 정념 스님이 재개원한 상원사 청량선원은 수좌들에게 꽤 인기가 있는 선방으로 알려져 있다. 자연 방부를 들이고자 하는 신청자가 많아 웬만한 수행이력 가지고는 명함도 내밀지 못한다는 소문이 돌 정도.
공부하고자 하는 수좌들이 줄을 선 것은 명당의 요건을 갖춰 편암함을 주는 상원사의 자연환경도 그렇지만, 최대한 불편없이 공부여건을 만들고자 하는 주지 정념 스님의 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92년 주지로 임명되자마자 선원을 재개원한 일로부터 요사, 방사, 선원불사에 이르기까지 그동안 정념 스님의 공부여건 마련을 위한 노력은 지극한 것이었다.
재개원할 당시 상원사의 여건은 무척 열악했다. 한암 스님 계실 때 북방제일선원의 명성을 다시 일으켜 세우겠다는 원력으로 시작은 했으나, 일단 선원이 불타 없어져 버린 상태였고 방사 사정도 여의치 않아 한동안은 입승과 함께 방을 쓰기도 했다.
대중방은 큰법당인 문수전을 사용할 수밖에 없어 부득이 결제 중에는 일반인들의 출입이 통제되었다. 상원사가 문수도량인 점을 감안하면 결코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래도 지난해 선원불사가 완성됨으로써 이제는 신행과 수행이 동시에 이루어질 수 있는 여건을 마무리하고 내려왔다.
정념 스님은 “결코 호조건은 아니었지만 첫 철부터 지금까지 장애 없이 결제가 이루어져 왔다”며 뿌듯함을 숨기지 않는다.
수좌스님들 외호만 한 것이 아니었다. 정념 스님 자신도 한번 거르지 않고 대중과 함께 결제에 들어감으로써 자신의 수행도 챙기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수좌스님들이 필요로 하는 것,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누구보다 잘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정념 스님은 상원사에 주지로 부임하기 10년 전 그러니까 스승이신 만화 스님이 상원사에 계실 때였는데, 문수동자 앞에서 대중과 함께 정진한 적이 있었다. 그때 스님은 공부의 묘한 경계를 맛본 적이 있다.
“좌복에 앉은 지 10여 년 만에 그런 경계가 나타났어요. 평소 즐겨 독송하던 원각경 보안보살장의 ‘백천등百千燈이 광조일실光照一室에 기광其光이 변만遍滿하야 무괴무잡無壞無雜하니라’ 하는 구절이 섬광처럼 가슴에 와 닿으면서 온 몸에 스파크가 일어난 듯 하더군요. 그때부터 잠도 오지 않고 화두가 현전하여 개미 한 마리까지도 환희롭게 보이고, 생명에 대한 외경심이 넘쳐나서, 사물의 분명한 모습과 연기에 대한 이해가 확연해집디다. 그 후로 좌복에 앉을 때나 소임을 볼 때도 온 몸이 어찌할 수 없는 분심으로 가득 차 동정動靜에 화두가 여여했습니다.”
그런 공부의 맛을 느끼면서 자신감도 생겼는데, 늘 공부에 대한 갈망이 마음속을 떠나지 않았다. 상원사 주지 소임이 맡겨졌을 때 스님은 아직 수행해야 할 시기라고 생각했다. 상원사에 가자마자 선원을 개원한 것도 물론 한암 스님의 선풍을 진작시키고자 하는 것도 있었지만 자신의 수행욕심이 앞선 것이 사실이다. 그리하여 수행환경 마련을 위해 불사를 해나가면서 동시에 안거는 철저히 지키는 원칙을 고수해 왔다.
그러면서 이제는 수행과 행정, 이판과 사판이 따로 분리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공부의 맛을 느끼기 시작한 초납 때 주지나 소임을 산다는 것이 몇푼어치 안 되는 일로 여겨졌던 적이 있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수행이라면 산중으로 고착화된 의식을 우려한다.
“내 삶이 그러하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지 모르지만, 소임도 자기를 성숙시켜가는 수행의 분상에서 얘기할 필요가 있어요. 수행자도 구체적인 역사사회의 경험적 측면을 겸비할 필요가 있습니다. 중생을 계도하고 역사의 향도자로서의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 종교의 몫인데, 현실과 유리된 채 화석화된다면 요즘처럼 급변하는 현실 사회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이 상실되지요. 그러면 회향의 길은 막혀버립니다.”
나아가서 지금은 수행자가 현실 속으로 가야 할 때라고 수행풍토의 변화를 역설한다.
“요즘은 수행의 물적 여건이 보장되다 보니 수행이 큰방생활 중심으로 진행되지요. 그러나 너무 보장된 생활 속에서는 정진이라는 에너지를 얻기가 쉽지 않아요. 복지시설, 시장바닥, 탄광의 막장 등 실제 삶의 밑바닥을 몸소 부딪쳐 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인생이란, 수행이란, 존재란?’ 하는 물음에 대한 간절지심이 일어나지 않겠어요? 화두를 들어도 간절한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소임과는 인연이 있는 모양이다. 상원사 선원불사도 마무리 지어졌고, 12년이나 됐으니 너무 오래 살았다 싶었는데 속마음을 짐작이나 한 듯 월정사 주지 소임이 기다리고 있었다.
스님은 산중에 있으면서 언제 그런 안목과 지식을 쌓았는지, 시대적인 흐름과 그 속에서 불교가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월정사는 또 어떻게 발맞춰 가야 하는지 그리고 ‘나는’까지 일목요연하게 꿰뚫어 말한다. 그 논리가 무척 정연하고 진취적이다.
월정사는 전반적으로 대중화의 길을 생각하고 있다. 일반인들의 선에 대한 관심도와 주5일제 근무가 확산됨에 따라 주말수련법회를 활성화하고 불교대학, 단기출가학교, 국제적인 선수련센터 설립 등도 이미 추진되고 있었다.
도제양성의 측면에서 선원이나 강원을 설립하는 것도 고려해보기는 하지만 출가자 수가 줄어들고 있고 종단내에 여러 교육기관이 있어, 욕심만으로 시작했다가 자칫 내용이 부실해지면 시대가 요구하는 출가자를 만들어내기가 어려울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그것은 종단 시책과 보조를 맞춰가려 하고 있다.
월정사 자체의 프로그램도 중요하지만, 스님은 교구운영에도 중요성을 두고 있다. 시대적 흐름이 지방화, 분권화, 자율화로 흘러가듯이 불교 역시 과거 해오던 방식대로 중앙 중심보다는 교구 중심으로 가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대부분 본사와 말사가 분리돼 공유부분이 적다보니 힘을 합쳐 어떤 일을 하기가 어려운게 사실이었다. 그래서 교구종회 안에 15명 정도 단위의 분과위를 만들어 거기에서 현안문제를 활발하게 논의하는 구조를 만들었다.
교구사업 가운데 시급한 과제로 두는 것은 노후복지이다.
절집안은 노후보장이 없다. 그동안 전통적으로 노장님들을 뒷방에 모셔오긴 했지만 이제는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고 따라서 제도적으로 노후보장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정념 스님은 여기에 아주 큰 비중을 두고 있었다. 노후문제가 해결돼야 불교 내부의 주지인사문제, 재정의 투명화, 공유화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수행자는 세속인과 다르지만 그런 당위론적인 것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어요. 수행을 하건, 포교를 하건 행정을 하건, 노후보장이 돼야 공심껏, 헌신적으로 자기실현의 장이 될 수 있어요. 승가가 공동체 정신을 점차 잃어가고 있는 현실에서 더 이상 방치하면 토굴이든 개인절이든 하나씩 갖는 흐름으로 가서 종단의 응집력이 상실되어, 결국 한국 불교가 사회적인 영향력을 잃어갈 수밖에 없을 겁니다.”
월정사 대중 스님들은 매일 아침 오랜 시간을 같이 한다. 법당에서의 아침 예불이 끝나면 동별당으로 자리를 옮겨 공양시간까지 함께 정진에 들어간다. 물론 정념 스님도 함께 한다. 정진은 참선-독경(원각경 보안보살장)-108대참회 순으로 진행된다. 대중살이를 하다보면 자기를 점검하는 시간이 부족하기 마련이라 잠시 자기응시의 시간을 갖는 것이라 스님은 설명한다. 그러다 보니 스님들끼리 화합에도 도움이 되고, 아침에 정진하였으니 종무에 들어가는 마음도 산뜻해진다고 한다. 또한 스님들이 이렇게 할 때 종무원들에게도 신뢰와 신심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공양이 끝나면 다시 차를 마시며 회합의 시간을 가지면서 종무 전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매일 갖는 시간인데도 무슨 할 얘기가 그리도 많은지 이야기가 시작됐다 하면 2시간은 훌쩍이다. 또한 한 달에 두 번 대중스님들과 산행도 간다. 이렇게 정념 스님은 일도 여가도 대중과 함께 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면 일도 재미있고 수월하다는 점을 알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은 스님의 공적이고 투명한 성격을 짐작케 한다.
스님께 요즘도 화두를 드느냐고 물었더니, “매순간 다가오는 모든 경계가 다 화두지요” 하며 웃는다.
“결국은 방하착放下着하라고 하지요. 다 놔버려라. 놔버릴 때 자유를 누린다는 것인데, 생사를 놔버린다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받아들이는 열린 마음만 있으면 이거든 저거든 다를 것이 없지요.”
스님을 인터뷰하며 문득 ‘역사와 시대의 수레바퀴를 되돌릴 수는 없다’고 열강하던 모 학자의 말이 떠올랐다. 그리고 불교도 시대와 함께 이렇게 앞으로 나아가고 있구나 하는 희망을 보았다.
월정사 전나무숲길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청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