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컨가 7225번지(7225 Lincoln Ave.).
그저 평범한 캘리포니아의 중산층 주택가다. 이웃 집과 경쟁하듯 가꾸어진 색색의 장미며 치솟은 참나무들이 낯익은 백인 동네 모습 그대로를 전하고 있다. 그 옆으로 자귀나무가 검게 깊은 그늘을 만들어 주고 있다. 동양에서는 합환수로 사랑을 키워주는 귀한 나무지만, 이 곳에서는 좀 천대를 받는 것 같다. 전기가 사유화되고 캘리포니아의 전력난이 심해지자 전기회사에서는 그늘을 만들 수 있는 나무를 나눠주고, 냉방 전력을 아끼는 데 효과를 보고 있다. 1년에 9개월 동안 자라는 이곳의 생장 기간에 맞게 자귀 나무는 해가 갈수록 그 그늘을 넓고 깊게 만들어 주기 때문에 그 귀격은 오간데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이 집의 자귀도 유달산 자락에 있는 왕자귀나무 못지 않게 넉넉한 그늘을 주고 있다. 이렇듯 매양 비슷한 이 길을 지나면서 별반 색다른 것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는데, 한참 전 남편과 같이 일하는 스티브 교수의 소개를 받게 된 것이다.
물 선 곳에서 말도 잃고 살자니 버거운 시간에 부딪치게 되었고, 평화를 만날 수 있는 곳을 소개해달라 고 스티브 선생에게 부탁을 드렸다. 요가를 배우면 왠지 삶이 가뿐해질 것 같았다. 길가에 나와 있는 작은 나무 간판에 Lotus Garden이라는 글씨와 함께 연꽃을 쥔 손이 얌전히 그려져 있었다. 일반 가정집에서 하는 작은 클라스인듯 보였는데, 우거진 나무에 가린 좁은 입구와는 달리 안은 족히 차 열 대는 주차해도 됨직하게 넓었다. 염소들이 울 안에서 손님이 왔다고 울어 주었고, 송아지만한 개들이 꼬리를 살랑거리며 길 안내를 해 주었다. 서쪽에 있는 작은 집에서 순한 눈을 가진 아가씨가 합장을 하며 나왔다. 페르시아 분위기가 감도는 외모였지만 부드러운 발음이 미국인임을 쉬이 알게 했고, 내 억양에 묻은 악센트를 감지했는지 아가씨는 부드럽고 명확하게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를 알려 주었다. 이곳은 명상센터라고 한다. 처음 그 집에 살던 주인이 이 집을 기증하면서부터 미 서부는 물론 세계 곳곳에서 이곳으로 만행을 온다고 한다. 내가 살고 있는 이 조그만 동네가 세계로 통하고 있었다는 것을 그제야 알았다. 내 스스로 갇혀 있었을 뿐 세계는 늘 열려 있다는 걸 새삼 기억하게 했다.
나무로 지은 규모 있는 2층 집은 1층에 센터와 관련 있는 몇몇 가족이 살림을 살고 있고 2층은 예불을 올리는 장소 겸 도서관으로 쓰여지고 있다고 했다. 이 외에도 다른 세 동의 건물이 있는데, 그 중 나무로 지어진 큰 건물이 요가 스튜디오고,나머지 두 동은 사무실 겸 세계 각지에서 오는 명상 수련자들에게 제공되는 자리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정원 구석구석 석상이 많이 눈에 띄었다. 성모상도 있었지만 석가모니 부처님의 고행상이며 관음보살상, 인도의 약시며 시바상 등이 다른 여러 신과 조화롭게 자리하고 있었다. 요가 스튜디오의 한쪽 벽은 마치 인도 북부에 온 듯한 기분을 맛보게 했다. 설산이 평화롭게 자리하고 있고, 그 아래 북인도 전통 복장의 남녀가 피리를 불며 부드럽게 바라보는, 푸른 빛 가득한 봄을 전하는 인도식 벽화로 꾸며져 있다. 넒은 방 가득 설산의 정기와 전단향, 그리고 라그의 단선율이 울리고 있었다.
매일 오전과 저녁에 요가 수업이 있고, 토요일 오전에는 태극권 강좌가 있다고 한다. 그네들은 모두 채식주의자라고 했다. 채식이 건강에 참 좋다는 속된 나의 맞장구에 그 보다는 Karma(업)를 끊어내고자 하고 있다고 답했다. 1에이커가 넘는 뒷마당에는 잔디가 걷혀지고 온갖 채소들이 그득했다. 일요일마다 채소 요리 축제를 하니까 놀러 오랜다. 참 어여쁜 아가씨다. 더불어 수요일 저녁 명상 강좌는 요가와도 관련이 깊고 공개되어 있으니 쉬어 가는 도시생활을 해보라고 권하기도 했다. 안그래도 명상이 참선과 무엇이 다른지 궁금하던 차였기에 수요일 저녁 다시 찾았다. 2층 건물에 들어가니 이곳에 사는 아이들인 듯한 십대들이 여기저기서 숙제를 하느라 분주했다. 여러 색의 사람들이 어울리는 자유로운 분위기가 흐믓해 보였다.
그네들의 법당인 2층은 생각보다 협소했고, 창가에 있던 거실을 그냥 사용하는 듯했다. 라즈니쉬보다 더 부드럽게 생긴 흰수염의 인도 구루의 사진을 보고 있으니까 오늘의 명상 선생님이 올라왔다. 청바지에 티셔츠 차림이 아주 가뿐해 보였다. 물론 맨발이었고, 밖에서 일하다 온듯 꽃가루를 묻히고 왔다. 재채기를 인사 대신 교환했다. 가부좌를 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파란 눈의 금발인 아저씨가 물어보니 괜히 생소했다. 그런데, 수줍게도 학생은 나 혼자였다. 2시간 가량 명상에 대한 기초적인 설명을 한다는데……. 너무 미안했다. 가벼운 마음으로 온 나 때문에 수고를 하게 만드는 것 같아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내 마음을 읽었는지 너털웃음과 함께 그네들이 따르는 인도의 스승을 소개해 주었다. 그는 인도의 구루이고, 반전 열풍이 가득했던 70년대 인도를 찾은 미국인들을 가르쳤고 그 제자들이 이렇게 세계 곳곳에서 수행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네들의 믿음은 종교가 아니란다. 모든 종교인을 다 포괄하는 것이 자기들의 마음가짐이고, 다른 어떤 신도 거부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의 설명의 요지는 익숙한 내용이었다. 석가모니께서 인도의 큰 깨침을 이루신 스승이니 어찌 그 영향에서 다들 자유로울 수 있겠는가만은 청바지에 파란 눈을 한 그의 입에서 듣는 내용이 오히려 서구 사상을 배우는 것처럼 생소했다. 샤워할 때나 교통정체에 걸렸을 때 늘 명상하자고 했다. 손님을 위해 준비한 그네들의 염주를 건네 주며 기도법을 가르쳐 주었다. 즐거운 노래를 들으면 마음이 밝아 지듯이 그냥 고랑가 찬트를 하자고 했다.
종교가 아니라고 하지만 매번 교민 가게 앞에서 만나는 선교단처럼 갑자기 나를 긴장시켰다. 너무 종교의 벽이 높은 한국 교포 사회에서 들른 손님이라 촌스러움을 놓아 버리기가 어려웠다. 이런 의심 많은 내가 더 벽을 만드는 것 같아 멋쩍었고, 주머니 속에 두고 손 집어넣을 때마다 돌리라는 지도가 신선했다. 무료한 가운데 손가락한테 할 일을 주어야 한다며 엄지와 중지로 돌리라고 자상히 알려 주었다. 시간이 지나고 질문이 오고 가면서 깊은 문을 열어 주었다. 지금은 직장을 갖고 일을 하고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지만 자신들은 30년 넘게 평화를 위해 여러 모색을 해왔다고 했다. 그 노력에 지금은 고등학교에 명상을 가르치러 나가기도 하고, 이미 헐리웃은 자기들의 생활을 다 받아들였다고 했다. 하긴 헐리웃이 현대 요가 명상의 메카가 된 것을 부인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기타를 꺼내며 팝송으로 만든 고랑가 찬트를 하자고 했다. 그의 흥을 깨기가 미안해 열심히 이중창 단순 돌림노래를 불렀다. 정수리가 불끈 솟아오른 50대 히피아저씨의 하루 강연이 아직도 운율에 맞춰 강하게 울린다.
다이어트 열풍 속에서 Lotus Garden은 날마다, 하루 내내 차 댈 틈이 없다. 도시의 스트레스를 벗어 놓고자 다양한 사람들이 몰려 들고 있고, 그저 몸짱 만들기가 아니라 진지하게 새로운 호흡을 배운다. 숨쉬는 것부터 다시 익히며 삶의 박자를 새로 새기고 있다. 이곳의 대부분은 백인 중심의 중산층이지만 샌프란시스코의 경우는 거의 일반화가 되어 있다고 한다.
요즘 한국에 불고 있는 웰빙의 물결이 어떤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인터넷을 장식하고 있는 여러 정보들을 보았지만 돈으로 환산되는 것이 더 많은 것 같아 아쉬웠다. 내가 살고 있는 이곳은 동양을 찾고자 하고, 온돌을 배우고, 그린티를 즐기며, 두부를 즐기는 사람들과 쉽게 부딪치게 된다. 오늘 아침에도 강의실에 올라가는 승강기에서 향내를 맡았다. 향수를 뿌리는 대신 향을 피우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아니 나를 찾는 이가 많아 지나 보다. 그리고, 이런 물결은 매우 잔잔하고, 오래 지속되어 왔다. 30년 그들의 노력이 대중화를 이끌었다고 하듯이 된장국을 즐겨 먹고, 유기농을 찾고, 다이어트를 위해 다시 우유를 찾는 미국인들의 웰빙은 은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