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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이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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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이야기 - 최현태/대구불방아나운서 2004년 06월 268호
제가 좋아하고 즐겨 찾는 곳이 있습니다.
지금 살고 있는 집에서 7, 8분 정도 걸으면 갈 수 있는 국립대구박물관의 들꽃 산책길이지요.
지금은 원추리가 무성한 잎 가운데, 꽃대를 감추고 보랏빛으로 피어난 비비추며 옥잠화에 자리를 내주고 있습니다만, 우리가 모르는 사이 내밀한 몸짓으로 꽃 피울 그 날을 준비하고 있을 겁니다.
올해도 저는 박물관 뒷동산에 피어난 매화꽃으로 봄맞이를 했습니다.
그리고 조팝나무 꽃 하얗게 드리워진 그 들꽃 산책길을 걸으며 지인 들에게 온 세상이 꽃 잔치를 벌였다고 문자메시지를 날리기도 했구요.
향기로운 봄소식을 전하는데는 꼭 시인이지 않아도 충분했습니다.
40자 이내로 축약해야 하는 아쉬움이 있긴 하지만 솔숲그늘 벤치에 앉아 눈앞의 풍경과 그 아름다움을 전할 수 있는 문명의 이기는 제게 작은 행복입니다.

출퇴근 시간이 일정치 않은 저는 시간이 빡빡하다면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않다면 또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뭘 좀 해볼까… 또는 배워볼까… 하지만 세상이 절 위해 기다려 주지도, 배려해 주지도 않는다는 것 정도는 꿰고 있으니 제가 맞춰갈 수밖에 없다는 것도 일찌감치 알아차렸죠.
제가 존경하는 스승이 그러셨습니다.
이미 지나간 시절이나 아직 내게 다가오지 않은 막연함에 마음 쓰지 말고 지금 내게 주어진 것을 즐기고 그것에 만족할 줄, 행복할 줄 알아야 한다… 라구요.
그래서 방송 스케줄이 오후로 정해지는 날이면 조조早朝 영화상영관을 찾기도 하고, 잎새가 날로 푸르름을 더해 싱그러운, 집 가까이 산으로 올라갔다 와서는 평소 부족한 운동을 했노라 하면서 스스로 만족해 하지요.
어디 그뿐인가요.
늘 바쁘다 바쁘다 하면서 인사 챙기지 못하는 주변의 도움 주시는 분들을 수제비 점심에 초대합니다.
한 상 가득 차려낸 식사초대는 부담스러워들 하시지만 밀가루 수제비 한 그릇은 가볍게 드시고 대신, 오고 가는 정은 각별하답니다.
조금은 빈약한 듯해도 흐린 하늘이 내려앉아 꾸물꾸물한 날, 김치전이 곁들여지면 그 날 역시 행복한 웃음소리가 낭자한 우리 집 식탁풍경입니다.
언제가 될지 알 수 없지만 수제비 끓이는 날 당신을 초대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땅에서 엄마라는 이름을 가진 여자가 직업을 가지면 바쁘거나 아프거나 둘 중의 하나라고 합니다.
사실 그렇기도 해요. 그래서 제 주위 사람들은 절 두고 걱정이 많습니다. 아이가 하나, 둘도 아니고 셋인데 게다가 전 국민이 알아주는 고3 엄마이기도 하거든요.
아이가 고3이면 온가족이 고3이라는 현실을 인정하기는 싫지만 부정하기도 어려운 지금, 전국에는 웰빙 바람이 열풍처럼 번지고 있습니다.
웰빙~좋지요.
세계보건기구(WHO)는 ‘육체적인 질병뿐 아니라 정신적 사회적 질병도 없는 상태가 건강하고 행복한 삶이다’라고 규정하고 있고 WHO가 규정한 건강하고 행복한 삶이 바로 웰빙이다 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저는 여기에 꼭 추가하고 싶은 것이 영적靈的인 건강(spiritual health) 입니다.
요즘 마케팅 주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동시에 어쩌면 상업적 유행으로까지 이해되고 있는 웰빙~ 이것을 지금, 여기, 이대로 행복하고 건강할 수 있도록 컴퓨터 shift키를 누르듯이 전환해야 할 필요가 있는 거지요.
살사 댄스를 즐기는 의대교수님은 그러시데요, ‘웰빙이 별거냐,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 적극적으로 달려드세요. 그 속에 심신의 건강이 있습니다…’라구요. 그래요. 비싼 스파마사지 대신 집에서 하는 족탕足湯, 반신욕으로도 충분히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는 거잖아요.
사람 사는 게 다 비슷 비슷…라고 하지만 어떤 이는 자기빛깔을 선명하게 가지고 주제가 있는 삶을 살아가구요. 또 어떤 이는 매일 매일이 회색빛깔인 채로 살아갑니다.
회색빛깔인 당신께 산중에서 수행하고 계신 한 스님의 말씀을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바람 불고 먼지 날리는 세속이지만 하루에 세 번쯤 지긋이 눈 감고 호흡 다스리며 부처님을 그리워하고 사모하기를 권합니다.
그리하면 깊고 깊은 마음에 있는 또 다른 나를 만나게 됩니다.’

주변사람들이 절 두고 하는 걱정을 사랑이라 바꿔 생각하며 저는 지금 여기, 이대로 행복합니다.
고3 엄마! 이 나이에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음에~.
그리고 종이에 적어보면 수없이 많은 행복할 수밖에 없는 이유들로 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