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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먹고 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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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이야기 - 한금순/제주남녀고 교사 2004년 06월 268호
잘 먹고
딸기 벌레. 아들 별명. 딸기는 봄 과일인데, 겨울바람 한창일 때 부르고 있더라. 올해는 딸기 벌레가 굶어 죽어도 할 수 없다. 겨울에 먹는 딸기의 유해성에 대해 거창하게 설명. 봄 과일은 봄에 먹자. 겨울을 봄인 줄 알게 한 인간에게 딸기는 배신감으로 절망하고 있을 거야. 너무 유치하게 ‘오바’한다고 아들이 으웩~. 봄날의 따뜻한 바람으로 숨쉬고, 노르스름한 봄 햇살 맞고 자란 딸기를 먹어보자, 우리.
딸기 벌레와 그 벌레의 어미 벌레인 나로서는 비장한 결심. 매일 사 날라야 하던 딸기를 올 겨울엔 아예 외면.
성공? 아니, 반쪽의 선택. 집 앞 미개발 지역엔 젊은 할아버지 할머니가 우리 집 수돗물을 끌어다가 딸기를 키운다. 우리가 쬐는 햇볕 나눠서 함께 쬐이고, 세찬 비에 찢어진 잎사귀 쓰다듬는 할머니의 안타까움 먹고, 푸른 하늘도 산들바람도 함께 하며 자라나는 우리 집 수돗물 먹은 남의 밭 딸기… 뿌듯한 상상. 그러나 할아버지는 농약을 친다. 우리 집 수돗물은 농약 칠 때도 끌어가고, 비가 안 올 때도 끌어간다.
매장의 빨간 딸기의 유혹에 절망하고 있을 때 할아버지는 구멍 낸 비닐 속의 흙에 모종을 옮겨 심었고, 군침 꼴딱 넘기며 딸기 진열대 지나갈 즈음 농약을 먹은 딸기 잎사귀는 넓어지고 많아지고, 두 묶음씩 모아 할인 판매할 무렵에야 하얀 꽃은 야속하게 띄엄띄엄 피어나더라.
고민하다 절망이 되도록 기다리다 지쳤다는 핑계를 대고 태양과 빗물과 바람을 배반. 앞밭의 새파랗고 작은 열매 보인 지 오래건만 빨개질 생각을 않고 있기 때문이라고 아들에게 변명. 그나마 유기농이라 괜찮다고 부언.
신토불이가 유행할 즈음에 나는 프랑스 유학 간 친구는 이제 다 죽었네~ 코웃음 쳤고, 배가 아파 병원에 가면 밀가루 음식 금지하라고 처방하는 의사와 눈을 맞추면서 빵 먹고 사는 미국 사람은 맨날 배가 아파 어쩔런고 하는 눈길을 미소로 위장하며 날렸었다. 이젠 우리 고장, 친환경, 유기농을 선택하지만, 다시 고개 드는 새로운 선택의 기준.
농약은 안 쳤지만 그러나 비를 막는 지붕과 바람 막는 벽이 있는 집 안에서 전깃불을 태양삼아, 석유를 태운 온기에 낮잠인지 밤잠인지를 자며, 더러는 음악도 감상하고, 딸기 몸에 좋다는 거름 먹고 자란 유기농 딸기를 선택할 것이냐? 농약을 치지만 지붕도 벽도 없는 밭에 뎅그러니 누워 낮이면 하늘의 태양과 밤이면 별과 달과 맑지 않지만 빗물과 배기가스 섞였지만 바람을 맞은 오월의 딸기를 선택할 것인가? 지붕 속의 친환경이냐 보호막 없는 우리시대의 날 햇볕과 날 바람의 제 계절이냐?
‘털끝만큼이라도 차이가 있으면, 하늘과 땅만큼 벌어지나니…(毫釐有差 天地懸隔)’ 두려운 선택의 갈림길, 그러나 나의 이정표는 언제나 “나도 부처님처럼”.

잘 살기
지인이 십오억짜리 빌딩을 샀다. 놀랍고 부럽다. 어느새 그리 잘 살게 되었느냐고, 팔자 폈다고. 어쩜 그런 수단이 다 있는 줄 몰랐네, 우와 모으길 잘 모았네. 기분이 어떠니? 부러움과 칭찬의 말 속에서 겸손의 말투로. 그중 자기 돈은 오 억이란다.
눈이 동그래지게 놀랐다. “삼분의 이는 빚인데, 그것도 십억씩이나 다 어떻게 갚을라고?” 층마다 세를 주면 돈을 맞출 수 있다한다. 그렇게 임시 막아 놓은 후에 그 다음은 어떻게 벌어 갚을 거냐는 물음에 돌아오는 말은, “왜 갚아? 해마다 집세로 돌리면 되는 건데. 그러니까 너는 부자가 못 되는 거야. 재테크는 바로 이런 것이라고.” 내겐 십억짜리 빚쟁이로 보이는데. 나와는 다른 계산법. 이미 십오억 빌딩의 소유주인 자신감과 자부심. 재산 늘리기 강의 수강.
오억짜리 재산가로 빚 없이 살아갈 것인지, 십억 빚을 안고 있는 십 오억짜리 빌딩 주인으로 살지에 대해 얘기했다. 십오억 부자의 눈엔 미련한 빚 없는 오억 재산가, 오억 재산가의 눈에는 불안한 십억 빚의 십오억 빌딩 주인. 미련한 거야, 과감히 투자를 해야지. 임대 안 되면 피 마를 거잖아, 십억 빚에 깔려 죽겠다, 어휴~. 서로 이해할 수 없어 부르르. 서로의 답답한 인생을 조금이나마 도와주겠다는 배려 가득한 대화 속에 십오억 부자의 한턱으로, 십억 빚쟁이의 거드름으로 배를 불렸다.
동료들에게 얘기를 옮겼다. 많은 사람들이 십억 빚의 십오억 빌딩 소유주 편이었다. 다수결에 의해 나는 못살고 있는 것이라고 평가되었다. 다수가 옳다하면 의심 없이 진리로 믿으려 하지만, 다수의 진리는 때론 극악한 횡포임이 증명된 시대. 그래서 나, 흔들리지 않는다.
오만 원짜리 실내용 슬리퍼를 산 동료로 이야기가 이어졌다. 경제적으로 별 어려움 없이 산다면서도 돈이란 많을수록 좋다는 동료가 흥분을 한다. 우린 뭐야? 만 원짜리 슬리퍼 신는 사람 기분 나쁘네. 남의 신발에 왜 기분이 나쁠까? 돈 많다고 자랑하려고 슬리퍼 따윌 그렇게 다섯 배나 되는 것을 신는 것은 다른 사람 기분 나쁜 거야, 만 원짜리밖에 못 신는 사람 소외감 느끼잖아. 그런 상대적 빈곤감이 사람을 황폐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고?
돈 있어도 오만 원짜리 신고 싶지 않은 사람도 있어. 그런 사람이 어디 있어? 슬리퍼 따윌 오만 원짜리 신는다고 흥분하면서 돈 있으면 나도 오만 원짜리 신을 거라고 울분을 토하는 건 웃기는 논리야. 웃기는 게 아니라 그게 사람 사는 이치지. 몇몇의 생각이므로 공동의 이치일거라고 보편화시키려 하지 마. 설사 합의한 이치라 해도 공동의 선이 아닐 수도 있는 거잖아.
남처럼 돈을 가지고 남과 같은 물건을 소유하고 소비하려 함은 끝 모를 깊은 수렁, 깨어날 수 없는 가위눌림. 얼마를 가지면 이제는 충분히 가졌다고 만족할 만큼의 돈이겠는가.
숫타니파타의 경구 “법답게 얻은 재물로…”+우리 속담 “…정승같이 쓰기를.” 나의 잘사는 비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