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술과 종교
주술은 초기 인류가 생존을 위한 투쟁을 벌이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었다. 사냥꾼들에게는 사냥할 동물이 필요했고, 농부들에게는 작물이 자랄 수 있는 해와 적당한 비가 필요했다. 원시인들은 자연환경이 이러한 요구에 순응하지 않을 때 자연으로 대표되는 세계를 이해하고 그를 바꾸기 위하여 그들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 동원하였다. 프레이저는 이러한 원시인들의 노력을 ‘동정적 주술,’ 즉, 자연은 공감 즉 감응에 의하여 작용한다고 이해하였다.
동정적 주술사에 의해 만들어진 주술에는 유사성의 원칙에서 사물들을 연관시키는 모방주술과 접촉의 원칙에서 연결시키는 접촉주술이 있다. 전자는‘유사함이 유사함에 영향을 끼치는 것’을 말하고, 후자는 ‘부분이 부분에 영향을 끼치는 것’을 말한다. 예컨대, 러시아의 농부가 가뭄이 심할 때 어레미를 통해 물을 퍼붓는데, 그들은 어레미를 통해 떨어지는 물이 천둥을 동반한 소나기와 같기 때문에 이와 유사한 물 뿌리기는 하늘로부터 비를 실제 내리게 할 것이라고 믿는다. 미국 남부 및 서인도 제도의 흑인 사이에 행해지는 원시 종교에서는, 사제가 날카로운 핀을 적의 손톱과 머리로 장식된 인형의 심장에 찔러 넣을 때, 그 사제는 단지 접촉 또는 전파되는 전염을 통해 그의 적들을 죽음으로 이끌 수 있다고 믿는다.
원시 사회에서 주술이 인간의 삶에 결정적으로 일정한 역할을 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동시에 매우 근본적인 문제를 안고 있기도 했다. 그것은 주술이 얼핏 보기에 과학과 같이 보이지만, 동시에 그것은 부정확한 과학이기 때문이다. 현대인들은 모방과 접촉의 법칙이 세계의 모든 면에 적용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원시 주술사가 주술을 아무리 신속하고 완벽하게 재연한 다고 하더라도, 세계는 주술사가 적용한 동정심과 유사성의 형태대로 운용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주술은 기껏해야 비상식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주술사는 자신이 저지른 실수에 대해 변명할 수 있었고 그리고 자신을 비난할 수 있었다. 그러나 누구도 사람이 실수한 것이 아니라 제도가 실수한 것이라고 큰소리로 외치지 않았다. 프레이저가 보기에, 이러한 실수를 일반적으로 인정하는 것이 인류 사상의 역사에서 혁명적인 발전이었다. 왜냐하면, 주술이 쇠퇴함에 따라 주술의 빈자리에 종교가 등장하였기 때문이다.
종교는 주술과 본질적으로 다른 길을 걸었다. 이와 관련하여, 종교를 신적인 존재에 대한 믿음이라고 정의한 후, 종교가 관념을 무비판적으로 결합한 결과로 생겨난 주술과 닮았다고 했던 타일러의 주장을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 프레이저는 타일러의 종교 정의의 많은 부분에 공감하였다. 그러나 그가 보기에, 종교는 주술의 원칙을 정확히 거부하고 있다는 점이 매우 흥미로웠다. 접촉과 모방이라고 하는 주술의 원칙 대신에, 종교적인 사람들은 자연계 이면에 있는 진정한 힘을 원리가 아니라 신이라고 부르는 초월적인 존재인 인격이라고 믿었다. 그에 따라, 참으로 종교적인 사람들이 자연의 진행을 통제하고 변화시키고자 할 때, 그들은 단순히 주술적인 단어를 사용하는 것 대신에 그들이 선호하는 신들에게 호소하는 기원이나 탄원을 사용하였다. 그들이 다른 사람과 타협하는 것과 똑같은 형태로, 그들은 부탁을 하거나, 도움을 청하였고, 복수를 내려달라고 기원하였으며, 사랑과 복수 그리고 순종을 서약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것들은 궁극적으로 자연을 통제하는 신들의 인격이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신들의 인격은 폭풍을 일으킬 수 있는 노여움이고, 목숨을 구할 수 있는 자비였으며, 파도가 거센 바다를 가라앉힐 수 있는 태도를 단번에 바꾸는 것이었다. 프레이저로서는, 이와 같은 초자연적인 존재에 대한 믿음이 있는 곳이면 어디나, 그리고 기도나 의례를 통해 그들의 도움을 얻고자 하는 인간의 노력이 있는 곳이면 어디나, 인류의 사고는 주술적인 영역으로부터 벗어나 종교적인 것으로 옮겨갔다.
주술에서 종교로 변화한 것은 진보를 향한 징표였다. 실제 종교는 주술을 능가하는 것이며 그리고 인류의 지적인 진보를 나타내는 것이었다. 인간이 실제 경험한 세계를 설명하는 데 있어서, 종교적인 설명이 주술적인 설명보다 월등하게 우월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주술은 비인격적이고 항상하며, 그리고 보편적인 법칙을 전제로 한다. 만일 기우제를 정확하게 행한다면, 실제 비가 내려야 한다. 그리고 모방과 접촉의 잣대는 예외를 인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종교는 주술과 다른 입장을 취하고 있다. 종교는 깨뜨릴 수 없는 설명 방식을 갖고 있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반대로, 종교는 세계가 우리가 아닌 신의 관심에 따라 자연의 힘들을 스스로 조절해 나간다고 인정한다. 게다가, 신들은 그 수가 많으며, 각기 다른 인격과 종종 경쟁적인 목적과 의무를 갖고 있다. 인간은 신을 숭배하고, 인간은 신들이 비를 내리게 하고, 자식을 낳게 해주며, 또는 병을 치료해 줄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신에게 기도하며 재물을 바친다. 그러나 인간은 신들이 그러한 것들을 반드시 해주어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위대하건 사소하건 간에 대부분의 자연적인 진행과정이 우리의 통제권 밖에 있기 때문이다. 신으로부터 대답을 들을 수 있는지 없는지 모르면서 기도를 드리고, 어느 날에는 받아들여지고 어느 날에는 거부될 청탁을 하는 것은 인간의 한계를 벗어나 위대하고 강력한 존재의 통제 하에 모든 것들을 맡기는 세계관에 기초한 것이다. 이러한 세계관은 인간이 초월적인 존재를 실제로 발견했듯이 인간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들이다. 그리고 깜짝 놀랄 만한 즐거움과 전혀 예상치 못했던 불행으로 가득 찬 인간의 삶에 종교는 주술보다 훨씬 그럴싸한 것이다. 신들과 같이, 세계는 때때로 우리가 원하는 것을 주며 때로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주술, 종교, 그리고 왕의 신성
종교가 대두함에 따라, 사회에 서로 연관된 일련의 변화들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종래의 주술에 의존하던 왕들은 점차 새로운 사제적 권위를 가진 왕들로 대체되었다. 그들의 힘의 원천은 새로운 종교적인 형태, 특히 신과 교통할 수 있는 왕의 능력 또는 그가 신성과 같은 것을 갖고 있다고 하는 점에 있었다. 주술시대와 종교시대 간에 분명한 그리고 급격한 변화가 있지는 않았지만, 신적인 왕들은 주술시대에 주술적 왕들이 그러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종교의 시대에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문화는 완만하게 그리고 장기간에 걸쳐 때로는 불규칙한 패턴으로 변한다. 문화가 주술적인 원리로부터 신들의 인격으로 자연적인 진행의 통제의 주체를 넘겨주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원시인들이 신을 믿게 되었다고 해서, 주술 장소마저 없애버린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 주술과 종교가 전 세계의 문화들 속에 아주 복잡한 형태로 혼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주술과 종교가 혼합되어 있다는 점은 프레이저의 논리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의례적인 타락은 그 가운데 하나의 예이다. 프레이저에 따르면, 만약 성적인 교합으로 인해 인간의 삶이 재생산된다면, 모방의 법칙에 따라 신의 집에서 행해진 교합이라는 의례 행위는 하늘의 아버지 신과 땅의 어머니 신도 실제로 동일한 행위를 하게 한다. 왕실도 동일한 관점에서 이해될 수 있다. 많은 부족 사회가 왕을 종교적인 관점에서 하나의 신으로 생각하지만, 부족민들은 왕의 권력과 부족민과의 관계를 주술적으로 생각한다. 하나의 신으로서, 왕이 세계의 핵심으로 간주되는 것이다. 왕이라고 하는 한 인간으로부터 에너지가 여러 방향으로 발산되어 자연 질서와 전체 부족민의 삶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동시에, 이와 같은 신성한 권력이 본질적으로 개인적이라기보다 주술적인 것이다. 사실, 왕의 신성한 권력은 거의 완벽하게 주술적인 것이다. 예컨대, 일부 아프리카인들이 왕으로 하여금 그의 집을 떠나지 못하도록 하는데, 이는 왕이 그의 몸을 단순하게 움직임으로써 기후에 나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고대 아일랜드(Ireland)에서는 왕이 해가 떠오를 때에 어떤 특정한 정해진 장소에 있어야 하고, 수요일에는 다른 곳에 있어야 했고, 그리고 월요일에는 배를 저어야 했다. 이러한 관념은 그들의 주술적인 힘들이 특정한 시간에 특별한 장소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믿음에서 나온 것들이다.
발견을 향한 여행
프레이저는 주술을 종교의 근원이라고 이해하여, 그의 연구를 스스로 ‘발견을 향한 여행’이라고 불렀다. 선사시대 인간들의 마음을 찾아 먼 과거로 떠난 길고긴 여행이었던 것이다. 인간이 신을 숭배하기 시작한 것은 자연을 설명하고자 하는 최초 인류의 시도였다. 그리고 이는 자연의 재앙을 극복하고 자연의 이점을 얻고자 하는 등 자연계의 힘을 통제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을 부추겼다. 주술은 이에 대한 첫 번째 시도였다. 그리고 거기에는 별다른 효과가 없었다. 주술이 쇠퇴하자, 주술과 혼합된 신에 대한 믿음이 생겨났다. 그리고 수세기를 지나는 동안 점점 더 종교의 자리가 굳건해지게 되었다. 종교는 기도와 간청에 모든 희망을 담고 있다. 그러나 결국에는 종교에서도 역시 무언가 부족한 것이 발견되었다.
종교의 시대는 어떤 것으로 극복될 수 있을까. 이와 관련하여, 프레이저는 주술의 시대가 종교의 시대로 대체되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신에 대한 믿음 시대인 현대도 또한 제3시대 또는 앞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과학의 시대에 길을 양보할 것이라고 믿었다. 주술과 마찬가지로, 종교도 타일러의 생존이론의 범주 속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종교가 지나간 자리에는 과학이 매우 생동적인 사고 형태로 자리잡을 것이다. 과학은 인간들에게 사실에 대한 이성적인 그리고 충실한 세계의 정보를 제공할 것이다. 보다 새롭게 개선된 주술의 형태로, 과학은 초월적인 존재에 대한 믿음을 포기하고 일반적인 그리고 비인격적인 원칙에 따라 세계를 설명할 것이다. 현대인들이 보기에, 이러한 것들은 더 이상 모방이나 접촉과 같은 비밀스러운 것이 아니라, 물리적인 인과의 법칙들이다. 종교가 사라짐에 따라, 과학은 불가피하게 종교의 자리를 물려받게 될 것이다. 프레이저가 보기에 과학은 실수 없는 주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