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수음식으로 중국산을 올릴 수 없다는
집안 어른의 당부로 고사리를 따러 다닌 지도 이젠 3년째이다.
시골로 들어온 지는 몇 해가 지나도
산나물을 아는 바가 없던 나로서는 집안 어른의 말씀도 따르고
늦게 배우는 자연 학습에 가벼운 흥분까지 곁들여 새벽을 기다리게 되었다.
세상사 배울 일이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게 있겠냐마는
내게 있어 아이에게 우선적인 교육은 산에 있는 풀이나 나무 하나가
학교에서 배운 어떤 지식보다도 가치가 있다고 여기고 있었기에 시골에 내려오는 것이
아이를 위해서도 많이 배워 도움을 줄 수 있을까 했다.
그런데 조기교육(보통의 경우 약초와 비슷하게 생긴 독초가 있는데
어릴 때 익히지 않으면 그 구분이 상당히 어렵다고 들었다)을
받지 못한 나로서는 여간 힘겨운 일이 아니다.
그러기에 아이가 4살 적에 논둑길에 심은 깻잎을 보고
“아빠 저게 깻잎이야!”라고 했을 때는
내가 느껴왔던 어떤 행복했던 순간보다 기뻤고 아이가 자랑스러웠다.
시골에 들어온 이유를 확인시켜 주었기에.
우리네 인생의 필연적인 고통과 외로움은
가장 행복했던 추억을 상기함으로써 이겨낼 수 있으리라.
아주 조실부모한 쪽은 아니지만
조금은 일찍 돌아가신 부모님 때문에
어릴 적 함께 한 가족과의 기억이 많은 아쉬움으로 남아 있다.
특히나 오원어치의 콩나물 국과 라디오 연속극을 들으며
일곱식구가 한방에 앉아 식사를 하던 추억은
지난 생에서 바람직하지 못한 제안과 타협하지 않았던 힘의 원천이 되었다.
아마도 그 시절이 내겐 행복으로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무엇 하나 충분치 않던 시절 가질 수 있었던 것보다 가질 수 없는 것이 많았기에
적은 것에도 행복을 느끼다보니
아마 유달리 어린시절에 행복이 집중되어 있는 듯하다.
요즘 즐겨보는 ‘인간극장’이란 TV프로가 있다.
감성을 자극하는 요인이 많은 탓에 세 식구 모두 눈물을 흘리며 보다가
아빠와 눈이 마주친 아이는 어색해져 괜히 묻지도 않은 이유를 댄다.
하품을 해서 눈물이 나왔단다.
아마 나의 학창시절 버스나 전철에서
자리를 양보하려 할 때 느끼는 어색함과 같은 것일게다.
좋은 일을 하면서도 부끄러움이 앞섰던 것은
애써 감성을 자제하며 눈물을 감추려고 했던 것에서 기인한 것이 아닌가 싶다.
원래는 충분하였으나 살아가면서 잃어버린 감성 때문에
삶이 점차 메말라진 것 같다.
사물을 얼마나 관심있게 애정을 가지고 보느냐에 따라 꽃잎이 피어나는 것을
볼 수 있다는 신비주의자의 말을 좇아
하루종일 나무만 바라보며 세월을 보낸 적도 있었다.
훗날 그 감성이 측은지심에서 비롯한 자기정화의 눈물에서 시작되었음을 알았을 때
눈물이 하늘이 준 축복임을 아이에게 설명이 되어야 한다.
처음 이사를 했을 때 아침이면 대문앞에 놓여 있는
감자나 고추 등의 야채들이 이웃들의 정임을 눈으로 직접 보고 배울 수 있다.
앞으로 아이가 커가면서 삶이 힘들다고 느껴질 때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고 감성을 키우며
가족과 이웃의 사랑을 확인할 수 있는 공간으로서
시골 생활이 적합할 것 같았다.
조금은 외로움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군중 속의 외로움은 정신적인 고통을 주고
자연 속의 외로움은 지혜를 키워 주리라 믿는다.
흙으로 사물을 빚으면서 자연의 이치를 투영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그것 역시 소박했던 어린시절의 기억 때문이리라.
시골에 내려와 소박하지만 물질문명의 간섭을
덜 받는 용기있는 삶을 살 수 있는 것도 어린시절의 가난한 삶 때문이리라.
현대식 조기교육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아이와 함께 자연의 이치를 배워가며
농촌생활을 할 수 있는 것도 어린시절 보았던 자연의 푸릇한 기억 때문이리라.
아이가 커서 스스로 인생을 선택할 수 있는 나이에
나는 또 어떤 기대로 아이를 바라보고 있을까!
오월의 새벽 산행을 준비하며 잠든 아이의 얼굴을 보니
내 기억 속엔 없는 조상의 얼굴이 겹쳐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