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시는 선생님 !
봇물이 터지도록 간밤엔 많은 비가 내렸습니다. 문득 미술관 옆 개울에서 철철 넘쳐 흐르는 물소리 듣고 싶고 오늘은 바람도 많이 불어 미술관 마당에서 일제히 돌아가는 바람개비의 모습을 보면서 숨 멎을것 처럼, 마치 동심으로 돌아간 듯 설레고도 모자라 늘 마음의 고향처럼 그리움이 있는 그곳, 저에게 혹은 산중을 찾는 사람들에게 한번쯤은 가쁜 숨을 고르며 맑은 물 한 모금으로 목 축이고 지친 영혼 쉬어가게 하는 그곳, 미술관으로 갔습니다.
두 팔을 벌려 저는 당신의 혼이 깃든 작품이 있는 마당에서 바람을 느껴보고 싶었습니다. 당신의 평생 화두였던 바람! 그 바람처럼 왔다가 바람처럼 떠나셨지만.
모산재 산허리의 바위들은 무성해지는 나무들 사이에서 더욱더 아름답고 당신이 남기고 간 작품들도 초록 기운에 풀풀 살아나고 있는 듯 했습니다.
어느 날 시커멓게 턱수염을 기르고 머리 길러 동여맨 채 별난 모습으로 제가 사는 소도시에 출현하신 것은 저에게 적잖은 충격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당신과의 인연은 장구를 배우면서 시작되었는데 음악에 몰입하는 모습에서 무슨 이유로 그것도 화가라는 분께서 배우는 것일까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우연히 아름다운 바위산 황매산 모산재를 경비행기를 타고 지나다 바람이 지나가는 골을 발견하고는 터를 잡아 바람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는 당신의 이야기는 참으로 황당무계했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추구하는 예술 세계를 접하고는 그것도 자연과 더불어 꿈을 키워왔던 제 고향 산중 한 켠에서 당신의 예술적인 끼를 쏟아 부으며 자유인으로 아름답게 작품 활동을 하며 살아가시는 모습은 다시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바람개비 22개를 세워 바람이 지나가는 흔적을 느끼도록 바람흔적 마당을 만들고 불교의 대표적인 4가지 악기인 목탁, 범종, 운판, 목어와 바람을 이용해서 무심결에 흘리게 되는 바람의 소리들을 담아내고자 했던 바람소리 마당, 바람개비가 도는 횟수에 따라 목탁이 ‘딱따르르르’ 하고 울리면 뒤이어 목어가 조화로운 화음을 내도록 하는 작업은 저에게 그야말로 경이로움이었습니다. 마치 깊은 산사에 앉아 목탁과 풍경 소리를 들을 때처럼 마음이 청명해짐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좁은 통로를 통해 들어오는 바람을 조절하는 바람몰이 마당은 미완성으로 두고 떠나셨지만 그것을 위해 색소폰까지 배우시는 열정은 참으로 아름다움 그 자체였습니다.
어느 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연에 묻혀 바람 흐르듯이 작품을 하고 맨발로 다니며 땅속에서 솟아나는 기운을 받고 싶어했던 거침없는 자유인, 당신께서는 손수 미술관을 지어 예술의 길을 걷는 사람들에게는 전시의 기회를 주고, 또한 아름다운 작품을 서로 나눌 수 있게 하고, 스스로 섬기고 나누는 차마실이란 쉼터 공간에서는 누구나 자연과 예술을 이야기할 수 있게 하고 싶어했던 당신의 순수한 예술로의 의지는 바람흔적 미술관을 찾는 사람들의 기억속에 아름답게 각인되었습니다.
이렇듯 당신은 제게 젊은 시절 충격으로 와서 감동이 되었고 또한 제 인생의 잊지 못할 아름다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당신의 예술적인 감각은 제 안에서도 들끓고 있었던 끼들을 어떤 형태로든 발산해내도록 강한 의지와 소신을 주었고, 잃어버린 감성을 일깨워주기도 했습니다. 당신께서 추구하시는 작품 세계를 고집하며 걸으면서도 아이들에게는 무한한 동경과 자유를 심어주고자 했던, 그것 또한 제가 몸담고 있는 학교에서 저의 아이들을 이끌어가는 데 힘이 되고 있음을 절감합니다.
여유를 잊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는 바람이라는 작업을 통하여 마음 비움의 메시지를 주고 싶었던 당신! 그렇듯 당신과의 인연은 제게는 참으로 소중한 것이었습니다. 무엇보다 ‘공부는 때가 있는 것이다’ 하시며 제 인생의 수난기라 할 수 있었던 이십대 후반 시절, 대학원에 진학해서 계속 공부할 것을 권유해 도서관에서 끙끙대며 책과 씨름하던 그때, 그 좁은 시골, 당신의 별난 모습이 어떻게 비쳐질까 의식하지 않은 채 휘파람 불며 찢어진 청바지, 덥수룩한 수염에 머리 질끈 동여매고 격려차 찾아와 제게 커피 한 잔 건네주었던 고마운 기억이 생생합니다.
늘 앞날에 대한 불안과 초조함으로 혼란스러웠던 시절, 확신과 의지를 갖는데 당신이 살아가시는 모습은 제게 큰 힘이었습니다. 이제 다시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학문으로의 열정을 다시 갖도록 한 것도 또한 당신의 채찍질이었습니다.
이제야 조금은 당신이 입버릇처럼 말씀하시던 것처럼 한번쯤 눈을 돌려 하늘을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긴 것도 같습니다. 차를 몰고 가다 말고 바람을 느끼고 싶어 창 밖으로 손을 내밀어 바람에게서 묻어 오는 습기를 느끼고 바람을 감지하는 당신의 모습처럼 또한 맑아지고 싶은 마음 간절합니다.
지금쯤 몽골의 초원 어디쯤에서 터를 잡고 하나 둘씩 바람개비를 세우며 거침없는 자유인의 모습으로 또 어느메의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어른들에게는 바람을 통한 마음비움의 메시지를 전하며 예술가로서의 한 길 걸어가시는 모습 아름답노라 전하고 싶습니다.
해마다 5월이 오면 마음의 고향처럼 그리움에 젖습니다. 풋풋하고, 싱그럽고, 바람에 묻어오는 습기를 눅눅히 느끼는 이맘때 저녁 무렵이면 더욱더 …… 모처럼 내린 비에 그리움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