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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사람에게서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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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달의 이야기 - 김영실/인천교대 3학년 2004년 05월 267호
사람은 살면서 참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마음에 드는 사람이든 아니든, 나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이든 행복을 주는 사람이든. 그 사람들을 만났다는 것은, 또 그 사람들과 함께 했던 일련의 기억들은 미약하나마 지금의 나를 만들었고 앞으로도 계속 영향을 끼칠 것이라 생각한다.
나에게 잊지 못할 스승이라 하면, 일반적으로 본받을 만한 사람이나 훌륭한 성인들을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세 친구가 있으면 그 중에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 하듯, 살면서 겪는 일련의 경험들이 모두 다 나의 스승이 되는 것을. 정말 좋은 사람을 만나서, 이 사람의 이 점은 본받아야겠다 여기고, 정말 사악한 사람을 만나서 나는 이러지 말아야겠다 여기면서 학교에서보다 더 좋은 스승을 만나고, 더 많은 것을 배우는 것 같다. 물론 학교에서의 교사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나 역시 좋은 선생님을 만나서 정말 큰 변화를 겪었기 때문이다.
이제 갓 20대에 들어선 나 같은 사람은 대부분의 경우, 선생님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한 사람의 생활태도나, 사고방식, 나아가선 진로까지도 선생님의 영향을 참 많이 받는다. 그래서 선생님이라면, 그 사명감이나 책임감으로 참 어깨가 무거울 것 같았다. 고등학교 때 친구들과 ‘의사’의 책임감에 대해 논할 때, 나는 ‘교사’의 책임감에 더 큰 비중을 두었었다. 물론 한 사람의 생명을 책임진다는 것이 얼마나 막중한 일임은 알겠으나, 교사란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이란 것이다. 나 역시 살면서 그런 선생님을 한 분 만났고, 그 덕에 친구의 말대로 인생까지는 아니더라도 학창시절이 참 많이 바뀌었었다.
중학교 1학년 때, 내 마음과 몸은 참 가난했었다. 아버지 사업은 실패했고, 난 정든 우리 집에서 떠나와야만 했다. 모든게 낯설었고 불평과 불만뿐이라, 될 대로 되란 식으로 하루하루를 살았다. 내 주변 것들에 대한 배신감에 몸서리쳤고, 내가 아닌 다른 것들의 거대함에 비하면 난 너무 작아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거라며 밑도 끝도 없이 추락만 해갔다.
그때 그 선생님을 만났다. 과학 선생님이셨는데, 잘 가르치기도 하셨지만, 선생님댁에 한번 찾아갔을 때, 나를 보고 선생님 어릴 적 얘길 해주셨다. 지독히도 가난하게 사셨다고 했다. 하지만, 이대론 안 되겠다 싶어 공부를 하셨지만, 대학입시 때 의지했던 할머니마저 돌아가셨고, 결국 진로를 바꿔 과학 선생님이 되셨다고 했다. 처음은 참 미련이 남았지만, 지금은 삶에 만족하신단다. 하지만 예전의 방황하던 자신의 모습이 생각나서, 청소년 상담을 공부하고 계신다고 하셨다.
참 부러웠다. 무언가를 꿋꿋이 해내고, 과거의 자신을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해줄 수 있다는게. 사람은 자신보다 부족한 처지의 사람을 볼 때 용기를 얻는다고 하지 않던가. 또 예전의 자신이 생각나서 미약하나마 나에게 힘이 되고자 하신 그분이 참 존경스러웠다. 자, 이제 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왜 내 소중한 시간들을 이렇게 헛되이 보내는걸까. 시간은 다시 오지 않는데, 나도 앞으로 저렇게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생각했다. 아직은 어리니까, 지금 상황들이 다 내탓이 아니라고. 내탓이 아닌것들의 책임을 내가 질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나는 상관없는 일이니까, 없으면 없는 대로,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공부를 하고, 학교를 다니자. 나중에 좀더 크면 내가 벌인 일들에 책임을 지면 될 거라며.
그렇게 중학교를 졸업했고, 집안은 어느 정도 안정이 됐고, 난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고등학교 다니는 3년동안 자취를 했다. 나는 겉으로는 단단해 보이지만 속은 무척이나 물렁한 인간이라, 참 많이 울었고 외로워했다. 그리고는 내 멋대로 내 한계선을 그어버렸다. 난 안 되는 거라고, 처음부터 되는 것은 없어왔다고. 그러니까 괜히 발버둥치다 내 멋대로 상처받고 치유불능 상태에 빠지기 전에 알아서 포기하자고 생각했다.
그때 내 인생에서 두 번째 스승이 등장했다. 이분은 절대 학교현장에서 만나는 선생님도, 유명 강좌에서 등장하는 강사도 아니었다. 항상 내 옆에 있었지만 그 존재가치를 몰라봤던, 약간 과장해서 진흙 속의 진주 같던 분이셨다. 내가 어떤 행동을 하든지, 어떤 실망을 안겨주든지 항상 나를 보듬어주던 분이셨다. 바로 내 엄마였다.
어렸을 때는 부모님을 참 많이 따랐다. 엄격한 아빠 밑에서 자란 나는, 맞기도 참 많이 맞았고, 항상 말려주는 사람은 엄마였다. 아빠가 매를 들라치면 엄마 뒤로 도망가곤 했다. 고집 센 부녀 사이에서 항상 힘들어하는 사람도 엄마였다. 나이가 점점 들어, 내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될 즈음, 난 엄마처럼은 살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못내 투정만 부렸고 불평만 해댔다.
하지만 왜였을까? 항상 옆에만 있어주던 엄마가 그렇게 힘이 되어 줄 줄은 몰랐다. 나 자신도 나에 대한 확신이 없는데, 엄마는 무너지는 날 보면서도 믿는다 말해주었다. 내가 참 자랑스럽다 했다. 다른 엄마들 해주는 것만큼 해주지도 못하는데 잘 해나간다며 앞으로도 그렇게만 하라고, 욕심만으로 가득 찼던 내 마음을 식혀주었다. 엄마는 예전부터 그곳에 있었는데, 태어날 때부터 내 스승이었는데, 왜 난 이제서야 엄마를 알고, 사랑하고, 존경하는 걸까? 예전엔 그렇게 닮고 싶지 않은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이렇게 생각한다. 내가 앞으로 어른이 된다면, 만약 자식이 생긴다면, 엄마만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엄마는 내 마음의 고향이었고, 가장 먼저 만난 스승이었다. 현실을 순응하고 사는 법, 다른 사람에게 평안을 주는 법,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하지만 난 그것을 잘 실천해 내지 못할 것 같다. 당시엔 그런 엄마가 그립기만 해서 시간마다 전화를 하고, 목소리를 듣고, 안심하면서 한 차례의 고비를 넘겼다. 그리고 난 더 성장했다.
물론 잊지 못할 스승이 단 둘이겠냐만은 굳이 토를 달자면, 스승의 역할은 가르침에 결부된다. 또한 가르침은 실천에 결부된다. 실천은 사람을 만들고, 그래서 내가 있다. 그러니까, 내 인생의 잊지 못할 스승은 지금의 나를 만드는 데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사람들이다.
사람은 사람에게서 배운다고 생각한다. 나 또한 그래 왔고, 앞으로 가르치는 것을 업으로 삼는 사람이 될 것이다. 배움으로써 사람이 된다 하니, 나는 사람을 만드는 사람이 되는 게다. 그것도 이왕이면 제대로 된 사람을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래서 나중에 그 사람이 세상을 살면서 무심결에 나의 흔적을 발견해준다면, 그 흔적으로 웃을 수 있다면 그것보다 보람 있는 일이 어디 있겠는가.
5월이고, 내 인생의 양대 스승을 내놓고 공경할 수 있는 날이 떡하니 달력에 버티고 있으니 멀지 않은 길 냉큼 달려가 감사하다며 어깨라도 주물러 드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