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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학인의 자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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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달의 이야기 - 해월/동화사 승가대학 강주 2004년 05월 267호
우리는 각기 삶 안에서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는 스승들을 만난다.
스승은 가슴에 남아 살아 계시는 분이다. 그 스승은 그 개인의 삶을 변화시키는 분들일 것이다. 나 역시 내 삶 안에서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시고 가슴에 남으시고 삶의 변화를 주신 잊혀지지 않는 많은 스승들과의 만남이 있었다.
내가 부처님을 만난 것은 내 삶에 최고의 축복이다. 내가 부처님을 만난 것은 내 나이 열일곱 살 때이다. 부처님과의 만남은 내 삶 전체에 변화를 주었다. 그분의 가르침 속에서 내 삶의 전부가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내 삶의 모든 것이다. 나의 모든 삶은 부처님 안에서만 의미와 가치를 가진다. 만약 내가 부처님을 만나지 않았다면 내 삶은 어떤 연으로 흘러갔을까? 참으로 두려운 일이다.

송광사에서 구산 노스님을 모시고 살 때 나는 행자였다. 한겨울 공양간 보조 공양주가 되어서 살 때 누룽지가 싫어 아무도 몰래 하수구에 버렸다. 노스님께서는 언제나 삼경이 되시면 전등을 드시고 온 도량을 돌아보시곤 하셨는데, 공양간의 하수구에서 얼어 있는 밥풀을 보시고 나를 불러 놓고 얼어 있는 누룽지를 떼어내시어 찬 물에 씻어 드시고 아무 말씀도 않으시고 돌아가시었다. 이 일은 내가 평생 잊을 수 없는 가르침이다.
내가 우리 노스님을 뵌 것은 나의 삶에서 잊혀질 수 없는 가르침들로 차 있다.
어린 나이로 노스님을 모실 때 약을 조금 태우고는 뜨거운 물을 타서 갖다 드렸더니 다 마신 노스님께서 ‘야야 앞으로는 물 타지 말고 그냥 가져와라’하시며 웃으셨다.
한번은 급한 마음에 바가지로 물을 뜨지 않고 물통을 넣어 떴더니 산책 가시던 스님께서 보시고 ‘야야 물은 이렇게 떠야 한다. 물방울이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우리는 물을 뜨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뜨는 수행자다’ 하시며 가시던 노스님이시다.
한번은 겨울에 눈이 많이 내려 추우실까봐 장작을 세 번 넣어드렸다. 한밤 열두시가 넘어서 부르셔서 갔더니 아랫목을 물로 닦고 계시었다. 장작을 너무 많이 넣은 것이다. 그때 스님께서는 ‘적당히 넣어라. 넘치면 이렇게 된다’고 하시고는 아무런 꾸중도하지 않으셨다. 이렇게 넉넉한 맘으로 철없는 나를 가르쳐주셨다.

내 삶을 변화시켜주신 분은 은사이신 성암 종범 스님이다.
나는 스님에게서 내 삶의 길을 본다. 스님께서 내 삶에 변화를 주신 것은 수행자의 삶을 오늘도 보여주시기 때문이다. 행자 때 혀를 깨물면서 중이 되려 할 때 스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다.
“삶은 너 혼자 가야 한다. 교만과 아집으로는 수행자의 길을 갈 수가 없다.”
이 말씀은 내가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한 생의 지표가 되었다. 배우는 자세로 살아가는 삶을 주셨다. 스님은 지금도 흔들리지 않으시는 삶을 몸으로 보여주신다. 스님 옆에는 한번도 불경이 떠난 적이 없다. 내가 책을 스승으로 삼게 된 것도 사실 스님의 말없는 가르침 덕분이다.

내가 만난 스승 중에 내 삶을 일깨워주신 것은 사람이 아닌 자연이 있다.
나는 산에 살면서 자연을 통하여 삶을 읽기 시작했다. 자연은 삶들보다 더 깊은 내용으로 다가왔다. 이치와 순리를 알게 하였다. 이 자연을 알게 하신 분이 지리산 수도암에 계신 평전 노사이시다. 스님을 만난 것은 내가 강원을 졸업하고 중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삶을 모색할 때 자생 경제의 토대 위에서 살아야 하겠다고


다짐하면서 노동을 통한 수행자 삶을 찾을 때이다. 스님을 찾았을 때 스님께서는 지리산 천왕봉에서 묵언정진 하시다 막 내려온 무렵이다.
평전 스님 밑에서 노동을 배울 때 스님은 나에게 자연의 삶을 몸으로 보여주셨다. 이런 일이 있었다. 어린 내가 묵은 밭을 열심히 개간해놓았더니 외출하고 오신 스님께서 보시고는 ‘야 미친놈아! 그늘이 많은 곳은 농사가 안 되는데 이치도 모르는 놈이 무슨 일을 하냐’고 호통치셨다. 그러면서 밭 골을 보시고 ‘세상사람은 이익에 일하지만 중은 수행으로 일한다’하셨다.
또 하루는 일하다가 너무 지쳐서 새벽예불시간을 놓치고 잠들어 있을 때 ‘야 예불 안 하느냐? ’하시는 고함에 놀라서 일어나보니 4시가 훨씬 넘은 시간이라서 도량석이랑 종송이랑 예불을 십분 만에 다 올렸다. 아침 공양이 끝나고 차를 마시면서 ‘야 너는 어찌 마음이 그 모양이냐? 이왕 늦은 것 늦으면 늦은 대로 여법하게 할 일이지. 어찌 고양이 도망가듯 지랄을 하냐. 간 것이 돌아오는 것을 봤냐? 이 병신아! 밥이 아깝다’고 호통치셨다.
일본서 방학 때 인사를 드리러 와서 스님을 모시고 함께 지리산 화엄사 뒤편으로 산책을 할 때 문득 ‘야 저 물이 보이냐?’하시길래 ‘예 보입니다’ 하였더니 ‘어디까지 보여?’ 물으셨다. ‘여기서 저기까지 보입니다’ 하였더니 스님께서 ‘야! 이 병신아! 그런 눈으로 무슨 공부하냐? 저 흐르는 물에서 바다를 봐라. 저 물이 흘러서 섬진강으로 섬진강이 흘러서 하동포구로 가서 바다와 연결되어 있다. 어찌 흐르는 물에서 바다와 연결되어 있는 전체를 보지 못한단 말이냐?’ 하시며 호통을 치시는 것이었다. 이렇게 내 삶 안에서 자연을 삶으로 일깨워주신 스승이시다.

어린 시절 입문한 나는 많은 스승들의 은혜를 입었다. 그 중에서 이름 없는 스승들이 너무나 많다. 하루는 그 누구도 오라고 하지 않는 충청도 대천 앞바다가 보고 싶어서 걸망 메고 노을 지는 바다에서 놀다 달마저 보고 나니 시장기에 어느 허름한 식당에서 된장찌게 하나를 청하였다.
된장찌게 속에 구더기 몇 마리 있기에 주인을 불러 고기가 많아 못 먹겠다 하였더니 뚱뚱한 아주머니 물끄러미 쳐다보며 수저로 구더기 골라 한 입에 먹고는 ‘이제 고기 없으니 어서 드시유’ 하였다. 망설이는 나를 보고 ‘괜찮아유. 원래 된장에 구더기 사는 법이구만유’ 하였다
하도 어이없어 쳐다보니 ‘죽은 것도 못 드시는 분이 산 도道를 어떻게 닦아유’ 하였다.
그 말에 붉은 얼굴로 달 밟고 산으로 돌아왔다. 이렇게 사람들은 내 말없는 스승들이 되어주셨다.
부처님은 내 영원한 스승이시다. 자연도 내 스승이시고, 이 세상 사람들도 승속僧俗을 불문하고 모두 스승이시고, 책도 내 스승이시고, 이 세상 모든 것이 내 삶의 스승이다. 이제는 세상 모든 것이 스승으로 다가온다. 모든 것이 내 삶에 스승으로 살아오신다. 나는 앞으로도 무수한 스승들로부터 배우는 학인으로 살 것이다. 교만하지만 않다면 스승들이 언제나 내 옆에 계심을 나는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