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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타일러와 애니미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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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이뭐꼬 - 법진 / 해인강원 강사 2004년 05월 267호
종교는 인간과 세계에 대한 총체적이고 온전한 앎을 추구한다. 이에 많은 사상가들은 종교를 초월적인 어떤 것으로 이해하고자 한다. 에드워드 타일러(Edward Burnett Tylor, 1832-1917) 만하더라도 ‘세계는 자각력을 갖고 있는 인격적인 힘에 의해 통제되고 있는가, 아니면 인격적인 힘과 자각력 등을 모두 가지고 있지 않은 단순한 것인가?’라는 질문을 통해서 종교에 대해 답하고자 하였다.
타일러는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신화와 단편적인 종교적 사실들을 광범위하게 검토한 후 애니미즘(Animism)이론을 제기하였다. 청년 시절에 중남미를 여행하고 돌아온 후 인간의 관습과 신앙에 대한 인류학적 연구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였고, 급기야는 선사시대의 고고학적인 발굴 성과나 당시에 존재하고 있던 원시부족 공동체를 통해 원시 상태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관습과 신앙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그런 연구의 결과물은 1871년에 〈원시 문화(Primitive Culture)〉라는 이름으로 출판되었다.
〈원시문화〉가 출판될 즈음, 빅토리아 영국인들은 기본적으로 매우 경건한 종교적 성향을 갖고 있었다. 한편 일단의 철학가, 역사가, 그리고 지질학 분야의 자연주의자들은 자연과 인류 사회가 장기간에 걸쳐 발전해왔다고 하는 사상에 매료되고 있었다. 그러던 중 1859년 찰스 다윈(Charles Darwin)이 〈종의 기원(Origin of Species)〉을 발표하여 자연의 선택에 의한 진화론을 제기하였다. 빅토리아인들이 보기에 진화론에는 성서의 내용과 서로 상이한 점이 있었지만, 그렇다고 무턱대고 거부할 수 없었다. 타일러가 〈원시문화〉에서 모든 종교적인 신앙 체계의 기원에 대한 이론을 제기한 것은 인간의 역사와 문화가 원시에서 문명으로 직선적으로 발전한다는 진화론적 사고에서 나온 것이었다.

인간 문화의 양상
타일러가 보기에, 인간이 이성적으로 사고하기 때문에 모든 문화가 보편적인 방향으로 진화해올 수 있었다. 원시인들 사이에서 널리 사용된 주술도 ‘인간의 가장 밑바닥에 놓여 있는’ 관념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에서 인간의 이성적 사고를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타일러는 인간이 이루어낸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것 가운데 언어의 발달과 수학의 발견으로부터 공히 합리성의 원리를 발견하였다. 두 경우 모두 발생 초기에는 자연의 소리를 흉내내는 단어와 손가락 발가락에 근거한 숫자 세기 등 매우 단순한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런데,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이러한 관념은 오늘날 어린이들이 배우는 그리고 모든 문제에 쉽게 적용할 수 있는 말과 숫자라고 하는 매우 복잡한 제도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을 이름하여 ‘진보’라고 한다는 것이다.
신화도 일견해서 보면 비이성적인 개념과 우스꽝스러운 이야기로 가득 차 있지만 사실은 이성적인 사고를 바탕으로 생겨난 것들이다. 다시 말해서 ‘모든 개념을 고정된 형태’로 논리적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자연적인 욕구에서 생겨난 것이다. 신화는 역사상의 전설적인 인물들의 삶에 그럴싸한 상상의 사건들을 연관시키기도 한다. 이럴 경우, 신화는 언어에 의해 논리적으로 체계화된다. 또 어떤 신화는 성姓을 가진 언어의 영향을 받아 인간의 행위와 자연간의 관계를 유추하고자 한다. 만일 폭풍의 시끄러움이 성난 인간이 폭발하는 소리와 같고 그리고 강우가 슬픔의 눈물을 암시하는 것이라면, 신화에서 어떻게 자연계의 위대한 힘이

동물과 인간의 행위와 동일한 것이도록 꾸며질 수 있었을까. 스칸디나비아인들은 로키(Loki)신이 지하에서 몸부림할 때, 그리스인들은 프로메테우스(Prometheus)신이 발버둥칠 때, 그리고 캐리비안들은 지모신이 댄스할 때 지진이 일어난다고 이해하였다.

종교의 기원
당시 빅토리아 영국인들이 종교를 신에 대한 신앙인 것으로 이해하였던 반면, 타일러는 종교가 ‘영적인 존재에 대한 믿음’이라는 최소한의 정의를 내놓았다. 타일러가 보기에, 위대하건 왜소하건, 원시적이건 현대적이건 간에 모든 종교가 공유하는 하나의 특성은 인간과 같이 생각하고 행동하고 그리고 느끼는 영적인 것에 대한 믿음이었다. 신화와 마찬가지로 종교의 본질도 모든 것들의 이면에 숨겨져 있는 살아 있는 그리고 인격적인 힘에 대한 믿음인 애니미즘(라틴어 ‘Anima’에서 유래한 것으로 이는 ‘영’ 또는 ‘영혼’을 의미한다)에 있었다. 게다가, 애니미즘은 매우 오랜 역사를 가진 인간의 사고 형태로, 모든 인류의 역사 속에서 두루 발견된다. 그러므로 애니미즘이 무엇인가에 대해 답하기 위해서는 ‘인간은 어떻게 그리고 왜 자연적인 것들을 영적인 실재로서 인정하게 되었는가?’에 대해 답할 수 있어야 한다.
신앙심이 깊은 사람들이라면 하느님(God)과 같은 영적인 존재를 믿는다고 말하고 싶을 것이다. 타일러가 보기에 신성의 계시에 의지하는 것은 개인적인 고백으로 호감을 줄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렇다고 과학은 아니었다. 인간이 어떻게 정신적인 존재를 믿게 되었는가 하는 문제는 최초의 종교적인 개념에 대해 답할 수 있는 이성적인 심리과정을 추론함으로써 답할 수 있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초기의 인간들도 의심의 여지없이 자연의 세계를 깊이 관찰하였고 그리고 그것을 논리적으로 체계를 갖추어 설명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원시인들은 어떤 관찰을 했던 것일까? 그리고 그들은 어떤 설명 방식을 선택했던 것일까? 이와 관련하여 타일러는 ‘죽음’과 ‘꿈’이라고 하는 두 가지 사실을 주목하였다. 원시적인 단계의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의 신체 사이에서 어떤 차이를 발견하였을까. 그리고 무엇이 사람을 잠에서 깨어나게 하고, 잠들게 하고, 혼수상태에 빠지게 하며, 병들고 죽게 한다고 생각하였을까. 또 다른 하나로 꿈속에 나타나는 인간의 형태는 무엇이라고 이해하였을까.
초기 인간들은 모든 인간적인 존재가 마음이나 정신적인 원리에 의해 움직인다고 생각하였다. 그들은 이러한 영혼을 ‘희미하고 실체가 없는 인간의 모습, 그 본질상 망상, 필름, 또는 그늘, 살아 움직이는 개인에게 삶과 사고를 일으키게 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이러한 가정하에, 만일 영혼이라고 하는 개념으로 인간의 움직임이나 행위, 그리고 변화를 설명한다면, 왜 이러한 원칙으로 인간 이외의 다른 세계를 설명하는 데 적용할 수 없는 것인가? 왜 식물이나, 나무, 강, 바람, 동물, 심지어는 별들과 행성들이 영혼에 의해 움직여야 하는가? 게다가, 영혼이 움직이는 물체로부터 떨어져 나갔다고 한다면, 눈으로 볼 수 있는 자연적인 것들 이면에 구체적인 물체를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이 존재하는가? 마지막으로 무엇보다도 우리가 신이라고 부르는 어떤 초월적인 신들이 과연 존재하는 것인가?
타일러의 주장에 따르면, 종교적 가르침이 자연이 어떻게 작용하는가에 대해 설명하기 위한 이성적인 노력의 산물로 생겨난 것이었다. 이와 같은 관점으로 본다면, 모든 것은 꽤 분명해 보인다. 영혼이 인간에게 생명을 불어넣는 것과 같이 마음이 세상에 생명을 불어넣는 것이다.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타일러는 원시인들의 애니미즘 이론이 종교의 기원을 설명할 수 있는 매우 적극적인 대안이라고 생각하였다. 예컨대 내생의 문제만 하더라도 애니미즘을 통해 통일된 이해를 할 수 있다. 불교나 힌두교 전통에는 환생에 대한 믿음이 널리 보편화되어 있다. 반면에 기독교나 이슬람교 등 서양의 종교에는 영혼의 부활과 불멸의 이론이 있다. 이러한 것들은 애니미즘의 관점에서 사후에 영혼의 삶을 연장한다는 방식으로 이해될 수 있다.
애니미즘은 전 세계에 널리 퍼져 있는 보편적인 관념으로 ‘인간과 자연에 대한 일반적인 철학’이었다. 왜 신들이 인격을 갖게 되었는가에 대해 의문을 갖고 있다면, 그 신이 인간의 영혼을 모델로 한 신령이었다는 점을 감안하지 않으면 안 된다. 원시적인 장례 의식에서 왜 죽은 사람에게 무언가 먹을 것이 주어지며 그리고 위


대한 사람을 위한 장례식에 왜 인간을 간혹 희생시키는가에 대해 묻는다면, 애니미즘에 대한 믿음 때문이라고 대답해야 할 것이다. 먹을 것을 주는 것은 무덤 너머의 새로운 장소에 있는 영혼의 자양을 도와주는 것이고, 인간을 희생시키는 것은 왕이나 왕자들이 살아생전에 누렸던 것과 똑 같은 삶의 방식으로 죽음의 세계에서도 그들에게 시자의 영혼을 제공하는 것이다. 왜 미국의 인디언들은 그들끼리 이야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동물들에게 이야기를 건네는 것일까? 동물도 그들과 같이 영혼을 소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왜 물이 움직이고 나무는 자라는가? 왜냐하면 자연에도 영혼이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모든 것은 애니미즘이라고 하는 창을 통해 설명할 수 있는 것이다.

종교적인 사상의 발전
역사의 다른 것들과 마찬가지로, 애니미즘도 역시 성장과 발전이라고 하는 과정을 거쳤다. 우선 고대인들은 개별적인 영혼을 그들이 보아온 나무나 강, 그리고 동물들과 관련된 작고 구체적인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 후, 영혼의 힘이 점차 강해지기 시작하여, 하나의 나무가 가지는 영혼은 점차 그 힘에서 성장하여 일반적으로 숲이나 나무들의 영혼으로 바뀌었다. 여러 차례의 과정을 거치면서, 동일한 영혼도 또한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대상물로부터 점점 더 분리될 수 있는 것으로 간주됨에 따라, 그 영혼은 자신의 정체성과 특징을 가지게 되었다.
신화에서 흔히 발견되는 복잡한 다신교주의는 애니미즘의 관점에서 보면 문화적인 후퇴라기보다 진보에 속하는 것이었다. 고대 그리스에서, ‘미개’의 단계는 호머 시대 이래의 ‘야만’의 단계라고 부르는 새로운 문명의 시대를 낳았다. 미개의 시대에서 인간은 사냥하고, 채집하고, 간단한 마을을 이루어 거주하였으며, 신성에 대해 초기 단계의 간단한 개념에서 결코 벗어난 적이 없었다. 일단의 종교 개념으로 지방의 나무나 강들의 신이 존재하였고, 이보다 상위 개념으로 바람과 비, 그리고 태양의 신이 있었다. 태양신이 시내를 바싹 마르게 할 수 있었고 또는 비의 여신이 격노한 시내로 만들 수 있었던 반면, 지방에 소재한 강의 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왕이나 귀족회의가 그들의 백성들을 지배할 수 있었던 것과 똑같이, 왕인 태양(하늘)과 여왕인 지구는 그들의 강력한 대리인 또는 고문격인 바람과 비, 그리고 계절을 동원하여 자연계를 통치하였다.
이와 같은 복잡한 다신교적 제도는 야만시대에 매우 전형적인 것들이다. 그러나 다신교 제도가 하나의 신, 즉 하나의 최고신만이 절대 신성한 자리를 차지하는 방식으로 조직화된다면, 문화사적으로 가장 높은 단계에 이른다. 그리고 대부분의 문명들은 최고의 신을 믿는 애니미즘의 가장 마지막 단계로 옮겨간다. 유대교와 기독교는 이와 같은 마지막 단계에 해당되는 예들이다. 이들 두 종교는 선사시대부터 기나긴 발달 과정을 거쳐 최종적인 단계에 이른 것이다.

애니미즘의 쇠퇴와 사상의 발달
타일러와 같은 진화론자에 따르면 종교는 나무나 바위의 신에 대한 최고의 원시적인 믿음으로부터 현재 유대교와 기독교 등 유일신교나 불교나 유교 등 윤리 종교로 단선적으로 발전되어왔다. 역사에서 종교의 전파가 아무리 위대한 것이었다고 할지라도 그리고 그 호소력이 아무리 컸다고 할지라도, 본질적으로 애니미즘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 것이다. 그렇지만 과학적 이해의 토대에 서면, 세계는 보이지 않는 신성에 의해 생명이 불어 넣어진 것이 아니다. 바위는 자체 내에 환영이나 유령을 갖고 있지 않다. 식물이 자체 내의 비밀스러운 생명이나 영혼에 의해 성장하는 것은 아니다. 태양과 바다는 아폴로신이나 포세이돈 신의 기이한 이야기와 아무런 관련이 없고, 식물은 그들의 섬유질 속의 탄소 작용으로 인해 성장하며, 바람과 물은 원인과 결과라고 하는 철칙에 의해 움직이는 미분자의 강력한 움직임에 대한 이름에 불과한 것이다.
미개의 시대에 추론의 과정을 통해 애니미즘을 발견하였듯이 과학의 시대에는 추론의 동일한 과정을 통하여 애니미즘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타일러는 미개인들과 원시인들의 허위성이 과학의 진리 앞에서 물러나야 할 것이라고 결론 맺었다. 자연계의 영역에 머물고 있던 애니미즘적 신들은 비인격적인 원인과 결과를 강조하는 과학적인 방법론에 모든 것을 양보 해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