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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자 날에 유감有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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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마의 방 - 조흥식 2004년 05월 267호
조흥식님 ‘장애인 천국’.
우리 나라의 장애인 대우도 어지간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뜻인가? 흐뭇한 일이다. 하지만, 혜택을 고루 받지 못하는 이도 없지 않다. 그래서 불평 역시 적지 않다.
4월 20일 장애인의 날을 맞아 사회 각계에서 장애인 지원대책이 실질적으로 확충되어 가고 있다. 수당도 두 배로 늘려 중증 장애인 13만 8500명에게 월 24만 2천원이 지급되는 등 장애인 복지 발전 5개년 계획이 추진된다. 그 외에도 교통·교육 등 여러 편의시설이 눈에 보이게 달라졌다.
하지만 이런 정책이나 배려는 결코 해결책이 될 수 없다. 근본적인 대책은 보다 더 적극적이어야 하리라. 병후의 처방도 필요하다. 그러나 점점 중요한 것은 그 예방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앞날을 더 걱정하게 되는 것은 장애인 수가 더 늘어난다는 통계이다. 그뿐 아니라 통계숫자를 우리의 힘으로 줄일 수 있음에도 우리에게 그것이 불가능하게 여겨지는 것은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들의 등한等閑과 타성惰性에 있다는 것이다.
장애자를 돕는 일은 평생 사업이지만 보다 장원長遠한 계획은 장애자가 생겨나지 않도록 하는 거기에 있어야 할 것이다.
세계가 지금 가장 중요시하는 21세기에 당면한 오늘의 문제는 경제가 아니라 사실은 인권일 것이다.
동물세계에서 장애자를 볼 수 없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간혹 없지도 않을 것이다. 그것 역시 인간이 만들어낸 공해가 없었다면…… 동물에 비해서도 인간의 체면은 말이 아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장애자의 통계숫자가 날로 늘어난다는 것에 어찌 요새 젊은이들이 전율을 느끼지 않겠는가. 자기들만은 여기에서 국외자局外者가 되어 있다고 생각하는가. 자식을 낳는다는 것이 결코 자신의 향락과 유희의 부산물일 수는 없다.
한 국가의, 한 사회의 일원이 되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비행기가 여러 부품의 집합의 공동체라면, 한 사회도 그 구성원의 기능 여하에 움직이듯이, 기계의 작동이 잘 되고 못 되는 것은 그 부속의 기능 여하에 달려 있음에 어찌 두말이 필요하랴. 준엄하게 그리고 냉혹하게 직언을 한다면, 내 삶이 흐트러지고 병적이라면 내가 만들어 낼 그 존재가 어찌 기본을 닮지 않겠는가. 과학은 신도 속일 수가 없다.
질서. 과학과 무엇이 다를까. 인과因果·업보業報, 이것도 과학과 남이 될 수 없을 것이다. 다른 것은 믿지 않아도 된다. 과학을 아는 사람은 그것만으로 족하다. 우리 나라 장애자의 유전은 10%에 지나지 않는 데 비해 태중에서 만들어지는 장애자가 그 대부분이라니……. 그 중요한 사실을 우리는 너무도 오랫동안 망각해왔다. 늦기는 했지만 다시 배울 수 밖에 없다. 오늘의 젊은이들이 내일의 부모가 되어 장애자를 만들어내지 않기 위하여.
우리의 석학 정인보鄭寅普 선생의 《태아신기胎兒新記》의 서문 일부를 소개 해본다.

“(전략) 태교胎敎의 설說은 예기禮記에 처음 나왔으나 너무 간략하다. 그리고 최근 서구에서 태교 대신 우생優生을 말하였으니 우생이란 것은 그 자손을 우수하게 하는 것이다.
(중략) 그러나 우생학은 의료양생보다 나은 정도에서 그칠 따름이요, 음양이 화和하여 있는 그 시초에 기르는 태교에 비하여는 방법과 기술이 훨씬 뒤떨어져 있다. 하물며 인仁으로 온후하게 하며 의儀로써 감싸고 덕德으로 가르치는 그 교묘한 태교법에 비하여는 참으로 아직 한참 멀었다.
저자著者 숙인淑人의 이 책은 먼저 아비의 행동(父行)과 어미의 거동(母儀)을 거듭 언급하여 아이를 밴 어미들로 하여금 순하고 바른 도(順正之道)를 따라 행하여 기와 혈(氣血)을 잘 다스려 바야흐로 태아가 닮도록 하였다.
(중략) 눈으로 보는 것을 경계하심은 사물을 보고 변함을 논하신 것이요, 귀로 듣는 것을 경계하심은 소리를 들어서 마음에 느낌을 논論한 것이다. (후략)”

〈태교신기胎敎新記〉에는 ‘아비 낳음과 어미 기름과 스승의 가르침이 모두 한가지로서 의술醫術을 잘하는 이는 아직 병들지 아니함을 다스리고, 가르치기 잘하는 이는 태어나기 전에 가르친다. 스승의 10년 가르침이 어미가 잉태하여 열 달 기름만 같지 못하고, 어미 열 달 기름이 아비 하루 낳는 것만 같지 못하다’고 하였다.
태아를 기르는 어미뿐만 아니라, 온 집안이 항상 거동을 조심해야 하며, 조급하고 경솔한 짓, 두렵고 흉악한 일, 불길하고 난처한 일 같은 것은 임부에게 느끼게 해서는 안 된다. 결과적으로 태아의 기를 병들게 하여 전간癲癎을 일으키게도 한다.
요컨대 뱃속의 태아와 그 어미는 혈맥이 하나로 통하고 있으므로 임부의 희로애락이, 그리고 마시고 먹는 것이, 행주좌와어묵동정이 그대로 아기에게 투영되기 때문이다.
《아함경》에도, 보살이 모태母胎에 깃들 때에는 그 어머니는 자연스럽게 계율을 지키게 된다고 한다. 살생하지 않고 음행이나 망언을 하지 않고 곡주와 과일주조차도 마시기를 삼간다.
뿐만 아니라 보살을 잉태한 그 어머니는 남자에 대한 욕정이 생기지 않고 어떤 남자에게도 굴하지 않는다 한다. 게다가 보살이 모태에 깃들어 있을 때에는 그 어머니는 오욕을 삼가하며 어떠한 병에도 걸리지 않으며 편안하고 즐거움을 느낀다. 다시, 태중에 있는 보살의 형체조차도 볼 수 있다. 오색이 찬란한 장엄 속에서.
성인聖人을 잉태하게 되면 그 어머니는 그 보살의 위신력으로, 그동안 산고 대신에 편안하고 환희와 안락을 느끼게 된다.
신사임당申師任堂이 율곡栗谷을 낳았고, 태임太任이 문왕文王을 낳았다는 것은 세상에 모르는 이가 없건만, 어떻게 해서 그런 훌륭한 아들을 두었는지는 잘 모르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