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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의 숲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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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설세설 - 성전 2004년 05월 267호
산중은 온통 안개다. 길이 보이지 않는다. 마을도 저 먼 바다도 지금은 안개에 묻혀 자신의 모습을 감추고 있다. 문득 신선이 된 느낌이다. 인간 세계에 살지만 인간이 아닌 듯한 착각이 든다. 평화롭다. 인간이 아닌 신선이 된 듯한 이 느낌이 나를 편안하게 한다. 잠시 인간이기에 가졌던 슬픔도 열망도 비애도 놓아버린다. 존재의 무게가 훨씬 가볍게 다가선다. 신선은 어떤 것일까. 나는 문득 신선에 대해서 궁금해진다. 그들은 부처와 인간의 중간 존재일까 아니면 부처와 인간을 떠난 별개의 존재일까. 안개 속에 숨어서 나는 잠시 만화와도 같은 생각을 한다.
어쩌면 나는 경직된 사고 속에서 살아왔는지도 모르겠다. 의무적으로 자비와 사랑에 대해 생각하고 말해 온 것만 같다. 그러나 감동이 함께 하지 않은 자비와 사랑은 실천이 되지 못했다. 승려이기 때문에 이러해야 한다는 당위는 나를 강요할 수 있었지만 나를 움직일 수는 없었다. 나는 언제나 사랑과 자비가 내게 감동으로 다가와 나를 추동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것은 얼마나 기쁨에 일렁이는 삶이겠는가. 그리고 그것은 또한 얼마나 행복한 삶이겠는가.
스승은 내게 말씀하셨다. 너는 언제나 수행이 부족하다고. 수긍했다. ‘그래, 내게는 수행이 부족해.’ 스승은 다시 말씀하셨다. “나는 다 보고 있네. 영가들이 와서 안타깝게 머물다 가는 모습이 다 보인단 말 일세. 자비심 없이 어찌 천도가 되겠는가. 자네도 자비심을 가지고 재를 모시도록 하게.” 스승의 자비에는 감동이 있었다. 그래서 스승의 자비는 아름다운 실천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나의 자비에는 감동이 없다. 그것은 수행의 차이인 것이다. 수행자의 가슴에는 그렇게 자비가 넘친다는 것을 나는 그 때 보았다. 수행은 차고도 넘치는 자비의 샘을 파는 일이라는 것 역시 그 순간에 알 수 있었다.
안개가 숲을 이루어도 내 가슴은 젖지 않는다. 건조한 것이다. 머리를 깎고 산 세월이 짧지 않지만 나는 여전히 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나라는 놈은 때로 욕망의 산이 되어 자신을 가두고 때로는 유혹의 파도가 되어 자신을 휘몰아친다. 수행의 세월은 그때마다 다시 어둠이 되어 길을 지웠다. 나는 언제나 어둠이 없는 ‘수행자’로서의 나를 만나고 싶었다. 그것은 나의 양지인 것이다. 따뜻하고 밝은 그 자리는 지금의 나를 벗어나면 어디서나 만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스승은 내게 자신을 벗어나는 그 길을 일러주었다. 그것은 오롯이 수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샘처럼 솟구치는 자비를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자비 안에서는 너와 내가 사라진 우리라는 존재의 양지를 만나게 될 거라고 깨우쳐주었다. 너와 내가 하나가 된 우리의 자리에는 가슴 저 밑에서부터 차오르는 생명의 감동이 느껴질 것만 같다.
안개의 숲에서 나는 다시 밝고 따뜻한 존재의 양지를 향해 난 길을 찾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