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년 해인강원에 있을 때의 일인 듯 싶다.
국가 기간산업인 철도 노조의 파업이 장기화 되면서 조합원들이 조계사에서
농성을 벌인 적이 있었다. 한국불교의 중심인 조계사는 불교의 사회참여라는 대의 아래 처음으로
철도노조의 농성을 허락하였고 철도노조는 장기간 농성에 돌입한 상태였다.
나는 조계사에서 일을 보고 영등포까지 가기 위해 종각 전철역에 줄을 서 있었다.
줄은 한 1m 정도 늘어서 있었고 내 차례가 되어 “영등포 한 장요!”라며 역무원에게 말했다.
그 역무원은 가슴에 붉은 리본을 달고 있어 얼핏 조합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역무원은 표를 끊어주는 듯 싶더니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합장하며 이렇게 말했다.
“저…… 스님들께는 ‘성불하세요’가 가장 큰 인사라면서요?
스님! 성불하십시오.”
그 많은 인파 앞에서 90˚로 합장 반배하는 역무원에게 답례도 못한 채
쭉 늘어서 있는 줄을 뒤로하고 걸어 나왔다. 기분이야 말로 다 할 수 없는 기쁨이었지만
너무도 갑작스런 상황이라 어찌해야 할지를 몰랐었다.
감격에 겨워 얼굴만 벌개진 채…….
2001년 범어사 선원 동안거 때의 일이다.
언제나 그러하듯 점심공양 후 한 시간 가까이 포행을 했다. 범어사 원효암에서
원효석대에 올라보고 의상대를 둘러 내려오면 근 한 시간 가까이 시간이 흐른다.
포행을 하고 범어사 대성암 계곡 쪽에 다다랐을 때
멀리서 30대 중반의 여인이 누군가를 기다리듯이 서 있었다.
그 앞을 지나려는데 그 여인이 여쭤 볼 말이 있다며
길을 가로막고는 간절함이 깃든 표정으로 말을 했다.
“스님…………! 어디로 가야 이 길의 끝이 보입니까……?”
“……???”
여인의 말을 듣는 순간 모든 것이 정지된 듯 온 몸이 꽁꽁 얼어붙는 것 같았다.
속으로는 ‘별 이상한 질문을 다하네!’하며 지나쳤지만 아무런 답을 못하고 여인을 뒤로 하며
돌아서는데 어찌나 뒤통수가 뜨겁고 얼굴이 화끈거리던지.
지금도 가끔 자문해 본다.
“어디로 가야 이 길의 끝이 보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