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미국 생활이나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나로서는 생활하면서 가끔 의아해 할 때가 많다. 특히 우리 아이의 학교에서는 기부금 신청서나 기금 마련을 위한 콘서트 혹은 바자회를 수시로 개최하거나 심지어는 가끔씩 초코렛이며 책까지도 판매한다. 대학교, 도서관, 박물관 등도 마찬가지로 대부분 기부금으로 설립되고 운영면에서도 많은 부분을 자원봉사자들에게 의지하고 있다. 박물관 입구에는 기부자들의 이름을 빽빽하게 새겨 놓았으며 기부자의 이름을 딴 건물, 기증 받은 소장품에도 반드시 기부자의 이름을 밝히고 있다.
지난 호에서는 샌프란시스코 아시아 박물관의 특별전 ‘고려시대, 한국의 깨달음’을 소개했다. 이번 호에서는 아시아 박물관의 상설 전시장을 안내하고자 한다. 아시아 박물관은 샌프란시스코 시청 건너편에 위치하고 있으며 바로 옆에는 시립 도서관도 자리하고 있다. 원래는 다른 곳에 있었으나 시립 도서관을 10여 년 가까이 고쳐서 작년에 현재의 자리로 이전한 것이다. 시청 앞과 박물관 사이는 넓은 광장이 있으며 이 주변에는 유럽풍의 건물들이 즐비하여 낭만적인 분위기가 흐른다. 아시아 박물관에 가서 처음 안 사실인데 아시아 박물관 밑에 ‘아시아 미술과 문화를 위한 이정문 문화 센터’라는 별칭이 있고 박물관 입구에 이분의 흉상과 취지문이 있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이분은 실리콘벨리에서 기업을 하시는 한국 분으로 이 박물관에 무려 1600만 달러를 기부하여 모든 사람들에게 아시아 미술과 문화를 연구하고 또한 미국 사회에 적극 알리고자 하였다고 한다. 또한 2층에는 삼성전자에서 기부한 ‘삼성홀’이 있어 이곳에서 강연 등의 특별 행사를 주로 한다고 한다.
박물관의 구조를 보면 1층은 특별전을 할 수 있는 몇 개의 갤러리 등이 있다. 2층과 3층은 모두 31개의 작은 갤러리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 속에는 한국, 일본, 중국, 티베트, 동남아시아, 인도 등으로 나뉘어져 있다. 각 지역의 미술은 주로 시대별이나 주제별로 세분되어 다양한 미술품들이 전시되고 있으나 역시 불교미술이 가장 많았다.
먼저 한국 갤러리는 모두 세 곳의 전시장으로 나뉘어 있고 특별전에 출품된 고려 불화와 고려청자 몇 점과 삼국과 통일신라 소금동불 5점이 있었다. 금동여래입상(700~800년, 총 높이 47.3㎝)은 전형적인 통일신라시대 소금동불의 특징을 보이고 있다. 불상은 대의를 걸치고 오른손은 가슴 위까지 들고 왼손은 아래로 한 내영인來迎印을 취하고 있으며 나발에 높은 육계와 높은 연대 대좌까지 갖추고 있다. 전체적으로 얼굴과 양손을 크게 표현하고 있다. 얼굴 표정은 엄숙하며 하반신의 대퇴부에 힘을 주어 볼륨을 강조하고 그 밑으로는 파도가 흘러내리듯이 옷 주름을 표현하고 있다. 다음으로 금동승상(백제 600~660년, 크기 10㎝)은 너무나 작고 귀여운 모습을 하고 있어 눈에 띄었다. 스님의 상임에도 불구하고 흔치않게 훌륭한 연화대좌까지 갖추고 있다. 가사만을 걸치고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아 가슴 앞에서 합장하고 있으며 두 눈은 아래로 깔고 있고 입 주위에는 온화한 미소를 머금고 있다. 이외에도 조선시대의 회화와 백자, 조각보 등도 전시되어 있었으나 다른 지역의 갤러리와 비교해서 전시 작품 수는 가장 적었다.
일본 갤러리는 불교미술 전시실이 따로 있으며 주로 헤이안(平安) 시대 이후의 불상들이 많았다. 나라시대(710~794년)의 작품으로는 소조塑造로 만든 범천梵天과 제석천帝釋天이 나란히 전시되어 있는데 둘 다 얼굴은 작게 표현되고 귀여운 어린아이의 얼굴을 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양감은 별로 없었다. 일본 나라시대에 제작된 나라(奈良) 고후쿠지(興福寺) 절의 소조상들과 같은 느낌을 가진다. 이 시기에 일본에서 만들어진 불상들은 많은 상들을 그룹으로 법당에 안치한 경우가 많았기에 비교적 작은 크기의 소조상들이 많이 조성되었다. 다음으로 주목되는 상은 헤이안 시대(1100~1185년)의 성聖관음입상이다. 이 상은 등신의 크기로 얼굴은 둥글고 원만하며 눈은 상현달 모양을 하여 끝이 가늘게 처리되어 있다. 하반신이 길어 전체적으로 가느다란 느낌을 주는데 이 상도 역시 전형적인 헤이안 시대 후기의 작풍을 따르고 있다.
중국 갤러리의 경우는 가장 크고 작품 수도 많다. 특히 불상의 경우는 처음 방문한 우리를 어리둥절하게 만들 만큼 작품 수도 많았고 모두 우수하고 보존 상태도 지극히 좋았다. 아마도 내가 지금까지 미국에서 가본 곳 중에서 가장 많은 그리고 가장 뛰어난 불상들을 한자리에 모아두지 않았나 생각한다. 불상 전시실의 입구에 안치된 불좌상(338년, 높이 39.4㎝)은 제작시기를 알 수 있는 아주 귀중한 상이며 중국에서 아주 이른 시기에 제작된 상 중의 하나이다. 이 상은 인도 간다라풍의 스타일을 따르면서 중국적인 모습도 보이기 시작한다. 또 한 연꽃가지에서 부처님 전신全身의 7상이 나란히 피어나는 모습의 소금동불도 있었다. 수나라와 당나라의 보살상들은 화려한 장식을 하고 있으며 천의天衣는 대좌 부근까지 흘러내리고 있다. 자세는 허리를 약간 비틀고 있는 삼굴三屈의 포즈를 취하고 있다. 수나라와 당나라에서 조성된 불상들은 이후 우리 나라의 통일신라와 일본의 나라 시대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끼쳐 비슷한 작풍을 보이는 불상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인도 지역의 갤러리에서는 간다라의 힘차고 정갈한 보살상과 여래상, 마투라 지역의 온화하고 부드러운 느낌의 불좌상이 서로 비교할 수 있도록 배려되어 있었다. 또 스투파 장식 조각으로 사용되었던 부처님 중요 생애 부문에 대한 부조 조각들이 차례로 전시되어 있다. 이중 어떤 조각에서는 부처님의 상호나 천인의 얼굴이 마치 그리스의 조각들을 보는 듯한 것도 있었다. 마지막으로 동남아시아의 불상들은 나에게는 조금 생소하기는 했지만 심플한 장식이나 옷 주름 표현 등에 마음을 빼앗겼으며 불상의 얼굴은 당시의 동남아시아의 왕이나 귀족들을 나타낸 듯 하였다.
각 지역의 갤러리에는 그 지역의 문화와 역사를 설명하는 비디오 시설도 있어 함께 온 아이들의 학습에도 많은 도움을 주고 있었다. 샌프란시스코의 아시아 박물관에서 미국에 온 이후로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한 작품 한 작품을 설레는 마음으로 보았다.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왕복 6킬로쯤 되는 금문교를 걸어보기도 하고 케이블카를 타고 이리저리 시내를 돌아보기도 하였다. 또한 현대 미술관도 몇 곳을 다녀보았지만 역시 송충이가 솔잎을 먹고 살듯 나는 이곳 아시아 미술관이 가장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