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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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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담는 오솔길 - 진명 2004년 04월 266호
요즘은 어디를 둘러봐도 봄이 지천이다. 먼 산이나 가까운 산, 들이나 강가에도 봄이 널려 있다. 사람들도 겨울에 깊숙이 품었던 봄을 마음껏 드러낸다. 가벼워진 걸음걸이, 화사한 옷매무새 밝은 언어에 봄 향기가 묻어 있다. 이렇게 자연은 사람에게 변화를 통해 새로워지는 법을 선물한다. 이것이 자연과 사람이 더불어 사는 풍경이다.
사람은 다양한 감정의 표현으로 자기의 풍경을 만든다. 순간순간 일어나고 변해서 사라지는 희喜, 로怒, 애愛, 락樂의 감정으로 만들어가는 모든 행위가 다양한 자기의 풍경으로 나타난다. 말로써 다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의 감정은 때론 자기만의 눈빛이나 얼굴 표정, 크고 작은 행동에 다 담는다. 자기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도 표현은 되는 것이다.
기쁘고 즐거운 일이 있을 때나 사랑을 할 때 사람의 풍경은 어떤가. 아마도 너나 할 것 없이 먼저 얼굴빛이 밝아지고 웃음이 가득해진다. 가슴이 벅차고 언어가 유쾌하고 부드러워지며 콧노래가 흘러나오지 않을까. 그럴 땐 누군가가 좀 서운한 말을 전해도 마음에 깊이 스며들지 않고 가볍게 이해할 수 있다. 한없이 마음이 넉넉해지며, 발걸음은 흘러가는 새털구름의 무게 같고, 스치는 바람같이 가볍게 느껴진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족이나 친구, 사랑하는 사람과 기쁨을 나누고 싶어 하지만 혼자 조용하게 안으로 그 기쁨을 즐기는 사람도 있다. 세상 모든 것이 그냥 얻어지는 것이 어디 있던가. 언젠가는 자기가 그 기쁨의 씨앗을 뿌리고 가꾸었을 것이다. 그래서 더 가슴이 흥분되고 벅차서 웃음 대신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있다. 하늘을 향해 가슴을 활짝 펴고 두 팔을 벌려 멀리 웃음을 날리기도 하고, 마구 달리는 사람도 있다. 즐겁고 기쁘면 나누고 싶은 마음 때문에 누군가에게 선물을 준비하는 사람도 있고, 자기 자신에게 선물을 준비하는 사람도 있다. 조금더 넓게 마음을 쓰고 사는 사람이라면 기쁘거나 즐거운 일이 있을 때 어려운 이웃을 찾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기쁨을 나누는 모습도 다르다.
극에서 극은 통한다고 했던가. 극한의 기쁨과 슬픔이 만들어 내는 웃음과 눈물은 사람의 감정을 순도 높게 만든다. 자신의 기쁨으로 만들어내는 웃음이 일파만파 되어 주변을 밝고 활기차게 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을까. 자연이 선사하는 아름다운 풍경에 비교할 수 없을 것이다.
사람이 화내고 분노할 때의 풍경은 어떤가. 한 번 성내는 마음을 일으키면 백만 가지 장애의 문이 열린다고 했다. 이런 선인들의 말씀을 보면 가장 삼가야 할 감정 중의 하나이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감정을 교류하며 살다보면 화 한 번 내지 않고 사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다만 화나는 마음이 일어날 때 어떻게 마음을 다스리느냐 하는 것이 어리석은 사람과 지혜로운 사람의 차이일 뿐이다.
사람이 분노할 때 사람이나 일이 그 대상이 된다. 우선 얼굴 표정이 어둡고 거칠어진다. 얼굴색이 붉어지는 사람도 있고, 새하얗게 핏기가 없어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파르스름해지는 사람도 있다. 언어가 빨라지고 호흡이 거칠어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의외로 차분해지고 말이 없어지는 사람이 있다. 그런가 하면 전혀 표정이 없이 속으로 삼키는 사람도 있다. 화가 날 때도 기쁠 때 못지 않게 심장 박동이 빨라진다. 가슴이 떨리고 제어하기 힘이 든다. 그것은 즐겁고 사랑할 때의 가슴 떨림 하고는 분명 다를 것이다.
그 분노의 원인이 어떻든 소리를 질러 푸는 사람이 있고, 주변 물건을 닥치는 대로 부수는 사람도 있다. 술에 의지하거나 다른 대체물을 찾는 사람도 있으며 그냥 걸으면서 마음을 삭히는 사람도 있다. 이렇게 표현 방법이 사람의 체질과 성격에 따라 제각기 달라서 어떤 모습이 옳고 그르다고 말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자기감정 때문에 주변 사람에게 피해되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물론 이성적으로는 화를 내면 좋은 일이 없다는 것을 다 알지만 이성만 따라 살 수 없는 것도 우리네 보통 사람들의 삶이 아닌가.
그렇다. 즐겁고 기쁜 감정보다 분노하는 감정은 마음에 상처가 되기 쉽고 많은 문제를 동반하기도 한다. 그래서 백만 가지 장애의 문이 열린다고 했을 것이다. 오래 마음에 머물기도 하고 그 감정 때문에 큰 일을 그르치기도 한다. 좋은 인연을 어긋나게 하고 자기 자신을 상하게도 한다. 화를 내고나면 유쾌하고 시원한 마음보다 괴롭고 힘들어서 마음이 오래 무겁다. 그래서 사람들은 가능하면 화낼 일이 없도록 마음 다스리는 공부를 하며 노력하고 사는 것 아닌가 싶다. 분노가 마음 안에 오래 머물지 않도록 말이다.
하루 중에 잠시라도 자신이 타인에게 어떤 풍경이 되고 있을까를 생각해 본 일이 있는가. 우리 스님들의 생활이 지극히 단조롭고 본질적인 즐거움을 추구하다 보니 보통 사람들이 느끼는 즐거움이라고 할 것이 어디 있을까마는 그래도 생활 중에 소소한 즐거움은 있기 마련이다. 아마도 출가 이후 가장 즐거웠던 내 마음의 풍경은 아무래도 삭발을 하는 날이었을 것 같다. 무명초를 다 내려놓은 가벼움도 있었지만 삭발한 것만으로도 부처님 제자가 다 된 느낌 때문에 그 기쁨의 여운이 오래 갔다. 삭발하는 전날 저녁에는 가슴이 설레어 쉽게 잠들지도 못했다. 거울을 보고 또 봤다. 머리를 만져 보고 또 만져 보았다. 즐거운 마음을 다 표현하지 못해 하루 종일 히죽히죽 웃고 다녔던 내 마음의 풍경이 생각난다. 스님들은 즐거운 일이 있어도 호들갑스럽게 좋아하면 안 되는 것으로 알고 있었기에 즐거움을 다 표현하지 못했다. 마음에서 넘쳐나는 그 기쁨을 얼굴과 입안에 가득 머금은 사람처럼 볼이 웃음으로 가득 씰룩거렸다. 그리고 잔잔한 즐거움은 공부해가면서 가슴으로 체득되는 그 무엇들이다. 그것이야 다 말로 설명할 수 없지 않은가. 그저 속에 품은 풍경일 뿐이지.
그리고 가장 후회되는 풍경 하나가 있다. 출가를 서두르며 부모님을 설득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 나의 출가 여부를 놓고 가족회의가 거듭되던 날, 너무나 당돌하게 어머니 같은 인생을 살고 싶지 않다고 쏘아붙였던 일이다. 아들이 꼭 있어야 한다는 할머니의 그 고단한 시집을 견디면서 딸들을 교육시키고 뒷바라지하는 데 여념이 없어서 자신의 삶은 돌아볼 여지도 없이 살아온 어머니를 향해 마치 그 삶은 어리석은 삶이라는 듯이 그렇게 쏘아붙였던 것이다. 지금도 그때만 생각하면 가슴 아프고 후회되는 풍경 중의 하나다.
일으키고 나면 가장 힘들고 괴로운 진심, 성내는 마음 그것은 안하려고 노력하지만 나도 어찌할 수 없는 미완성의 사람인지라 때때로 화나는 마음도 일어난다. 그러나 이해관계에 얽혀서 사는 삶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게 가슴 밑바닥까지 뒤집어지는 그런 분심은 아직 일으켜보지 않았다. 다만 철저한 공부의 길에 대의심과 대신심을 일으키지 못하는 나 자신에 분노할 뿐이다. 외부에서 일어나는 것이야 잠시 바람처럼 스쳐가는 화가 아니겠는가. 가끔 인연 된 사람들의 분심을 일으킬 수밖에 없는 일과 인연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듣다보면 사람으로 감당하기에 참 힘든 고난이라는 생각을 할 때가 많다. 그래도 흐르는 시간 속에 그 무겁고 힘든 일들을 다 감당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사람의 마음은 세상에서 가장 큰 그릇이고 가장 위대한 힘이라고 생각한다.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 업설이나 윤회를 거론하지 않아도 바로 오늘 일어나는 자신의 감정이 만들어가는 풍경만 잘 볼 줄 알고 그 풍경이 전하는 메시지를 귀 기울여 들을 줄 안다면 세상을 지혜롭게 사는 사람이 아닐까. 바깥세상 풍경과 소통하고 햇살과 맑은 공기를 방 안으로 들이게 하는 창문 밖에서 자기 방 안의 풍경을 보는 것처럼 우리 육신의 육근의 창문 밖에서 자신을 바라보자. 그리하여 자신이 만들어가는 청정한 삼업으로 내일도 누군가에게 힘이 되고 위로가 되는 아름다운 풍경이 되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