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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법사 육군대령 원오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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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계삼소 - 이연정 2004년 04월 266호
육군교육사령부 내에 있는 군법당은 초라하기 이를 데 없다. 기역자 모양의 낡은 빨간벽돌 건물인데, 막다른 길이 아니었다면 지나쳤음에 분명하다. 그래도 건물 가까이 다가서니 제법 그럴듯한 석탑도 서 있고 처마 한쪽에 풍경도 달아놓았다. 그런가 하면 한편으로 기독교의 예수상이 좁은 마당을 향해 양손을 벌린채 서 있고, 그 옆으로는 천주교의 다소곳한 마리아상도 있는 것으로 보아 세 종교가 하나의 건물을 사용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풍경이 매달린 쪽이 군법당이리라.
안에는 군복을 입은 두 사람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 가운데서 원오 스님, 이종인 법사를 구분해내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육군중령을 나타내는 무궁화 두 개의 계급장이 국방색의 군복 칼라에서 빛나고 있었으니. 올 12월에는 대령 진급이 확정돼 있으니 무궁화 하나가 더 추가될 것이다. 대령은 군법사가 오를 수 있는 최고의 지위로 개인적 영광뿐 아니라 불교계에서도 몇 안 된다는 점에서 경사가 아닐 수 없다.
교육사령부로 발령받아 온 지 겨우 15일밖에 지나지 않아 요즘은 법당 살림 정리하느라 바쁘다. 워낙 깔끔한 성격이다. 원칙적인 군인정신에 출가자들 특유의 결벽증까지 합쳐져 주변이 너저분한 것은 용서가 안 된다. 그것이 어디 환경미화뿐이겠는가, 자기관리 역시 철저함을 의미한다. 그러기에 20년 군생활을 하면서도 독신을 유지해 흔치 않게 군승軍僧으로 남아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만나는 사람마다 한결같이 묻는 질문이 “혼자 살기 힘들지 않으세요?” 왜 결혼하지 않느냐는 소리다. 기자 역시 그 점이 가장 궁금했던 것이 사실이다. 답변은 명료하다.
“언젠가는 다시 돌아가야 하니까.”
그러기에 한 번도 결혼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계 받을 때 계사는 250계를 한문으로 묻는다. 거짓말을 하지 말라, 음심을 품지 말라, 등등…… 그러면 계 받는 이는 계속 “능지能知”라고 답하면 된다. 의례적이지만 그때 분명 “능지”라고 대답했음을 잊지 않고 있다. 사람들은 혼자 사는 게 힘들지 않으냐고 묻지만, 늘 혼자 살아왔기 때문에 이게 힘든지 안 힘든지도 모른다. 그저 이렇게 사는 걸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을 뿐이다. 그래도 많은 유혹과 갈등이 있을 법하다.
법사는 답변 대신 쥐에 대한 경험을 이야기했다.
어느 부대에 가니 침대 끝 모서리마다 끈끈이가 붙어 있을 정도로 쥐가 많았다. 밤이면 온통 난리가 나는데, 한번은 끈끈이가 이불에 붙어 떼느라 고생한 적도 있다. 그래서 쥐가 많이 오는 이유를 살펴보니 집안 구석구석이 먼지투성이에다 과자 부스러기 등이 곳곳에 널려 있었다. 집안을 온통 뒤집어 깨끗이 청소를 했더니 쥐가 더 이상 오지 않았다. 그리하여 쥐를 쫓는 방법은 쥐약도 고양이도 아니고 깨끗하게 하는 방법밖에 없음을 깨달았다. 유혹도 남의 탓이 아니라 자기 할 나름, 자기책임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듯 했다.

열일곱에 해인사로 출가했다. 유교집안이라 어려서부터 ‘사서삼경’을 배우며 자랐고, 형제가 열명이나 됐지만 불교와 관련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 신문기사 한 줄이 불연佛緣을 자극했다. 동아일보였는데 ‘팔만대장경 번역을 하는데 당시 번역하는 노인세대가 지나면 번역할 사람이 없을 것’을 우려하는 기사였다.
어렵다고 하면 하고 싶고 하기 쉬운 것은 하기 싫은 성격이라 경전번역이 어렵다는 소리에 그러면 ‘내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바로 해인사에 편지를 썼다. 편지 서두가 ‘주승님 귀하.’ 주지라는 말도 들어본 바가 없었고, 성불사 노래에 ‘주승은 잠이 들고 객이 홀로 듣는구나’ 했으니까. 경전번역을 해보고 싶다는 포부를 밝힌 내용의 글이었는데, 해인사에서 편지를 읽었던 스님은 당연히 출가의사가 있나보다 싶었던 것 같다. 답장이 왔는데, “100번을 생각해 보고 101번째에도 해야겠다 싶으면 오라”며 올 때는 반야심경을 외워 오라는 내용이었다.
그래서 반야심경을 외워 출가하고 바로 성철 스님을 시봉했다. 원오圓悟라는 법명도 성철 스님이 지어주신 것. 그리고는 성철 스님이 상좌로 삼고 싶어 애타게 승적을 자신 앞으로 옮기라고 하던 법전 스님에게 보내졌다. 그리하여 법사에게는 스승이 둘이다.
법사의 기억에 성철 스님과 법전 스님은 성격이 판이했다. 성철 스님은 잘못한 짓을 보면 작대기를 들고 십리를 쫓아오는 엄격한 분이었다면, 법전 스님은 온화한 분이다. 수도암에서의 일인데, 어떤 제자가 연거푸 잘못을 하자 보다 못한 법전 스님이 작대기를 들고 쫓아왔다. 그런데 그 상좌는 도망갈 생각을 안 하고 그대로 서 있자 가까이 다가와서 하는 말이 “너 왜 안 도망가니?” 하는 분이다. 스승이 화가 나면 도망가 주는 것도 예의라며 자신은 도망갔단다. 그러고 보니 법사는 법전 스님과 많이 닮았다. 외모도 분위기도.
법사는 탁월한 한문실력으로 경을 잘 봐 큰스님들로부터 총명하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운허 스님은 봉선사에서 《능엄경》 강의가 끝나고 당신이 보시던 능엄경 목판본을 주셨고, 1년간 《신수대장경》을 독강하다시피 했던 관응 스님은 평생 보시던 ‘성유식론 불교대계’ 4권을 주시며 “책으로는 자네에게 전했네”라고 하셨단다. 관응 스님은 앞서 3년간 강의를 하고 20명에게 전강을 했는데, 법사에게는 증서는 아니지만 책을 물려주셨다는 데 법사는 큰 의미를 두고 있다. 전통적으로 불교에서는 책을 주는 것으로 법을 물려주는 증표로 삼기 때문이다.
그때 법사에게 책을 주셨다는 소리를 듣고 상좌 한 명이 “책을 아무한테나 주면 되느냐?”고 따지자 관응스님 하시는 말씀이 “책이란 볼 수 있는 사람이 갖는 것이다.”라 하더라고.
군법사로 간다는 말에 관응 스님이 무척 서운해 하고 아쉬워하셨는데, 얼마 전 영결식에서 스님의 영정으로 스님을 대하게 되니, 가지 못한 길에 대한 아쉬움이 물밀 듯이 밀려왔다.
법사 자신이 경전번역의 원을 세우고 출가했고, 큰스님을 비롯하여 대부분의 주변사람들은 경을 보는 실력이 탁월해 강사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알고보니 불자가정에 하나씩 갖고 있는 “복은 검소함에서 생기고…”로 시작되는 <마음 다스리는 글>은 바로 법사가 유교경전 등에서 발췌해 해석해 놓은 것이었다고 한다.
동국대에서 석사를 마치고 박사과정에 입학했을 즈음 성철 스님께서 해인사 강원 강사로 오라고 연락이 왔다. 한창 젊은 나이에 강사로 묶이고 싶지 않은 마음에 생각한 것이 입대였다.
그 마음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전생의 업은 어쩔 수가 없는지 무던히도 군이 끌렸다. 그러나 사병으로서의 의무복무 기간만을 마치고는 다시 절로 들어갈 생각이었다. 장교가 되고 싶은 마음이 고개를 들었고, 선배들의 부추김이 더해져 “2년만 더”라고 하다 다시 “1년 더”가 되었고 10년을 넘어 20년에 이르고 있다. 그러면서도 늘 자신이 돌아가야 할 곳은 절이라는 생각을 잊은 적이 없다.

그런데 군의 무엇이 돌아갈 시기를 이다지도 늦추게 한 것일까?
군인으로서 진급이 순조로운 편이었다. 또한 인간관계가 좋았다. 군법사와 군종병 사이는 시쳇말로 ‘웬쑤’라고들 하는데(온갖 굳은 일을 군종병이 도맡아 해야 하니까) 법사만큼은 예외였다. 일전에는 20여 년 전에 있던 부대의 군종병이 찾아왔다. 당시 그 군법당은 비가 샜는데 그곳 출신 군종병들 130명이 제대 후에도 정기적으로 모임을 가지면서 1억 5천만원을 모아 법당을 짓고,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군법사님께서 법문을 해주십사 하는 것이다. 군종병들이 지속적으로 모임을 갖고 군법당을 지은 것만으로도 가상한데, 자기들끼리 법사님의 가르침을 받고 싶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으니 법사로서의 보람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
교통사고로 통합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는 부대가 속해 있는 면 소재지 주민 1200여 명이 입원 기간 내내 50명씩 찾아와 병원을 가득 메운 적도 있다. 하루에 2명밖에 면회가 안 되자, 출입증을 담 밖으로 넘겨서 들어오는 편법까지 써가며. 스스로 인복이 많은 것 같단다.
다른 종교도 마찬가지인데 군종법사들은 장군을 모셔놓고 정신교육을 시키는 것을 부담스러워한다. 행여 말을 잘못하여 곤욕을 치러야 하니까. 그러나 법사는 일부러 기독교인인 4성장군이 참석하는 교육기획안을 짜서 올린다. 군대라는 곳은 윗사람이 오지 않으면 참석하지 않는다. 역시나 4스타가 출현한다고 하니 1스타와 2스타가 먼저 와 자리잡고 강당의 좌석이 절반도 안 차 있자 “이 ××들 다 들어오라고 해!” 한마디가 떨어지자 5분도 안 돼 강당은 미어터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항상 4스타는 정각에 들어온다. 이때 법사의 강의를 들은 4성장군이 일년 내내 그 예를 드는 바람에 일년이 봄날이었단다.
법사의 법문은 듣는 이에게 감동과 감화를 준다. 그러기에 그가 들어서는 군법당의 법회는 늘 발 디딜 틈 없이 꽉찬다.
일요일마다 군에서는 초코파이 전쟁이 벌어진다. 어디서 초코파이를 하나 더 주느냐에 따라서 방향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도저히 물량으로는 타종교를 따라잡을 방도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나를 주면 2개가 나오고 2개를 주면 4개가 된다. 한번은 요즘애들이 좋아하는 햄버거를 줬더니 다음주 교회에서 세트를 주더란다. 1년에 군에 들어오는 예산이 기독교는 100억원, 천주교는 50억원인데 비해 불교는 5천만원이라고 하니 상대가 될 수가 없다. 거기다 교인들은 예쁜 여대생 자원봉사자들까지 동원하니 젊은 사병들이 끌리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결론은 법사가 가능한 한 자립을 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오는 이들에게 감화를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말로써도 감동을 줄 수 있어야 하고 행동으로도 진심을 보이면 올 사람은 온다는 얘기다. 물론 거기다 물량도 풍부하면 더 좋지만 말이다.

절의 기상시간은 3시지만 군의 기상시간은 6시다. 법사는 5시쯤 일어나 예불하고 기도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저녁예불까지는 드리지 못하고 있다. 하루 일과가 끝나고 들어와 자리에 누웠다가도 내가 이렇게 살아서 되겠나 싶어 불현듯 눈을 붙이지 못하고 좌선하며 밤을 지새울 때가 많아졌다. 대령의 정년은 56세로 2008년이면 군을 떠날 것이다. 그때는 절로 들어가려 한다. 군을 선택하고 법사의 길을 걸어온 것에 대한 후회는 전혀 없다. 그러나 늘 가지 못한 그 길에 대한 그리움과 아쉬움을 갖고 살아왔다. 제대하면 그 길로 돌아갈 생각이다. 남들은 그 나이에 어떻게 시작하려고 하느냐고 할 수 있지만, 원래 쉬운 길이라면 택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10년 후쯤 다시 한 번 법사를 만날 기회가 만들어지길 기대해 본다. 그때는 호칭이 달라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