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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과 백련사 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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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지 影池 - 이일섭 2004년 04월 266호
초당으로 가는 길은 잔돌들이 드러나 있는 오르막이다.
동백나무와 대나무가 뒤섞인 채 빽빽하여 간간이 보이는 틈으로 하늘이 보일 정도이다.
초당에 이르러서도 두꺼운 그림자로 인해 따스한 봄기운도 약간의 한기로 몸에 닿고 만다.
추사의 글씨로 쓰여진 “보정산방寶丁山房” 이라는 현판이 있는데,
정약용보다 스물네 살이 어렸던 추사는 이 현판에 다산을 존경하는 마음을 고스란히 담아 놓았다.
다산은 강진에서 18년이라는 유배기간을 보냈으며, 그중 10년을 이곳 초당에서 보냈다.
초당이 있는 만덕산에는 차나무가 많아 다산茶山이라 불렸는데 정약용의 호는 여기에서 연유된 것이다.
동백나무와 대나무의 두터운 그늘이 드리워진 처마 밑에 앉아 있노라면 시원한 기운을 넘어 한기가 몸을 파고드는 듯 해진다.
동쪽으로 난 산길을 따라가다 보면 다다르게 되는 곳이 백련사이다.
고려 후기 요세了世에 의해 중창된 백련사에서 조선시대에도 여덟 명의 대사가 배출되었는데,
다산과 교류하던 혜장 선사 “아암”이 그중 한 분이다. 작고 소박한 산길을 걷고 있으면 길이 어찌나 착하게 느껴지는지,
애써서 걸으려는 노력을 할 필요 또한 없어지고 만다.
길 좌우로 나지막한 산죽이 바람에 흔들리는 언덕을 넘으면 탁 트인 시야 멀리에 강진 앞바다가 내려다보인다.

그러고 나면 이번에는 숨통을 콱 막을 만큼 반들거리는 아름다움의 동백나무숲이 기다리고 있다.
꿈틀대는 글씨로 씌어진 이광사의 대웅보전大雄寶殿 현판은 굵고 슬프다.
하지만 마음을 더 흔드는 것은, 이 봄에 피어난 동백의 슬프고 안타까운 절정이다.
길고긴 유배생활과 끝 간데까지 가버린 듯한 동백의 붉은 몸뚱이, 모두 슬프고도 안타깝게 아름답다.
절집을 나서면서는 봄날에 느꼈던 나의 호사스러움이 머리를 조아리며 잦아든다.□